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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잔재 수두룩 '조례'... 언어 독립 언제

일제 잔재 수두룩 '조례'... 언어 독립 언제
  •  김희곤 기자 (hgon@idomin.com)
  •  2021년 08월 20일 금요일
  •  댓글 0
 
 
지방자치단체 사무 규정이지만
일본어식 용어는 무분별 사용
'∼에 대하여' 번역 투도 버젓이

생활 속 흔히 쓰이는 말 중에 일본어식 용어와 표현이 많습니다. 섞이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는 언어의 특성상 일제강점기에 들어오거나 만들어진 용어·표현을 하루아침에 모두 없애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광복절을 맞이해, 될 수 있으면 덜 썼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자치법규 속 일본식 용어와 표현을 찾아봤습니다.

해방 76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일제 잔재 용어는 많이 남아 있다. 공공 기관은 일본어식 용어를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사무를 규정한 조례에는 아직도 일본어식 용어가 많다.

국회 법제실과 법제처,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알기 쉬운 법률을 만들고자 법률 용어 정비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어식, 전문적, 외국어 등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나 표현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특히 고쳐야 할 일본어식 용어 50가지를 추렸는데, 여기에는 아직 일상 속에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 많다. 조례도 마찬가지다.

◇조례 속 수두룩 = 법령 속에 보이는 일본어식 용어는 자치법규 속에서도 매우 흔하게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www.elis.go.kr)에서 '감안'을 검색해 보면 전국에서 조례 5116건, 규칙 1845건, 훈령 1728건 등에 쓰여 있다고 나온다. 다만, 검색 체계가 폐지된 조례 등도 포함하도록 돼 있어 시행 중인 것은 더 적을 수도 있다.

경남 지역 조례를 검색하면 568건에서 감안이 사용됐다. 모두 '~을(를) 감안하여' 식으로 쓰였다.

감안하다는 우리말로 '고려하다', '참작하다', '생각하다', '살피다' 등으로 고쳐 써야 한다.

심지어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한 조례 속에서도 감안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남해군 국어 진흥 조례 4조 2항에는 "군수는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남해 지역어의 발굴 및 보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 지방자치단체 사무를 규정한 조례에 아직도 일본어식 용어와 표현이 넘쳐난다. 사진은 경상남도 도시재정비촉진 조례·지방세 세무조사 운영 규칙·경남사랑상품권 발행 및 운영 조례의 일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 화면 갈무리
▲ 지방자치단체 사무를 규정한 조례에 아직도 일본어식 용어와 표현이 넘쳐난다. 사진은 경상남도 도시재정비촉진 조례·지방세 세무조사 운영 규칙·경남사랑상품권 발행 및 운영 조례의 일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 화면 갈무리

감안(勘案)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다. 국립국어원은 2012년 펴낸 <일본어 투 어휘 자료집>에서 "감안은 1938년 2월 25일 자 <매일신보>에서 3면 2단 기사 제목에서 처음 나왔다"고 했다. 제목은 '사업(事業)의 완급(緩急)을 감안(勘案) 시국대책(時局對策)에 치중(置重)'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감안이라는 단어는 1920년 <동아일보>, 1923년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나타났다.

국립국어원은 감안을 "일제 때 우리말에 들어온 일본어"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거나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한국식 한자 용어를 담은 <한국한자어사전>에는 감안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는 게 국립국어원 설명이다.

법령 속 일본어식 용어로 정비 대상에 꼽힌 입회, 지불, 명기, 노임, 납득, 저리, 마대, 음용수 등도 조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입회는 참여나 참관, 지불은 지급, 명기는 분명하게 적다, 노임은 임금, 납득은 수긍이나 받아들이다, 저리는 저금리, 마대는 포대나 자루, 음용수는 먹는 물이나 마시는 물로 바꿔 써야 한다. 규칙이나 훈령에는 빈칸을 뜻하는 '공란', 이름표로 고쳐야 할 '명찰' 등도 종종 나타났다.

◇일본어 투·외래어도 많아 = 일본식 용어만 문제가 아니다. 일본어 투 표현이 없는 조례·규칙·훈령 등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달부터 효력을 발휘한 '경남도 일제 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에는 공공 기관이 사용하는 일제 잔재 행정 용어는 순화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조례에도 16조와 17조에 일본어 투가 쓰였다.

'도지사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관련 기관 및 단체 등에 지체 없이 통보하여야 한다', '도지사는 제7조에 따른 일제 잔재 청산 사업을 추진하는 법인·단체 등에 대하여 필요한 사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등 두 문장에 나타난다.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는 '결정된 사항은'으로, '법인·단체 등에 대하여'는 '법인·단체 등이'로 고쳐야 한다.

조례·규칙·훈령 속 대표적인 일본어 투는 '~에 대하여', '~에 관하여', '~에 있어' 등을 꼽을 수 있다. '~에 대하여·관하여'는 일본어 투 표현을 답습한 것이고, '~에 있어'는 일본어를 직역한 것이다.

~에 관하여, ~에 대하여 등은 '~를, ~는, ~로'로 바꾸면 된다. '~에 있어' 표현도 '~에서, ~할 때, ~하는 데'로 고쳐 쓰면 된다.

자치 법규 속 고쳐야 할 외국어·외래어도 많다. 법제처는 외국어·외래어로 가이드라인(지침), 프로그램(과정), 로컬푸드(지역농산물), 멘토·멘티(결원·후원·지도·연결), 워크숍(연수), 컨설팅(자문), 네트워크(사회적 관계망) 등을 꼽았다.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김희곤hgo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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