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볼 때 북이 한미에 ‘엄청난 안보위기를 시시각각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한 경고는 비단 한미연합훈련 기간만이 아니라 올 하반기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동북아는 세계 판도를 가르는 최대 격전장이 되었다.

1. 미군철수 요구의 전면화

현재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긴장상황은 이전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북이 미군철수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미가 엄청난 안보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최고 수위의 경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중러가 북의 한미연합훈련 반대를 지지하면서 공동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은 북이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에 대한 대응의 폭과 강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중요한 변화가 감지됨에도 한미 언론의 분석은 타성적이고 구태의연하다. 한겨레신문은 ‘소규모 방어훈련을 침략연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8.10)고 했고, 미국 관영 미국의 소리(VOA)는 북의 저강도 도발 가능성’(8.12), 북 비핵화와 조건부 양보(8.13), 매우 위협적이지만 아무 의미 없다(8.14)는 둥 안일하고, 무지한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북의 담화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하여야” 한다고 미군철수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당면의 과제로 제기한 것이다. 이 주장은 이어 중러 주재 북 대사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신홍철 러시아 주재 북 대사는 타스통신에 (8.11) ‘한반도의 평화는 주한미군이 철수해야만 가능하다’고 했고, 리룡남 중국 주재 북 대사도 환구시보 인터뷰(8.14)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미국은 먼저 한국에 배치된 침략 병력과 전쟁 장비를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미군철수가 북의 당면 과제로 제기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트럼프 정부 시기 북미간에 합의했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당시 북미는 핵시험, 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전제로 한 신뢰구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한 바 있다. 신뢰구축이란 평화협정으로 대표되는 북미간 군사적 대결의 종식이다. 평화협정에는 당연히 미군철수가 핵심이다. 당시 북은 내외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명시적으로 미군철수를 제기하기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란 대북적대 철회부터 시작하여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가는 순차적 과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명목상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준수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난 3월에 이어 이번에도 연합훈련을 강행하고, 나아가 유럽, 일본등과 동맹군을 편성하는 등 적대정책을 강화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싱가포르공동성명 준수 발표가 위선적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최소한의 적대정책 철회 의사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에게 조건없는 대화, 비핵화 대 제재완화 등 마치 대화 재개를 위해 애쓰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기만적이다. 북이 이미 여러 차례 대북적대정책 철회 없이 대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음에도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현 시점에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요원해졌다. 싱가포르공동성명에 의거한 순차적 평화체제 구축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불가능하다. 이에 북은 평화체제의 핵심 사안인 미군철수를 전면에 내걸고, 이를 “절대적 억제력”(핵억지력)과 “강력한 선제타격능력” 등 힘에 의해 달성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강력한 국방력으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지난 8차 당대회의 결의를 이제 전면화한 것이다.

북의 지난 1월 8차당대회는 (핵무력완성국으로서) 변화된 전략적 지위에 맞는 대외정책을 밝혔다는 점에서 이전 당대회와 다른 전환적 의미를 갖는다. 당대회에서 북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이 땅에서 전쟁접경과 완화, 대화와 긴장의 악순환을 영원히 해소하고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 자체가 종식될 때까지 나라의 군사적 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모든 대외정책의 초점을 미국을 ‘제압, 굴복’시키는데 두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또한 개정된 규약 서문에는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할 것을 당면 목표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당원에 대해서도 “주체의 전쟁관점”을 익히고, 전쟁 대처를 위한 “군사지식”과 “기술적 준비”를 갖출 것을 기본 임무로 하는 등 유사시 비상조치와 관련한 여러 조항을 신설, 개정하였다.

이번의 잇단 담화와 보도는 이 결의가 실행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2. 북중러의 전략적 단결과 추락하는 미국

북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지지와 연대를 표하면서 핵무력 완성 3국의 단결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바이든정부가 북중러 3국에 대한 포위 압박을 강화하자 3국은 더욱 단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지난 2018년부터 ‘전략적 의사소통, 전술적 협동’을 합의한 3국은 세계 다극화를 향한 국제적인 반제연합전선 강화에 한목소리로 대응하였다. 시리아 문제를 비롯 이란, 베네수엘라, 홍콩, 미얀마, 쿠바시위사태 대응 등 미국과 대립하는 여러 사안에 공동보조를 취했고, 지난 3월에는 유엔에 17개국(팔레스타인 참가) 연합의 ‘유엔헌장을 지키는 친구들의 그룹’을 결성하여 미국의 일방 제재에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중국은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미연합훈련 반대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였고, 환구시보 사설을 통해서도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러시아 역시 푸틴대통령이 김정은총비서에게 보낸 8.15 축전에서 호혜적 쌍무협조가 “의심할 바 없이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 전반의 안전 강화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러는 북의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그 대응에 강력한 지지와 연대의사를 밝힌 것이다. 동시에 중러는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중국 영토에서 처음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하였고, 지난 17일에는 러시아 전략폭격기와 중국 전략폭격기들이 동해와 대만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하였다.

반면 미국은 아프카니스탄 철수에 이어 이라크에서의 연내 철수도 확약하는 등 군사패권 추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프카니스탄 철수에 대해 미국이 대중포위전선에 집중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병력을 빼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미국의 체면치레를 위한 어리석은 주장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중국 턱밑에 있는 국가로 인도양으로 통하는 관문지역이다. 만약 미국이 탈레반을 제압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아프카니스탄을 타고 앉아 중국 포위를 더 강도 높게 하려 했을 것이다. 미국이 미얀마 시위를 지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 국경지역에 친미정권을 세워 중국 포위를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온갖 망신을 무릅쓰고 철수하는 것은 대중포위전략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미군 주둔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군사력, 경제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추락은 동반 철수한 유럽 동맹은 물론 쿼드 같은 아시아에서의 반중연대에도 심대한 손상을 끼칠 것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지난 달 26일 미-이라크 정상화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연내 철수를 약속하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미국이 반미기세를 가라앉히려 립서비스 한 것이지 실제로는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거나 반대로 중국 포위 강화를 위해 중동 전역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전략적 결정이라는 두개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 민중의 강력한 반미투쟁이다. 이라크 의회의 미군철수 결의와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이라크 민병대의 미 대사관과 미군 기지에 대한 거침없는 로케트 공격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이전의 미국 같았으면 중동패권유지를 위해 다시 이라크와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눌러 앉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만이 아니라 시리아, 사우디 등 중동에서 철수할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주목할 사안은 중남미 거의 전역이 반미, 비미 정부들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멕시코,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 등에는 자주적 정권이 들어섰고, 내년에는 브라질 룰라의 재집권이 확실시 된다. 브라질은 남미 면적의 45%를 차지하는 대국이다. 그리고 칠레는 새로이 자주적 세력이 중심이 된 제헌의회가 소집되어 과거 아옌데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 이상을 추진하면서 내년 정권교체를 담보하고 있다. 이미 국내언론조차 신 핑크타이드(pink-tide)라고 부를 정도로 중남미는 상당수가 자주적 정부로 바뀌고 있다. 향후 1~2년내 중남미 대부분 나라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미 패권의 거의 완전한 추락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듯 미 패권은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뒷마당인 중남미에서조차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는 카불이 함락되고 거의 모든 해외공관들이 탈주했지만 중러 대사관만 유유히 남았다. 중⸳러는 이미 탈레반 신정권과 우호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웃인 파키스탄 역시 그간의 눈치 보기를 끝내고 확실히 중러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중동은 이미 중⸳러⸳이란을 축으로 판세가 정리되어 사우디마저 친미태도를 바꾸고 이스라엘만 고립되는 양상이다. 중남미의 자주정부들은 거의 모두 북⸳중⸳러와 우호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바이든 정부 들어 미 패권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반면 세계반제전선은 더욱 확대 강화되고 있다. 다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대립이 가장 심한 동북아(한반도와 대만)와 분열이 심한 유럽이다.

3. 엄청난 안보위기

참으로 답답하고 유감인 것인 문재인 정부나 여야정당 할 것 없이 이러한 지구촌 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거의 무감각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 하라는 대로 하는 데 길들여져 다른 생각을 못하니 끌려만 가고 있다.

현재의 엄중한 한반도 긴장상황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남북정상간 친서교환을 통해 어렵게 합의한 사항들이 시작도 해보기도 전에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는 바람에 파탄 난 것이다. 지난 달 27일 남북은 남북통신선 복원 의미에 대해 “남북 간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고 합의사항들을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호상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큰 걸음을 내짚을 데 대하여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회복과 화해도모를 위한 별도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남북, 북미관계에서 신뢰회복이란 정치군사조치를 의미하고, 화해도모란 남북교류 등 공동번영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은 단순히 통신선 복원 같은 기술 실무적 조치가 아니라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 신뢰회복을 위한 중요 조치를 합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밝혔듯이 이 합의 발표에 대해 사전에 미국과 협의하였고, 동의를 얻었다고 보여진다. 지난 4월부터 7월 통신선 복원 발표까지 여러 차례의 남북 친서교환 과정에서 한미간 긴밀한 협의가 오고간 정황은 대단히 많다. 지난 5월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긴급 방한과 연이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방미, 그리고 6월의 성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방한과 7월 웬디셔먼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 등은 한미간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웬디셔먼 부장관의 방문 시기가 지난 달 27일 남북통신선 복원 발표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미국 측 동의가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웬디셔면 부장관이 바로 뒤이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한반도 문제 협의를 가졌다는 보도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한미간 사전 협의에 의거해 남북합의 발표가 이루어졌음에도 2주도 안 돼 뒤집어진 것은 한미 내부의 수구보수 호전적 세력들의 거센 반발 탓이지만, 무엇보다 문재인대통령이 이들의 반발을 제어할 힘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4일 이례적으로 군 주요 지휘관 보고회의를 소집하고도 군 통수권자로서 끝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지시하지 못했고,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던 8.15 경축사마저도 흡수통일인 독일통일을 언급하여 스스로 남북합의를 완전히 파탄 내 버렸다. 말이 깃털보다 가볍다. 그러니 신의를 여러 차례 어겨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 이로써 임기 말 문재인정부의 실날같던 남북관계 개선 기대는 완전히 끝났다.

이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 개선에 동의해 통신선 복원까지 해놓고 곧바로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 것은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미국은 여전히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해 한반도 긴장유지를 더 선호하고, 그로 인한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만 대화를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시간을 벌면서 유럽, 일본 동맹 등과의 연합훈련과 최신 인공지능(AI) 기반의 통합전역지휘통제체계(JADC2)를 완성하여 한국, 일본, 대만을 잇는 연합방위선을 어떻하든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점은 한미연합훈련이 기동훈련을 못하게 되자 한국이 영국, 독일 등과 연합훈련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말 영국 핵 항모전단 퀸엘리자베스와 한국해군이 연합해상훈련을 하고, 11월에는 독일해군과 연합훈련을 한다는 계획은 그간 한미, 미유럽이 각각 진행하던 통합전역지휘체계 훈련을 한영, 한독이 실시해 연합군체계를 완성해 나가려는 것이다.

여기에 영국과 일본은 지난 7월 북의 불법 환적을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영국 함정 2척이 동북아에 상시주둔 공동대응하기로 했고, 미국은 10월 동북아에 2개의 항모전단(도널드레이건, 칼빈슨)을 배치하기로 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을 12월 ‘민주주의정상회의’에 초대해 사실상 독립국 대우를 하려하자, 중국이 대만상공에 중국 전투기가 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대만해협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고의적으로 북과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북이 한미에 ‘엄청난 안보위기를 시시각각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한 경고는 비단 한미연합훈련 기간만이 아니라 올 하반기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동북아는 세계 판도를 가르는 최대 격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