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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면서 환부 놔두고 멀쩡한 팔다리 자를 건가”

LH 조직개편안 2차 공청회, 참석자들 대다수 ‘절대 반대’ 의견 확인

LH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환자가 병이 났다. 수술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떻게 수술하지? 라는 고민이 들 때, 어느 의사나 병을 고치는 방향으로 수술하지 않겠나. 그런데, 병을 고치는 것과 무관하게 팔 자르고 다리 자르는 경우가 있나. 그럼 돌팔이지”

한국토지주택공사 조직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2차 공청회에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이 한 말이다. 20일 개최된 공청회 참석 전문가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중인 조직 개편안에 문제가 있다고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정부는 LH 분할 방안을 추진중이다. 주요 사업을 쪼개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는 한편, LH의 무게 중심을 개발자에서 주거복지 컨트롤타워로 옮기겠다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토지·주택 개발사업을 한 회사로 묶어 자회사로 두고, 주거복지 회사를 지주사 형태의 모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참석자들은 먼저 회사를 분할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회사가 모회사로 공공임대주택을 판매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간단치 않다”고 지적했다.

임대주택용 아파트 어디에 얼마나 건설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격인데, 자회사와 모회사로 구분됐을 경우 가격 협상과 구매 규모를 결정하는데 최소한 1년 이상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심 교수의 설명이다. 절차가 길어지면서 비용이 늘어나고, 두 회사에서 발생하는 운영 비용 역시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심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이렇게 발생한 비용과 비효율은 모두 LH 임대료 부담으로 가고 국민 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창무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민간 건설사에선 설계·시공·운영관리까지 하나로 해야 효율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며 “현재 만들어진 시스템을 분리해 토지·주택개발과 주택관리를 떨어뜨리면서 효율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LH를 분할하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하고 있다. 주거복지부문이 개발부문을 감시하며 견제 역할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시경 단국대학교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국토부 구상대로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사와 공사가 수평적인 구조에서 서로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업에 대한 승인과 감독, 임원 임명, 예산 배분 이 모든 것이 통합되어야 지배력이 나오는 것”이라며 “국토부의 방안은 이 구조를 담보하지 못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청회 참가자들은 장기적 관점에서도 정부 조직개편안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주택개발 자회사가 수익을 내면 그 수익을 주거복지 전담 지주사가 배당 형태로 가져와 그 돈을 쓰겠다는 구상이다.

윤규섭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는 “2030년 이후 이 구조가 유효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LH가 수익을 낼 수 있는 3기 신도시 사업은 2030년까지다. 2030년 이후엔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사실상 종료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개발할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윤 회계사는 “3기 신도시 사업이 끝나면 LH 수익이 줄어들고, 반대로 주거복지 사업은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라며 “정부 안대로 변경할 경우 적자 전환 가능성을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정부안은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순순히 모회사로 이전시킬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심교언 교수는 “어떤 자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모회사로 이전시키겠나, 비용 등으로 처리해 어떻게든 수익을 감출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정부 공언대로 LH가 주거복지 사업 역할이 강화되려면 개발사업에서 수익을 내고 주거복지 사업 손실을 보전하는 교차보조 관행을 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이강훈 변호사는 “LH를 투기로 몰아넣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LH는 수도권을 비롯한 전 국토에서 사업을 벌인다. 이 중 수익을 내는 사업은 수도권뿐이다. 수도권 사업에서 수익을 내야 지역 개발에 쓸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주거복지 역시 마찬가지 개념이다. 수도권 사업에서 수익을 극대화해야 주거복지에 들어가는 교차보조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이것이 바로 LH의 투기 지향성의 근본원인”이라며 “개발 이익 나눠 먹기가 존재하는 이상 수익성 추구 유인이 줄어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조직 개편 방안 추진은 좀 더 긴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용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주택 수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유집중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006년 이후 연간 불로소득인 양도차익이 발생 거래는 100~130만건, 이로 인해 발생한 불로소득은 1,375조에 달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LH라는 중요한 공기업의 사업 모델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임대주택지원에 쓰인 주택도시기금 내역을 설명하며 “주거복지 재정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1년 임대주택 건설 지원에 쓰일 기금은 출자가 6조3천억원, 융자가 13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예산을 통해 지원하는 자금은 3조5천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공공임대사업에 재정지원이 부족한 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정치인들도 전문가 의견에 공감했다. 공청회를 주관한 조응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는 “전문가들의 생생한 고견 잘 들었다. LH가 주거복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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