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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죄 없는 유류세 잡지 말고, 담대하게 횡재세 해보자

 
지난 3월 9일 오전 서울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 2022.03.09. ⓒ뉴시스 
 
올해 4월부터 한달 주유비가 30만원대로 불었다. 25만원을 넘는 일이 없었는데, 지난달에는 31만원을 썼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천원을 넘은 게 10년 만이라고 한다. 치솟은 밥상 물가까지 더해 가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정부는 헛물만 켜는 모양새다.

기름값을 잡겠다고 나선 정부는 유류세를 타겟으로 잡았다. 정부는 최근 8개월간 세 차례 유류세를 인하했다. 지난해 11월 유류세를 20% 낮춘 데 이어, 올해 5월과 7월 인하 폭을 각각 30%, 37%로 확대했다. 세 차례에 걸친 인하 조치로 리터당 유류세는 820원에서 516원으로 떨어졌다.

유류세을 300원 이상 낮췄으니 기름값도 그만큼 내려와야 할 게 아닌가. 실상은 다르다. 이번달 유류세 인하가 시행된 지난 1일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2,129원이다. 전날 대비 리터당 16.02원 내렸다. 일주일이 지난 6일 기준으로는 30원 정도 떨어졌다. 이번달 유류세 인하분 57원에 크게 못 미친다.

애초 유류세 인하로 기름값을 잡을 수 있긴 한 걸까. 기름값 결정 구조를 보자. 정유사는 산유국에서 사 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를 만든다. 주유소가 휘발유를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다. 정유사는 휘발유를 주유소에 넘길 때, 원유 가격에 유류세와 관세 등 세금, 유통비용과 마진을 더해 가격을 책정한다. 여기에 주유소가 마진을 붙여 소비자 가격이 된다.

유류세 인하 혜택이 소비자에게 오기 전에 정유사와 주유소가 나눠 갖는 구조다. 유류세 인하분을 휘발유 가격에 일부만 적용하고 나머지는 마진으로 챙긴다. 엿장수 마음이라는 식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을 기름값에 반영해달라고 읍소한다. 때로는 담합을 살펴보겠다며 윽박도 지른다. 정유사의 자발적 기금 설립을 운운하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세금의 기능을 고려해봐도 유류세 인하는 그다지 바람직한 대책이 아니다. 유류세는 에너지 소비가 유발하는 환경오염에 대해 비용을 치른다는 성격이 있다. 자동차가 없는 저소득층 입장에서 유류세 인하는 역차별이다. 정부 세수가 줄어든다는 점도 한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고유가 시기 세금 감면보다 취약 가구에 대한 현금 지원 등 정책이 더 효과적이고 정의롭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내놓기도 했다.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고유가 대책을 생각해보자. 기름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수준이다. 절반 이상은 원유 가격이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기름값이 비싸진다. 정유사는 원유를 비싸게 사 왔으니 그만큼 가격을 올리게 된다.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코로나19 회복세로 원유 수요가 증가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국제정세 불안으로 공급 차질이 겹쳤다. 국제 유가를 한국 정부가 해결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문제는 따로 있다. 정유사가 국제 유가 상승분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휘발유 가격을 올린다는 점이다. 두바이유는 지난해 1월 1주에서 올해 6월 2주 사이 리터당 565원 올랐다. 같은 기간 정유사가 주유소로 넘기는 세전공급가는780원 뛰었다. 고유가를 빌미로 정유사가 마진을 더 챙긴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실제 정유사는 매년 대규모 이익을 내고 있다. 에쓰오일·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K에너지 정유 4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1분기에만 4조 3천억원을 남겼다.

에너지 소비자단체 E컨슈머 이서혜 연구실장(박사)은 “장기적으로 보면 국제유가와 기름값이 비슷한 추세로 움직임이기는 한다”면서도 “특정 시점으로 좁혀서 보면 국제유가 인상 폭보다 기름값이 더 오르거나, 국제유가 인하 폭보다 기름값이 덜 내리는 비대칭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횡재세(windfall tax)는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다. 고유가 시기 정유사가 거둬들인 이익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해 지원 정책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시장주의를 해친다는 진영에 매몰된 구호를 접어두고, 실현가능성을 살펴봄 직하다.

일각에서는 횡재세를 물리면 정유사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국내 물량을 해외로 돌려, 오히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름값이 뛰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면 될 일이다. 횡재세를 정유사가 국내에서 판매한 유류에 부과하지 않고, 총이익에 매기면 된다. 어디서 팔든 수익이 늘면 추가 세금이 붙으니, 국내 물량을 줄일 유인이 없다.

정유사의 에너지 전환, 기업 투자 의지 꺾는다는 비판도 있다. 영국이 도입한 횡재세 방안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업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신규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을 확대했다. 쓰지 않으면 횡재세로 나갈 돈을 투자에 쓰라는 신호다.

영국은 지난 5월 횡재세를 시행했다. 석유·가스 에너지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 세율을 기존 40%에서 65%로 인상했다. 적용 기간은 2025년까지다. 연간 50만 파운드(7조 8,500억원) 규모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추산된다. 세금은 저소득 가정에 대한 요금 할인 등 에너지 종합대책 재원으로 활용한다.

영국뿐 아니다. 서방 국가에서는 횡재세 논의·도입이 활발하다. 유럽연합(EU) 입법기구인 유럽의회(EP)는 지난 3월 회원국에 횡재세 도입을 제안했다. 미국도 정부가 에너지 기업에 추가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의회 입법조사처(CRS)가 정책 설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헝가리 정부는 지난 5월 횡재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횡재세 도입 움직임이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법안을 마련 중이다. 국회 법제실에 검토를 의뢰했다. 대략적인 틀은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방식이다. 2014~2019년 평균을 초과하는 이익에 일정한 세율을 적용한다. 용 의원은 “담대하게 한번 해보자”고 호소한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노동자·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강요되던 고통 분담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해야 할 때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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