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을 '빈손'으로 마무리 한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란과 대규모 개발·투자 협약에 서명하는 등 반미연대를 강화했다.

기록적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유가를 잡기 위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를 찾아 ‘석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회의에서 “우리는 이미 최대 생산 가능 범위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을 계획했다”면서 “이를 넘어서기는 불가능하다”고 추가 증산 가능성을 일축했다.

반면 가스와 유가 상승에 따라 최고 무역흑자를 연일 갱신하며 지지율 83%로 고공행진 중인 푸틴 대통령은 19일 이란과 400억 달러(52조3천억 원) 규모의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에브라힘 라이시(가운데)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이란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19일(현지시간) 테헤란의 사드아바드 궁에서 열리는 3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 직후 이뤄졌다.
▲에브라힘 라이시(가운데)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이란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19일(현지시간) 테헤란의 사드아바드 궁에서 열리는 3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 직후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순방길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공백을 채우도록 두지 않겠다”며 최근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떼놓으려 했지만, 이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델 알주베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은 순방 중인 바이든 대통령이 들으라는 듯 CNBC와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알주베이르 장관은 “중국은 사우디 최대 교역 파트너로 거대한 에너지 시장이자 미래 시장이다.”라며 “안보·정치협력에서는 최고 파트너”라고 말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첫 외국 방문길에 오른 푸틴 대통령은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회담한 데 이어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도 만나 양국간 현안을 논의했다. 특히 4일 전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방문한 직후 이뤄져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서양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났지만 러시아엔 믿을 만한 친구가 남아 있다”라며 “우리는 양국간 교역 증가에서 기록적인 수치를 자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란과 러시아는 서방의 속임수를 늘 경계해야 한다”며 “전쟁은 (러시아의) 반대편이 시작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위험한 집단”이라고 말했다.

라이시 대통령도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양국은 테러에 대항한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중동지역 안보를 위해 협력했다”라며 “우리는 독립국가인 양국관계가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도 만나,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송 문제, 시리아 내전 등에 대해 협의했다. 터키는 이번에 이란과도 투자, 외교, 언론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사전협정을 체결하고 양국 간 무역 규모를 현재의 3배인 300억달러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의 테헤란 방문으로 이루어진 이번 러시아-이란-터키 3국 정상회의는 ‘반미연대’ 강화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3국 정상은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인 시리아 안정 대책 등을 논의하면서 “시리아 위기는 시리아 내 정파 간 대화로 해결돼야 하며 외세의 간섭은 없어야 한다”라는 데 뜻을 모으고, “미국이 대(對)테러 활동을 명분으로 시리아 북동부 유프라테스강 일대에 주둔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즉시 시리아를 떠나라. 서방의 개입을 거부한다.”라는 3국 공동의 입장을 내놓았다.

이란과 터키가 러시아 쪽으로 확실히 돌아선 데는 각국의 군사·경제적 상황이 작용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을 결집하면서 반이란 전선을 공고히 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정학적 유대가 진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란은 미국과 그 동맹들의 적대행위에 맞서 러시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터키는 최근 급격한 물가상승과 통화가치 하락에 직면했다. 올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로 떠오르며 1월 이후 달러 대비 40% 상승한 러시아 루블화 강세로 볼 때, 경제난의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시장 확대가 절실한 터키에 러시아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