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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복귀 시점 없고 차번호 틀린 업무개시명령서…법정 다툼 불가피

복귀 시점 다른 업무개시명령서 2장 받고 황당...업무개시 여부 판단은 무슨 기준으로?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윤석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졸속 발동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업무복귀 시점이 적히지 않은 명령서를 받은 사례가 있는가 하면, 대상 차주와 차번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업무개시명령서 2장이…차주와 차번 다른 명령서도


화물연대 조합원 김모씨는 업무개시명령서 두 장을 받았다. 한 장은 국토교통부에서, 다른 한 장은 거래하는 운송사에서 각각 발송한 등기우편이었다. 먼저 온 것은 운송사에서 발송한 명령서였다. 지난달 30일 받았다. 운송사에서 보낸 명령서에는 업무복귀 시점이 ‘11월 30일 24:00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하루 뒤인 지난 1일, 명령서가 또 왔다. 발송자는 국토교통부였다. 국토부 명령서 업무복귀 시점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문서 한 귀퉁이에 ‘송달일 다음날 24시까지’라고 삐뚤빼뚤하게 적혔다. 국토부에서 발송한 명령서에 따르면 김씨 업무복귀 시점은 ‘12월 2일 24:00’가 될 터였다. 김씨는 두 장의 명령서를 받아들고 황당했다.

‘언제 복귀해야 하는 것일까’

김모씨에게 송달된 2장의 업무 명령서. 좌측이 국토교통부 발송, 우측이 운송업체 발송 명령서다. ⓒ제공 : 화물연대

두 장의 명령서는 ‘1차, 2차’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두 장 모두 효력을 갖는다고 보면 김씨는 ‘11월 30일 24:00 복귀’ 명령을 1차로 어기고, ‘12월 2일 24:00 복귀’ 2차 명령을 어긴 셈이다. 가중 처벌 될 수 있다. 1차 명령을 어기면 면허정지 30일 행정제재 대상이지만, 2차로 어기면 면허취소 대상자다. 명령서 두 장이 근소한 차이로 송달된 것을 보면 애초 1, 2차 명령을 동시에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명령서에 기재된 차주와 차번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확인됐다. 충북 지역에서 시멘트 운송을 하는 이승진(가명)씨 차량 번호는 ‘충북99바 0000’이지만 명령서에는 ‘충북99가 0000’으로 적혔다. 정부가 엉뚱한 차량에 업무복귀 명령을 내린 꼴이다.

조연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명령서에서 가장 중요한 ‘개시 대상, 시점’을 빈 칸으로 두고 일관된 원칙 없이 각자 수기로 작성하니 발생하는 일”이라며 “명령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무개시 여부 판단은 무슨 기준으로 해야 하나


명령 준수 혹은 위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자의적 기준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현장조사를 통해 운송사에 8일치 배차 내역을 수집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명령 준수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정부가 작성 중인 ‘현장조사서’에는 화물연대 파업 전 8일 치 배차내역을 기재하게 돼 있다. 파악을 위해 국토부 검사공무원은 운송사업자에게 11월 둘째주 월요일부터 8영업일 기준 배차 내역을 요청했다. 제출받은 배차 내역을 기준으로 평시 운송 물량을 확정하고, 업무개시명령 이후 평시 물량 준수 여부를 판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달 30일 오후, A사 회의실에서 국토교통부 검사공무원(가운데), 제천시청 공무원(왼쪽), 사복 경찰관(오른쪽)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문제는 ‘8일 배차 내역’이 판단 기준으로 합당하냐는 점이다. 운송업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시간과 장소가 일정한 여타 직종과 달리 운송업은 그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충북 제천의 운송사 임원은 “시멘트사 발주가 많았던 올해 중순에는 한 달 100대 이상 기사들과 거래했다. 하지만 최근엔 40대 정도만 거래했는데, 그럼 평시는 70대인 거냐 아니면 40대인 거냐”라고 했다. 최근 두 달여 간 배차를 받지 못한 기사들이 있고, 반대로 배차가 늘어난 기사들이 있는데, 업무개시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조연민 변호사는 “정부가 송달한 업무개시명령서에는 복귀 시점만 적혀 있을 뿐, 복귀 여부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며 “처벌 기준으로 삼겠다면 적어도 명령서에 기입했어야 한다. 사전 고지 없이 정부가 자의적으로 세운 기준이 효력을 가질 거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애림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8일이 아니라 30일이라고 해도 공정한 기준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화주가 물량을 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게 물류 노동자들인데 ‘일이 없어 배송을 못했다’고 하면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냐는 뜻이다. 윤 책임연구원은 “하다못해 ‘배가 아파 일을 못했다’고 하면,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검증할 수 있겠나. 업무개시명령 사건이 법원으로 가면 판사도 황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역시 이런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법적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압박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윤애림 책임연구원은 “국토부에 명령 위반 여부 확인, 적발 및 처벌 의지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화물연대 파업에 동참하는 비조합원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얻고 ‘화물연대에 밀리지 않았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은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떤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 것인지 법적 기준이 없다. 명백한 명확성원칙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정유, 철강 등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은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시멘트 운송종사자 명령에서 발생한 혼란이 정유·철강 등 다른 물류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2.04. ⓒ제공 :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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