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중한 친구 '양'도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참혹한 상황을 지켜본 동료 시민들의 회복을 빌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주 7일을 일하는 '양'을 떠올리며 너무 지질하게 사는 것 같아서 눈두덩이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지문으로 멎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뜬 눈으로 밤새 서빙하고 월 80만 원이란 월세에 젊음을 바치는 '양'. 일터에서 인수인계를 해줬던 선임 언니가 구급차에 실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4시간 동안 누빈 이태원 거리,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팔 걷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뱉은 호흡과 어떻게든 질서를 만들려는 외침.
"역에서 직장까지 불과 5분 거리인데, 개찰구부터 꽉 막혀서 40분이 걸렸어.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귀가 터질 듯 계속 울리길래 옥상에서 그 도로를 내려다봤어. 사람들 표정이 다 보였어. 애원하고 혼절한 사람들의 그 표정이. 직원의 손을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덮인 모포를 걷어내면서 일일이 얼굴을 확인했어. 그날은 정말 모두의 심장 소리가 요동치는 듯했어. 내가 봤던 그곳에선 다들 한 명이라도 구하려고 애썼어."
촛불의 나날을 보낸 사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10대부터 들은 몸서리치는 속보들에 날카로워진 시선과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한탄이 글자가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태원 합동분향소는 정부가 정한 애도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정리됐습니다. 저는 그곳에 다시 가서 마이크를 잡았어요. 대형 인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깨져서 더는 입 닫고 애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이크를 꼭 쥐고 말을 이어가는 중에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데, 책임지겠다는 어른은 대체 어디 있죠?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책임은 사라지고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추궁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은 리본에 '근조'를 지우고 책임자 없는 사고라고 주장합니다. 교육부장관이 전국의 교육청에 노란 리본을 달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고, 끝가지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한 대통령이 겹칩니다.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말과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말이 겹칩니다.
'일탈하다 변을 당한 애들' '흥청망청 유희를 즐기러 갔다가 죽은 애들'이라는 비난도 귀에 박힙니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때마다 느끼는 이 공포는 왜 공유되지 못하는 걸까요? 간명한 애도는 새로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산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간신히 아문 딱지는 자꾸 벗겨집니다.
살아남은 1990년대생을 수치로 셈하는 일... 그만하고 싶다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곳이 바로 이곳이며, 언제 겪을지 모를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살아남은 1990년대생을 수치로 셈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탄핵으로 대통령을 바꾸고도 여전히 불안전한 국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잃은 것이 많은 밀레니얼에게 과연 미래는 있습니까? 이곳에서 우리는 무사히 30대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든 '양'과 저는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언젠가 '양'은 일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한 손으로 셀 수 없다고, 20시간을 일한 날엔 이러다가 죽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양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생계를 위해 다시 그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304명과 158명의 죽음을 몸소 겪은 사람처럼 겁에 질린 채, 책임 공방과 경솔한 발언 사이에서 우리가 잃은 것을 곱씹고 있습니다. '양'이 보낸 시간 일부를 소개함으로써 국가에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이 참사는 왜 미리 막을 수 없었나요?"라는 의문은 돌연한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며, 삶을 갈망하는 이의 태도 보다는 가까운 죽음을 의식해온 이의 반응에 가깝습니다.
2022년의 지금, 저는 지금보다 더 나쁜 버전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는 이런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어른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선 경찰관과 소방관, 구조대원, 생존자와 목격자, 동료 시민들과 함께요.
훗날 10월 29일에 슬퍼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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