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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날 불쑥’, 이태원 분향소 나타나 조문 흉내 내고 돌아간 이상민

코앞 ‘붉은 목도리’ 유가족 몰라보며 수행원에게 “안 계신가?”, 사퇴 요구는 무응답...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분통’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이 장관이 분향소에 머문 시간은 5분이 채 안 된다. 희생자 유가족이 목이 쉬어라 촉구한 ‘사퇴 요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분향소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동행한 수행원에게 연신 유가족의 위치를 물은 이 장관은 오직 ‘분향소에 갔고, 유가족을 만났다’는 형식만 갖춘 뒤 자리를 떠났다.

이태원 참사 발생 85일째인 이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간 이 장관을 보며 유가족은 또 한 번 가슴이 찢겼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수행원들과 대화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항의에도 유가족 텐트 들추며 막무가내,
눈물 고인 유가족에게 이상민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한번 만나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수행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없던 일방적인 방문이다. 시민대책회의 측은 이 장관이 머문 시간은 “길어봐야 3분 내외”라고 했다.

이 장관은 먼저 희생자 영정에 헌화한 뒤 주변을 기웃거리며 유가족을 찾았다.

이날 분향소에는 조문객을 맞는 유가족 두 명과 소수의 자원봉사자만 있는 상태였다. 유가족들은 전날 오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서울역에서 설 귀향객들을 대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연대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오는 22일에는 분향소에서 설맞이 상차림을 진행한다. 때문에 상차림을 준비하는 이날 유가족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연휴와 맞물려 시민들의 분향소 방문도 평시보다 드물었다.

이 장관의 지시에 수행원들은 ‘유가족 찾기’에 나섰다. 급기야 한 수행원은 분향소 옆에 설치된 유가족들 쉼터 텐트의 문을 동의 없이 열기까지 했다. 현장에 있던 이미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 “막 열어보지 마시라”며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황당한 행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 장관은 분향소 앞에서 붉은색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을 코앞에서 보고도 자신의 수행원에게 “유족분들은 안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텐트를 확인하고 나온 수행원도 “지금은 안 계신 거 같다”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피눈물, 상처, 고통을 의미하는 붉은 목도리를 항상 두르고 있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 실장이 “연락도 없이 이렇게 막 와서 조의 표했다는 걸로 끝내려고 지금 온 건가. 공식적인 사과 입장이라도 가지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발했지만 이 장관은 답이 없었다. “국정조사에서 이 장관 사퇴 요구하는 것 못 보았나. 어떤 면목으로 지금 여기에 온 건가”라는 비판에도 이 장관의 수행원만 “유가족에게 위로 말씀드리려고 한다.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부랴부랴 다른 수행원이 이 장관 곁으로 와 붉은 목도리를 두른 한 유가족의 존재를 알리자 이 장관은 그제야 유가족에게 가 자신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소개하며 “얼마나 마음의 상심이 크시냐”고 말했다.

이 장관을 마주한 이 유가족은 눈에 눈물이 가득 찬 모습으로 울먹이며 “(상심이) 너무 크다. 표현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장관은 “내일이 설인데”라고 했고, 유가족은 희생자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설인데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없다. 가족과 못 지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이 장관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어쨌든 이런 젊은 청년들을 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글쎄요. 무엇을 하실 건가”라며 허탈한 심경을 표출하는 유가족에 이 장관은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유가족 한 명과 55초의 대화를 마친 이 장관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걸어가는 이 장관의 등 뒤로 “사퇴하라”는 외침이 들렸지만, 이 장관은 반응하지 않았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도둑 조문” 규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사퇴 요구는 묵살한 채 불쑥 분향소를 방문한 이 장관의 “도둑 조문”을 강하게 규탄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성명서를 내 “유가족에 대한 배려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장관과 그 보좌진들의 행동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 장관은 의도적으로 유가족과 시민이 가장 없을 것 같은 날에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한 ‘한번 만나자’는 이 장관에게 유가족협의회는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 11월 유가족과의 비공식적 만남만을 요구하면서 유가족협의회의 전체 만남은 거부하기까지 했다”며 “이 장관이 진정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른 책임을 인정해 사퇴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유가족협의회에 직접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뒤 조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대책회의도 성명을 통해 “참사 책임자로서 통렬한 반성과 사죄의 말도 없이 도둑 조문을 와 유가족을 위로한다며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며 “자신의 위치와 책무를 망각하고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아 위로 운운하다니. 이러한 조문은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 측의 합동분향소 기습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의 반발에 30초 만에 자리를 뜬 바 있다. 당시 한 총리는 분향소에 와 그 주변에서 진을 치던 극우단체 회원과 악수하고, 분향소를 벗어나는 과정에는 무단횡단까지 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냈다.
 

“ 김도희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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