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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와 시니어 배우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한국사회는 오는 6월이면 전 국민이 1년에서 2년까지 나이가 어려진다. 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이른바 ‘만 나이’로 바뀌며 발생하는 전 국민의 연소화다. ‘외국과 계산법이 달라 불편하다’는 표면상 이유와 별개로 한국인의 나이는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특히 나이를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진 노인세대의 등장은 과거의 ‘상식’을 현재의 ‘편견’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노인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이들은 과거 한국사회의 문화, 가치, 소비 등의 변화를 이끌었던 베이비붐 세대와 이른바 X세대다. 한국 인구 구조상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흔히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이중 맏이인 1955년생 77만명은 이미 2020년 65세로 법정 노인인구 대열에 합류했다. 막내인 1963년생 역시 올해 60대에 진입한다. 이들에 뒤이어 X세대가 노인세대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중위연령인 44.3세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다. 연령대에 대한 정의에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4050세대가 X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대 스스로 본인이 ‘노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2년에 한 번씩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를 발표한다. 지난해 12월 제9차(2021년도) 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조사기간은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였고, 조사대상은 4024가구다. 개인 기준으로 따지면 6329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노후생활에 대한 조사다. 이때 노후시작 연령은 ‘노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응답자들은 평균 69.4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인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0대 미만은 67.9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삼은 반면, 50대는 68.8세, 60대는 69.1세, 70대는 70.1세 등으로 점차 노후시작 연령을 높게 잡았다. 쉽게 말해, 한국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등은 앞으로 최소 10여년은 자신을 노인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법적 정의와 사회적 인식 사이에서 발생한 괴리는 ‘젊은 노인(YOLD·욜드)’이라는 모순적 단어를 만들었다. 이를 굳이 ‘뉴 그레이’, ‘액티브 시니어’ 같은 영어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노인을 두고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건 아니지만 기업들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Grey is The New Pink)’라는 표제 아래 다양한 시도를 쏟아내고 있다. 나잇대별로 공략 가능하던 목표 상품(for aged)들이 이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품(ageless)로 대체되고 있다. 2040세대가 즐겨찾는 스타벅스, 애플, 테슬라 등의 상품을 5060세대 역시 똑같이 선호하는 현상이 시장에선 이미 나타나고 있다.

패션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엄마와 딸이 옷장을 공유하는 콘셉트의 화보가 등장한다. 대중이 쉽게 찾는 스파(SPA) 브랜드의 경우 애초에 나이 구분 없이 의류를 판매한다. 취미·여가 활동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에 ‘중년 부부 캠핑’만 검색해봐도 5060세대가 떠난 캠핑 동영상이 쏟아진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기던 활동적인 취미 분야에까지 젊은 노인들이 큰 손으로 등장했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일시적 취미생활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경우다. 이는 평생 매달렸던 직업과 ‘결별’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나이’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중문화, 예술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른바 ‘시니어 배우, 모델’의 등장이다. 주간경향은 단순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변화를 보기 위해 시니어 배우 지망생들을 찾아나섰다. 60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꿈을 찾은 ‘어르신’들의 찐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곧 설 연휴다. 부모님을 만나뵙고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여쭤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듯하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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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훤칠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녀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간에 속속 모여들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아니면 생김새만으론 나잇대를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동그랗게 배치된 의자에 앉아 파란 표지의 책에 각자 열중해 있는 이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누군가 공부하는 중년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딱 그 모습이었다.

오후 2시가 되자, 손에 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든다. “연습 시작하죠”라는 소리에 맞춰 다소 느슨해져 있던 분위기가 이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모두 12명이 정확한 순서에 맞춰 미리 준비한 말들을 딱딱 내뱉었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TV 드라마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사실 이들이 맞춰보고 있는 것은 실제 연극의 한 부분이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를 제외하면 이 공간에 모인 사람 모두 평생 배우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살아왔다는 점이다.

연극의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은 로렌조박(활동명)은 올해로 예순다섯 살이 됐다. 평생 패션·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 2021년 연기를 시작했다. ‘왜 60이 넘어 연기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상 마흔다섯 살 정도면 정년인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며 “평생을 남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해왔는데 한 번쯤은 ‘내가 주인공이 돼서 해보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 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이유로 망설이며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시대가 변했다. 이미 외모만으로는 한 사람의 나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해진’ 사회적 상황 역시 나이에서의 해방을 재촉한다. 특히 고도경제 성장 시대를 이끌고 향유한 베이비붐 세대와 개인주의, 합리성, 창의력을 무기로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과 혁신을 선도해온 X세대가 어느덧 각각 노인과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젊다. 애플워치를 손목에 차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즐겨 마신다. ‘뉴 그레이’의 물결이다. 이들의 등장은 “과연 늙음과 젊음의 물리적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김 대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동시에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년배’들을 재촉하는 인물이다.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시니어 배우들을 발굴하고 자신이 만든 무대에 데뷔시키는 일이다. 열아홉 살에 연극배우로 데뷔해 한복 모델, 뮤지컬 배우, 극작가, 작사가, 연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본인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다 해봤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의 열정은 각종 제약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저 60대예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시니어 배우들이 좀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김 감독과 얘기를 나눠봤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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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어떤 연습을 하고 있나.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를 준비 중이다. 정식 무대에 서기 전 출연진들과 함께 대사를 맞춰보고 있다. 배우들은 모두 ‘케이 드림웍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니어 배우들이다. 대본 역시 이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썼다. 연극계 최고 스타로 50년을 군림한 주인공이 치매에 걸리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 감성 코믹극이다.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당사자인 아들, 딸, 며느리 등이 겪는 속내를 보여주고자 했다. 시니어들은 한 번쯤 겪어봤거나,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니 연습 중에 눈물을 흘리는 배우도 있었다.”

-시니어 배우라는 용어가 낯설다.

“12~13년 전쯤 한국에 ‘시니어 모델’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서 등장한 개념은 아니고, 평소에 ‘잘 생겼다. 예쁘다. 모델해도 되겠다’라는 이야기를 듣던 중·장년층 중 ‘실제 무대에 설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생긴 변화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몇몇 에이전시에서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실제 데뷔를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이로 인해 시니어 모델에 대한 꿈과 열망, 호기심이 폭발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모델에서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리적 나이로 구분할 수도 있나.

“내가 1963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할머니, 할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나와 같은 세대가 시니어 세대로 진입했다. 우리 연극의 경우는 60대 이상이 주축이다. 가장 어린 며느리 역할을 40대가 맡고 있다. 대부분 처음 연극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다. 집에서 손주를 보거나 1년에 한두 번 친구들과 모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전부였던 시니어 세대의 일상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성취감도 느끼고 싶어하는 기존과는 다른 욕구를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대부분 물질적·시간적 여유가 있고, 건강한 이들이다. 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 화려한 직업적 경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배우, 모델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보면 취미로 시작하는 분들과 실제 프로 배우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로 나뉜다. 취미로 시작하시는 분들은 ‘나는 여기까지만 즐길 거야’라는 선이 있다. 아마추어 동호회나 문화센터 등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으로서 이용한다. 반면 프로가 되려는 분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이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 모델일을 한 경험이 있거나, 아역배우 출신이다. 인플루언서나 개인 라이브 방송 등으로 진출을 꿈꾸는 분들이 있고,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손잡고 연예계 데뷔 과정을 밟는 분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돌고 돌아 자기 인생의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피워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

-직업으로서 시니어 배우, 모델이라면 뚜렷한 이미지가 다가오지는 않는데.

“시니어를 언어적 개념으로 보면,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 육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시니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들도 시니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정의에 맞춰 그럼 ‘시니어 배우’는 누구일까 생각해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 단역배우’, ‘취미로 모델, 배우 활동을 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구분돼 있다. 모델료를 주지 않고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심지어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들 정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노인이 직업배우로 데뷔를 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맞다. 생계형으로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젊었을 적 꿈을 늦게라도 실현해보고 싶은 이들이거나 기존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도전하는 분들이 많다. 어떤 목표로 시작을 했든 시니어 배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직업적 관점에서 놓고 보면, 실리냐 명분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얘기다. 실리를 택한다면 이들을 프로 배우로서 출연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끔 성장시켜야 한다. 반대로 명분에 중점을 둔다면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좀더 이롭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최선은 나 혼자 즐기고 재밌는 일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쪽이라고 본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준비 중인 자선공연은 기여의 한 형태인가. 이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시작은 SNS 등에 공지를 냈다. 이런 자선공연이 있는데 재능기부를 할 시니어 모델, 배우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은 찾아와 달라고 했다. 이분들에게 출연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함께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열고, 이로 인해 수익이 발생한다면 전부 보육원에서 퇴소해 살길이 막막한 청년들을 돕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다행히 오랜 연극배우 생활을 한 나를 믿고 많은 시니어 배우 지원자들이 찾아와 주셨고, 오디션을 통해 최종 스무 명 정도를 선발했다. 나 역시 모든 노하우를 총동원해 이분들을 배우로 거듭나게 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연히 교육은 전부 무료다. 시니어 배우들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이로 인해 기부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중이다.”

-자선공연이 시니어 배우,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배우를 꿈꾸며 돈을 내고 학원은 다닐 수 있겠지만 시니어들이 실제 무대경험을 쌓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모델로 쇼를 한번 나가려고 해도 모델료를 받기는커녕 참가비를 내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언제까지 돈을 들여 막연한 꿈을 좇을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좋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경험을 쌓을 무대가 없다면 시니어 배우들은 계속 아마추어로 머물며,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무대를 제공해 이들이 경험을 쌓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사회에 기부하는 구조로 바꾸려고 한다.”

-많은 공연 무대가 갑자기 생기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한국 뮤지컬계는 주로 기존 외국작품들을 들여와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비싼 라이선스를 지불하고 들여온 작품에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을 쓰겠나. 이른바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에게만 배역이 돌아간다. 이런 일이 장기화되면 신인들의 등용문이 막히게 된다. 시니어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다. 극작가로서 작품을 쓰게 된 이유 중에는 이러한 상황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창작 뮤지컬도 쓰고 있다고 들었다. 같은 이유인가.

“우선, 창작 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한국형 뮤지컬’로 바꿔 불러야 한다. 수십년을 뮤지컬과 연극을 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작품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언제 그런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극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꿈을 가진 시니어 배우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결국 유료공연이 가능해야 이들이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는 보육원 퇴소 청년들을 돕기 위한 공연이지만 관람은 유료다. 배우들은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고, 기본적인 교통비 정도만 지급한다. 이와 별개로 유료 공연인 만큼 관객들이 그만큼 가치 있는 작품을 봤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니어 배우들 역시 이 부분에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관객들에게 프로로 대우받으려면 시니어 배우들도 노력해야 한다. 한 해에 예술대학에서 문화계로 배출하는 인원이 엄청나다. 배우는 넘쳐나는데 막상 그들을 소화할 작품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 안 된 시니어 배우들을 3만~4만원짜리 유료 공연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 장벽을 깨부수려면 시니어 배우들 스스로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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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왜 시니어들한테 판을 깔아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내가 시니어 배우이기 때문이다. 사실 각종 무대에서 활동한 많은 프로가 자신이 시니어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배우라고 나이를 잊고 살 수 있나. 자신의 재능을 나이가 들었다고 감추며 사라지기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지금까지 40여년간 무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앞으로 15~20년 더 활동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이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이나 정보가 부족해 무대의 꿈을 포기하는 분도 많다.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일단은 정확한 자기진단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려면 전문가에게 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가족의 동의도 중요하다. 젊은 친구들도 연극, 뮤지컬계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그들보다 더 뒤늦게 시작하는 만큼 그에 못지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 시니어라고 한 수 접어줄 수는 없다. 나이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시니어로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까지 가보려고 노력하는 데서 예상치 못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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