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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야간문화제 강제 해산한 경찰, “위법한 공권력 남용” 비판 직면

현실화된 경찰의 과잉 대응, 노동자들 “절박한 비정규직 노동자 목소리 누구도 막을 수 없어”

 

 

  • 발행 2023-05-26 15:59:20

 

  • 수정 2023-05-26 16:06:35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 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2023.05.25. ⓒ뉴시스
경찰이 대법원 앞에서 평화롭게 야간문화제를 진행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물리력을 행사해 강제 해산시켜 논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3년간 같은 장소에서 20여차례 문화제를 진행해 왔지만, 경찰이 이 같은 대응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금속노조 김동성 부위원장은 "경찰은 우리가 평화롭게 진행하려 한 집회와 선전전, 문화제를 모두 원천 봉쇄했다. 선전용 방송차도 자발적으로 이동시키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음에도 강제 견인했고, 폭력적으로 노동자 3명을 연행했다"며 "경찰이 이렇게 한순간 태도가 바뀐 건 대통령의 한마디 말 때문이다. 사용자, 재벌 대기업에게는 그토록 관대하기 그지없는 법 집행이 왜 노동자에게만 가혹한 건지 우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야간문화제와 노숙농성을 진행하려 했다. 수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인 불법파견 사건에 대한 판결을 조속히 내려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경찰이 대법원 앞 인도의 절반가량을 펜스를 치며 막아섰고,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차량을 강제로 견인해 갔다. 이 과정에서 3명의 노동자가 무대 차량 앞에 앉아 견인을 막으려 하자 공무집행방해라며 현행범으로 체포해 갔다.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문화제도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경찰이 문화제를 '미신고 집회'로 규정하며 강제 해산 절차에 나서면서다. 문화제와 노숙농성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주최 측도 신고하지 않았고, 경찰 역시 막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번 문화제에서 경찰의 대응이 180도 달라졌다. 

전날 경찰은 수백명의 기동대를 동원해 2열로 차분히 앉아있던 50여명의 노동자를 포위했고, 경찰 5~6명이 노동자 1명을 에워싸며 건너편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강하게 저항할 경우에는 사지를 들고 끌어내기도 했다. 경찰의 강제 해산 조치는 불과 30분 만에 끝이 났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 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2023.05.25. ⓒ뉴시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인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은 "어제 정부와 경찰이 보여준 행태는 폭력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불법 파견을 10년, 20년씩 자행해서 수천억원의 이윤을 챙기는 기업의 불법행위는 엄중 처벌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목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법은 평등한 게 맞나. 이게 법과 원칙이냐"고 따져 물었다.

차 지회장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몇년째 해오던 노동자들의 문화제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불법 집회가 된단 말인가. 그럼 그동안은 합법이었고, 어제부터 불법이었단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차 지회장은 "그럼에도 우리는 대법원 앞에 오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 달에 또 대법원 앞에 와서 문화제를 진행하고, 노숙농성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절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는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경학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장도 "우리가 왜 대법원 앞에서 투쟁을 하는지 아시나. 한국지엠은 불법파견으로 이미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한 번은 벌금 700만원, 또 한 번은 집행유예에 그쳤다"며 "민사 하나 진행되는 데 7년이 넘게 걸리고 있고, 대법원에 2020년에 올라간 사건은 3년이 넘도록 깜깜무소식이다. 우린 이걸 '블랙홀'이라 부른다"고 지적했다.

김 지회장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3년째 대법원 앞에서 평화로운 투쟁 문화제와 노숙농성을 진행해 왔지만 경찰은 대통령과 경찰청장의 말 한마디에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며 "불법 파견 범죄를 저지르는 자본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권력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과 물리적 충돌도, 욕설도 없었는데
'공무집행방해'라며 현행범 체포
변호사 "어느 하나 위법하지 않은 행위 없어"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 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2023.05.25. ⓒ뉴시스

경찰의 대응이 180도 달라진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근 경찰청장의 '집회 강경 대응' 지시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상경 투쟁을 문제 삼으며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특진까지 내걸며 전국 경비 경찰에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윤 청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불법이 없는 건 아니"라며 사실상 소음과 교통 체증 같은 문제에도 강경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윤 청장은 이날도 전국 지휘부 화상 회의를 열고, 불법 집회·시위는 현장 해산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신속하고 단호하게 수사를 진행하라는 취지의 주문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집회·시위 강경 대응 과정에서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변호사는 전날 경찰의 강제해산을 두고 "명백하게 위법한 공권력 남용"이라고 규정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앞에서 열린 문화제는 집시법 15조에 의해 신고 의무가 면제되고, 법원 경계 100m 이내에서도 열 수 있다"며 "설사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고가 필요한 집회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원천 봉쇄 및 강제해산 행위가 적법한 행위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집회 해산 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고, 그 집회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 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 명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어제 문화제는 지극히 평화적으로, 50명에 불과한 소수가 인도에서 통행로를 확보한 채 진행됐다. 도저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를 때 강제해산 대상이 될 수 없는 집회"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무대 차량을 강제 견인하고, 3명의 노동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 역시 "공권력 남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대 차량 강제 견인을 하려면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범죄의 예방과 제지), 즉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행위에 한해 강제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설사 문화제에 미신고 등 위법 요소가 있다고 해도, 무대 차량 사용이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에 해당한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문화제 참가자 3명을 현행범 체포한 것도 위법성이 있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죄라고 하는데, 공무집행방해는 단순히 공무를 방해했다고 성립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을 때에만 해당한다"며 "경찰에 대한 폭행, 협박은 물론 경찰과 신체접촉도 하지 않았고, 욕설도 단 한마디조차 없었다. 도저히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이 될 수 없는데도 체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대 차량 강제 견인 등 문화제 원천 봉쇄, 강제 해산, 참가자 현행범 체포 등 경찰 행위 중 어느 하나 위법하지 않은 행위가 없다"며 "윤석열 정권이 헌법 정신과 법을 무시하는 무도한 권력에 불과하다는 걸 경찰력 행사를 통해 스스로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도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불법집회'라고 간주하며, 2차례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대부분의 기자회견에서 관행적으로 구호 제창이 이뤄졌음에도 불필요하게 참가자들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전날 연행된 3명의 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3시까지도 풀려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공무집행방해 외에 일반교통방해 혐의로도 재조사를 받았다. 이들을 변호하는 김유정 변호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재조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 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2023.05.25.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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