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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탄핵 피해 도망치려는 이종섭 장관, 55만 장병들에게 안 부끄럽나?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09.12 ⓒ뉴시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2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복수 보도에 따르면 장관직을 내려놓으려는 이유는 ‘정치권서 탄핵 얘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안보 공백을 우려해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적어도 탄핵 말고 다른 이유를 댈 줄 알았는데, 솔직해도 너무 솔직해서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군인으로서 거짓말은 차마 못하겠다는 것일까.

사의가 수리되고 장관이 교체되면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탄핵 절차는 현실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직을 내려놓은 상태이므로, 탄핵 절차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더라도 헌법재판소로선 심판 대상이 없어 사건을 각하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노골적이고 비겁한 회피가 아닐 수 없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장관을 상대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탄핵 절차로 얻을 수 있는 공익적 효과는 상당하다.
야당이 이 장관의 탄핵을 추진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해병대 수사단(전 단장 박정훈 대령)이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초동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주체로 지목되는 이 장관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탄핵 심판은 형사 처벌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므로 형사재판 절차에 비해 사실관계 심리가 상대적으로 덜 구체적으로 이뤄질 순 있다. 그러나 외압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 절차가 언제, 어떤 기관을 통해 개시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정한 수준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해서 그에 따른 헌법적 책임을 묻는 탄핵 절차는 국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면 피청구인인 이 장관뿐 아니라 외압 의혹의 최윗선으로 지목되는 용산 대통령실(국가안보실) 사람들, 국방부 차관 및 법무관리관, 윗선이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살리고자 했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도 증인으로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소환된다. 특히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받으면 누가 사단장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외압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재판정에서 다룰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직접 증인으로 재판정에 서는 것이 순리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위와 같은 윤 대통령 발언 의혹을 뭉개거나 부정하고 있는 대통령실 실장·수석급 인사들을 무더기로 재판정에 세울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

결국 이 장관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전에 스스로 옷 벗는다는 건 이러한 합당한 진실 규명 절차를 깡그리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고, 윤 대통령이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게 되면 그러한 비상식적인 상황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장관 주장대로 자신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정당하게 탄핵 심판대에 서서 무결함을 인정받으면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심판을 회피하는지 모르겠다.

군인복무기본법(구 군인복무규율) 5조 3은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으로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판을 피해 도망치는 건 명예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명예롭지 않은 행위를 허락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건 상관에게 부정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투철한 충성심에 위배된다. 명예와 충성심이 없는데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그걸 누가 인정하겠는가.

이 장관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55만 장병들에게 부끄럽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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