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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장악 강행하려 국회마저 마비시킨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2023.08.25. ⓒ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의지가 심상찮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탄핵 심판 위기에 놓였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받아들여 면직안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주도로 발의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던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처리 절차가 무력화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25일 취임 후 정부 주도의 방송장악 돌격대 역할을 해왔다. 이 위원장 취임 후 방통위는 KBS 보궐이사 임명안 및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임명안 의결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도 재편 작업에 매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KBS 사장이 친정부 수구 성향으로 교체될 수 있었다.

방통위는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 대통령 직속 합의제 독립기구다. 상임위원 5인은 대통령 지명 2인,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되는데, 이 위원장 임명 후 대통령 지명 2인(이동관 위원장, 이상인 부위원장) 체제로 운영되어왔다. 그 전에는 5월 말 한상혁 전 위원장이 면직된 후 당시 상임위원이었던 김효재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이상인 3인 체제(이상인, 김현 전 상임위원)로 운영됐었다. 김효재·김현 전 상임위원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2인 체제가 된 것이다.

방통위는 야당 추천 위원이 배제된 2인 체제에서 방문진 이사 해임 등 무려 14건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최민희 전 의원 등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계속 미루면서 2인 체제에 기초한 방송장악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되는 6개월 이상 위원장 자리가 비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상인 부위원장 1인 체제로 안건을 의결할 수 없는 상황이 놓인다. 방송장악을 위한 방통위 차원의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 오랜 기간 중단되는 것이다. 결국 내년 4월 총선 전 방송장악을 완성하는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된다.

방통위는 당장 이달 중 주요 지상파 재허가 심사, 내년 상반기 종편 채널A와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YTN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던 방문진 이사장 해임 절차도 권익위원회 신고 절차를 동원해 재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었다.

윤 대통령의 사표 수리로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절차가 사실상 무효화됨에 따라 방통위는 위와 같은 방송장악 작업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새 위원장을 지명하면 인사청문회 절차 등을 거쳐야 하지만, 헌재 탄핵 심판에 따른 최소 6개월의 공백이 발생하는 것에 비하면 최종 임명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그나마 짧다. 여당 추천 위원만 윤 대통령이 원 포인트로 임명해서 방통위를 2인 체제로 만드는 방안도 있다. 윤 대통령이 이 위원장 탄핵 추진을 무력화함으로써 방통위 의결 요건을 충족시키는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민주당으로선 지난달 초 여당인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돌연 취소함에 따라 이 위원장 탄핵안 표결을 하지 못한 데 이어, 이번엔 이 위원장의 꼼수 사표와 이를 수리한 윤 대통령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지난달 9일 민주당은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뒤 같은 날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했다. 국민의힘이 해당 본회의에서 상정·처리될 노란봉투법·방송3법에 반대해 장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예고한 데 따라, 본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탄핵소추안을 표결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내에 표결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탄핵안 처리를 막고자 노란봉투법·방송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취소하면서 법안 통과 후 본회의가 산회했고, 이에 따라 해당 본회의에서 탄핵안 표결이 이뤄지지 못했다.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국회의 이 위원장 탄핵소추 절차는 20여 일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은 절차상 빈틈을 이용해 국회의 탄핵 시도를 무위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연이은 불의의 일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번 이 위원장 사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선 이후 대응 방안에 대한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새 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지연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윤 대통령의 임명 강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번 사례를 통해 확인된 교훈이 있다. 탄핵소추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탄핵소추 대상을 면직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탄핵이라는 핵심적인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안 발의 단계에서 임면권자의 권한 행사를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 강경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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