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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정훈 항명죄’ 수사 착수되자 군 공문서 핵심 문구 바뀌었다

‘외압 폭로’ 박정훈 보직해임 사유 ‘장관 지시 불이행’에서 ‘사령관 지시 불이행’으로 변경

국방부 검찰단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구인영장을 발부해 체포하는 모습. 2023.09.01. ⓒ뉴시스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 당국의 보직해임 사유가 군검찰단의 항명죄 수사 착수 이후에 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29일 ‘민중의소리’ 취재에 따르면 해병대 사령부는 작년 8월 2일 박 대령의 보직해임 사유를 ‘장관 지시 불이행’이라고 적시했다가, 박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한 군검찰단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참고인 조사 이후에 ‘사령관 지시 불이행’으로 변경했다. 이날은 박 전 단장이 윗선의 의중과 달리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특정한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한 당일이다.

해병대 사령부는 8월 2일 박 대령에 대한 해병대사령부의 ‘선(先)보직해임 건의 보고’ 문건에 박 대령의 비위 사실을 ‘채상병 사건 이첩에 관한 장관 지시 불이행’이라고 썼다. 그러나 8월 4일자 박 대령에 대한 ‘장교 보직해임 심의위원회 안건’의 세부 사유에는 ‘채상병 사건 이첩에 관한 사령관 지시 불이행’이라고 적시했다. 기존에 쓰여진 ‘장관’ 문구에 세 줄을 긋고 ‘사령관’으로 바꿔 적은 것이다.

군 당국이 박 대령의 항명 대상을 누구로 특정하느냐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박 대령이 장관 지시를 어긴 것이 되면, 김 사령관도 항명죄로 엮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법원법 38조는 국방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지휘·감독할 수 있는 대상을 각 군(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군검찰단장으로 한정해놓고 있다. 다만 해병대 수사단과 같은 일선 군사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규정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 지휘·감독과 관련해 해당 법 조항을 준용할 경우 국방부 장관은 채상병 사건과 관해서는 김 사령관을 통해서 지휘를 할 수 있으므로, 항명 근거를 ‘장관 지시 불이행’으로 규정하면 김 사령관도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군검찰 입장에서는 김 사령관을 항명을 공모했다고 입증하기도 까다로워진다. 결국 군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박 대령이 ‘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긴 것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진행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박 대령이 ‘사령관 지시 불이행’을 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여태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대령은 군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 사령관이 자신에게 명시적인 이첩 보류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 과정에서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 및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죄명 및 혐의자 특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해 김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특정한 결론을 주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윗선 주문대로 죄명과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이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는 등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정황도 확인됐다.

재판 과정에서도 김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명확히 하지 않고, 이첩 당일에도 박 대령의 이첩 강행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 1일 박 대령의 항명죄 사건 군사법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등을) 명령할 때 구체적으로 ‘이첩을 보류하라’ 아니면 ‘보류해’, ‘일단 멈춰’ 이런 워딩이 있지 않았나”는 재판부 질문에 “수사단장에게 딱 ‘당장 이것을 보류하라’고 단정해서 했던 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재판부가 “피고인(박 대령) 진술에 따르면 (사건 이첩 당일인) 8월 2일 10시경 증인(김 사령관)이 피고인을 호출했을 때 ‘죄송합니다’라고 얘기하면서 ‘이첩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알겠다’고만 얘기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그 말은 거짓이냐”고 묻자, 김 사령관은 “모르겠다. 그 순간은 잘 기억은 안 난다”고 말했다.

박 대령이 항명죄로 입건된 시점은 8월 2일 오후이며, 김 사령관이 이 사건과 관련해 군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 건 같은 날 저녁이다. 김 사령관은 군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같은 날 밤 수사단 박모 중령과의 통화에서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이 자신의 지시를 불이행했다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대령이 사건 이첩을 강행한 직후 박 대령에 대한 선보직해임과 군검찰의 입건 절차 등 후속 조치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지고, 박 대령의 보직해임 사유가 변경되는 과정에 군검찰과 김 사령관 사이 모종의 소통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사령관 지시를 어긴 것으로 하면 박 대령이 잘못이고, 장관 지시를 어긴 것으로 가게 되면 사령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가이드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8월 2일 군검찰의 김 사령관 진술조서에 기재된 조사 시간은 2시간 28분인데, 공식 문답 분량은 해당 시간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변호사는 “자기들끼리 ‘사령관 지시사항’을 어겼다는 것으로 사전 논의를 하고, 정리된 내용을 갖고 짧게 문답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 대령 측은 향후 수원지법에서 진행될 박 대령 보직해임 무효 확인 소송에서 해병대 측 보직해임 과정의 문제점을 입증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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