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언론은 이번 8.15를 ‘둘로 쪼개진’ 광복절로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일매국 윤석열의 반자유·반통일세력과의 투쟁 결의대회’와 ‘친일 사관에 맞선 항일애국 독립운동단체의 광복절 행사’이다.
‘항일애국 독립운동단체 광복절 행사’는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폄훼하고 친일매국노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친일매국 행태에 맞서 선열의 자주독립 운동의 얼을 선양, 계승하는 독립운동단체의 결기 어린 대회였다.
윤석열은 이번 경축사에서 ‘일본’을 단 2회 언급했다. 그마저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일본과 비교하는 데, 그리고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를 비교하는 데 ‘일본’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이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정부 산하 국내 3대 역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김낙년(『반일 종족주의』의 저자)을 7월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허동현(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참여)을 5월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박지향(『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공동 저자)을 1월에 임명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이들 역사기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배 만행을 밝혀내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들 기관의 수장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본의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공공연히 부정해 온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을 버젓이 임명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친일매국노가 판을 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를 보고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광화문광장에서 “제79주년 광복절 맞이 ‘친일 주구’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윤석열을 지칭하며 “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입니까?”라고 비난했다.
경술년(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어 나라가 망했다. 바로 경술국치(庚戌國恥)였다.
그리고 일본은 더욱 강력하고 보다 직접적인 통치기관이자 수탈기관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그 우두머리로 총독을 두어 1910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통치했다. 총독은 ‘오직’ 일왕에게만 책임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존재로 총독의 말이 곧 법이었다.
총독의 면면은 하나같이 철천지원수지만 그중에도 악질적 총독의 면면이다.
초대는 데라우치 마사타케(1910.8.29.~1916.10.14.)로 취임식에서 ‘이제부터 조선인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라고 무단통치를 실시한 자다.
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1916.10.14.~1919.08.12.)는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때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관이었으며 의병 탄압에 앞장섰다. 총독 재임 시 3.1운동이 일어나자 무력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진압한 자로, ‘제암리학살사건’ 등 만행이 알려져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자 사임했다.
3·5대는 사이토 마코토(1919.8.12.~1927.4.4., 1929.8.17.~1931.6.16.)로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전환하는 등 형식상 ‘문화통치’를 하였지만, 실제로는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추진하면서 조선의 경제를 수탈하였다. 또한, 자치론을 들먹이며 친일파를 육성하여 민족분열 책동을 조장(助長)한 자이다.
7대 미나미 지로(1936.8.5.~1942.5.28.)는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문화통치를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핑계로 지원병제도,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사용금지 등 민족 말살 정책을 편 자이다.
8대는 고이소 구니아키(1942.5.29.~1944.7.21.)로 역시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조선인을 전쟁에 총동원시킨 자이다. 학도병 지원제와 징병제를 실시하여 수많은 청년을 전장으로 몰아넣은 원흉이다.
9대 아베 노부유키(1944.7.22.~1945.9.28.)는 1943년 조선 여성을 징발하기 위해 ‘여자정신근로령(女子挺身勤勞令)’을 공포하여 전쟁에 여성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이용했다. 이자는 놋그릇 공출, 전시 채권 강매, 강제저축 등으로 마지막까지 조선인을 착취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다른 날도 아니고 광복절에,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죄상을 거명하지도 않으니, 과연 한국의 대통령이란 말인가!
이러니 조국 대표에게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입니까?’라고 멸시당하는 것도 싸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박은식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서문당, 2019 / 수정 신판) 머리말에서 일본을 우리의 원수라 했다.
“일본 사람이란 것은 대대로 우리의 원수가 되어, 천백 년 이래로 쌓이고 쌓여서 서로 융합할 수 없다. 하나는 향기 나는 풀(薰)이고, 하나는 악취 풍기는 풀(蕕)과 같다, 절대로 피차 조화될 도리가 없다.
또 저들이 우리나라를 탈취한 것은 오로지 간사한 꾀와 힘으로써 하고, 신의와 맹약을 무시하여 버린 것이다. 비록 다행히 한때를 제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더라도,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는 결코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일본은 편벽(偏僻)되어 극동의 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서, 보고 들은 것이 본래부터 고루하다. 이는 새까맣게 물들이고 몸에는 먹실을 넣은 채 어별(魚鼈)과 함께 살고 있다. 음식·의복·가옥·기물 등은 우리에게서 배워 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보건대, 시급히 도모하여 자강(自强)하지 않으면 자존(自存)할 수 없고, 예의진취(銳意進取)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었다.
이에 국민을 무작정 외곬으로 돌진시켰다. (중략)
그러나 무인(武人)의 전제(專制)에 일반 민심은 불평을 품고, 밖을 향하여 내달림이 지나치게 급격하여 백성의 힘은 이미 피폐하였다.
저들이 우리나라를 도모함에 있어서, 우리의 민의를 무시하고 오직 소수의 간사한 무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싫어할 줄 모르는 야욕을 제멋대로 한껏 부린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도 또한 그 술책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 이권을 탈취한 것은 많으나 민의를 잃음이 너무나 많고, 더구나 그들의 군민(軍民)들은 교만하고 횡포하여 남에게 포학함을 저지른 (遇)가 많다.
그리하여 저들은 한 번 나아가서 우리의 2천만과 원수가 되고, 둘째는 중국의 4억 민중과 원수가 되며, 셋째는 러시아의 2억 국민과 원수가 되었다.”
일찍이 선열들은 일본을 천백 년 이래로, 대대로 우리 민족의 원수로 여겼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자가, 그것도 광복절에 일본 강점에 대한 사과는커녕, 아예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말인가!
이제 민중은 그동안 일본에 굴종·굴복한 윤석열과 한 줌도 안 되는 추종세력을 ‘친일매국노’로 천 년 동안 불러주마!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 없다!
다행히 윤석열과 달리 독립유공자와 후손단체인 광복회 이종찬 회장은 지난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단호하게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서 말했다.
특히,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일부이다.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일환으로 광복회원들의 결기를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분열의 시작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진정한 통합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광복절은 침해된 주권을 되찾은 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제 강점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주권을 침해당했을 뿐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립니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근간을 왜곡하는 일에는 반드시 단죄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복회는 친일 사관에 물들어 저열한 역사 인식을 가진 뉴라이트에 대해 “뉴라이트는 해방 후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일제강점기 일본의 국권 침탈은 불법·무효이다’라는 입장을 뒤엎어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입니다”라고 정의했다.
1.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2.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3.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5. 식민 사관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6. 일제강점기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7.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8.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9.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입니다.
윤석열은 작년 8.15 경축사에서 정부비판세력을 공산전체주의세력으로 매도하며 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라 예를 들며 망발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체주의세력은 자유 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공산전체주의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올해 또한 경축사에서 윤석열은 정부비판세력을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로 묘사하며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으로 매도했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하여 유통시키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고, 진짜 목표를 밝히면 거짓 선동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입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입니다.”
윤석열은 마치 일제강점하 제10대 조선 총독(?)인 양 행사하려고 하느냐!
과거 일제강점기는 헌병경찰제도를 두어 조선인들의 저항을 총독이 제압하고 감옥에 넣었다.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민족문제연구소, 2010)에 나오는 조선인 수감자 수치다.
“1908년 10월 말 재소자는 2,019명이었으나, 1909년에는 1일 평균 수용인원이 15,725명, 1930년 16,677명, 1940년 18,182명, 해방 직전인 1944년에는 21,900명에 달하였다. 피지배 민족인 식민지 조선인에게는 사실상 한반도 전체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윤석열이 말하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을 체포하여 한반도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윤석열은 지금 정권의 위기가 닥쳐옴을 알고, 탈출을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마치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준비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강력히 탄압하기 위해 ‘일본의 국체(國體) 및 정체(政體)의 변혁과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12.) 제정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중일전쟁을 도발하면서 조선중앙위원회(1937.7.)를 두고 조선 지식인에 대한 개인적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조선총독부 경무국 주도로 조선방공(防共)협회(1938.8.)를 조직하여 공산주의 사상 및 그 운동을 박멸하고 일본 정신을 찬양하게 했던 일제강점기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민족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 전선에서 투항하거나 ‘전향’한 사람들의 단체인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1938.8.)을 만들어 전향자들에게 ‘사상국방전선’에서 반국가적 사상을 파쇄하고 격멸하는 육탄 용사가 되기를 요구하는 일제강점기 정책을 보는 듯하다.
지난 8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전세 사기 특별법, 농어업회의소법, 지속가능한 한우산업 지원법 등으로 대부분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민생 개혁 입법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은 마누라와 장모 그리고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불볕더위도 이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꺾이기 시작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렁이 인간의 권력욕과 탐욕에는 자연의 순리를 기대해선 안 된다. 특히 일본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일본 국익에 복무하는 자는 그대로 둘 수 없다.
지난 자랑스러운 민중 투쟁 역사의 순리로 쟁취해야 한다.
무지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아!
민중의 ‘퇴진하라!’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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