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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규제 ‘사전지정’ 아닌 ‘사후추정’...대폭 후퇴한 공정위

공정위, ‘온플법’ 없이 공정법 개정만...‘티메프 재발 방지’ 관련 법 개정도 추진

김백겸 기자 kbg@vop.co.kr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 추진방향 발표하고 있다. 2024.09.19.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플랫폼 규제 대상을 당초 예고했던 '사전지정'이 아닌 '사후추정' 방식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온라인플랫폼 규제의 법적 근거 또한 온라인플랫폼법 등 별도 법 제정이 아닌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마련하기로 했다.

당초 공정위가 규제 대상을 '사전지정'해 규제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제정을 추진했던 것에서 대폭 후퇴한 입장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온라인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입법 방향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플랫폼 시장) 독과점 분야에서는 반경쟁행위의 신속한 차단을 위한 제도 보강을 통해 시장 경쟁질서를 보호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율 대상은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이며, 이는 법 위반행위가 발생한 후에 사후 추정하는 방식으로 특정되겠다"며 "당초 '사전 지정' 방침을 발표했으나 업계·전문가·관계부처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하여 '사후 추정'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규제 대상을 사후 추정하는 구체적인 추정 요건은 현행 시장지배적 사업자보다 강화해 독점력이 공고한 경우로 한정한다. 다만 공정위는 "스타트업 등의 규제 부담 등 우려를 고려해서 연간 매출액 4조원 미만 플랫폼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규율 분야는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등 6개 서비스 분야이며, 금지되는 반경쟁행위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이다.

또 공정위가 플랫폼사의 불법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위법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은 사업자가 져야 한다. 한 위원장은 "지배적 플랫폼의 영향력에 상응하는 강화된 입증책임을 부여하겠다"면서도 "다만 경쟁제한성이 없는 경우 등에 대한 항변권은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반경쟁행위로 적발된 경우에는 과징금 상한을 현행 기준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관련 매출액의 6%보다 상향한 8%로 하기로 했다. 반경쟁행위의 신속한 차단을 위해서 임시중지명령 제도도 도입한다. 임시중지명령은 공정위가 조사·심의를 거쳐 시정 조치를 부과하기 전 해당 기업의 반칙 행위를 임시로 중지하게 해 소비자 피해 확산을 막는 제도다. 다만 위반행위에 따른 형벌은 제외될 예정이다.

"업계·관련부처 의견 반영해 사전지정에서 사후추정으로 변경"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플랫폼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힘이 큰 소수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플랫폼 업계와 국민의힘에서 사전지정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자 공정위는 사전지정제도를 다시 살펴보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온라인플랫폼 시장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여러 시장을 아우르고 있는 플랫폼을 규제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공정거래법의 규제 대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규정하는 현재 기준을 플랫폼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고, 규제가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사전지정제의 별도 법이 필요하다고 시민단체와 소상공인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A기업이 B플랫폼을 공정위에 신고한 사례를 보면, 2019년 6월 신고를 접수한 공정위가 B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라고 결론 낸 것은 2021년 8월이다. 신고부터 결론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공정위는 해당 플랫폼이 지난 2017년부터 2020년 9월까지 101개 납품 업자에게 경쟁 온라인몰 판매가가 내려갔을 때 판매가격을 인상하라고 요구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더구나 규제와 함께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식의 사후추정제으로 인해 기업이 항소한다면 실제 규제가 실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규제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A기업의 신고로 결정된 공정위의 제재도 현재 중단된 상태다. 플랫폼은 공정위의 제재 결정에 즉각 행정소송을 냈고,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거래당사자 사이에 모든 조건이 동등한 경우"라며 B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가 상고해 재판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그 사이 B플랫폼은 A기업과 거래를 재개해 아무런 사업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결국 공정위가 여당과 업계의 바람대로 기존의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사후추정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규제 방안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사후추정은 사전지정과 분명히 다른 방식이다. 사전지정은 일정 사업자를 수검자로 특정하는 방식이지만, 사후 추정은 그렇게 하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면서 "다만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빠르게 추정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입법 목적을 상당 수준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항소 등으로 규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사후추정 기준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보다 조금 더 엄격하게 돼 있다"면서 "(시장)지배력이 더 강한 기업이라는 기준을 만든 것이고, 그 요건에 해당되면 (시장)지배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은 이번 22대 국회 들어와서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 다수 발의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이번 공정위가 밝힌 입법 방향은 야당의 동의를 얻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입법 형식이 바뀌어도 내용 면에서는 지난번에 추진했던 저희 제정안의 내용이 대부분 개정안에 반영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힘과는 당정협의를 마쳤고,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에 대해서는 저희가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8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에서 한 피해자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2024.07.28. ⓒ뉴시스

대규모유통업법에 플랫폼 기업 포함...기준은 두가지 안 제시

이날 브리핑에는 티몬·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안도 제시됐다.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 대상에 일정규모 이상의 플랫폼 기업(통신판매중개업자)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공정위는 지정 기준에 대해서는 두가지 안을 제시했다. ▲연간 중개거래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의 사업자 ▲연간 중개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거래금액 1조원 이상 사업자 등 두가지 기준이다.

또 이들의 정산 기한을 단축하고, 판매대금을 은행 등 신뢰성 있는 기관에 맡기는 방안을 의무화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정산 기한에 대해서도 ▲구매확정일로부터 10일에서 20일 이내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등 두가지 안을 제시했다. 모두 전통적 소매업(40일)보다는 짧게 설정했다.

이와 함께, 판매대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돼 판매사, 소비자 등의 피해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플랫폼이 제3의 기관을 통해 판매대금을 별도 관리하도록 의무화한다. 별도 관리해야 하는 판매대금의 비중에 대해서는 ▲100% ▲50% 등 두가지 기준을 제안했다.

한 위원장은 "신설된 규제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개정법을 일정 기간 유예 후 시행하고, 규율 강도도 경과규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상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미 관계부처 협의 등이 완료된 공정거래법 개정 관련 내용은 국회와 법안 발의를 신속히 협의할 예정이다. 복수안을 검토 중인 대규모유통업법 개정과 관련해선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이달 중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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