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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내란범들의 호남 혐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01/29 09:28
  • 수정일
    2025/01/29 09:2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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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권의 단독 저서와 여러 권의 공저가 번역되어 있는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름난 일본 영화 연구자며 아시아 대중문화 연구자다. 지은이는 1979년 도쿄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 과정에 있던 중에, 서울에 있는 건국대학교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사로 한국에 1년 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 2022년에 발표되고 작년 10월에 번역된 『계엄』(정은문고,2024)은 그때의 체험을 적은 것으로, 지은이는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논픽션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난 세노 아키오이지만, 그는 지은이의 스물일곱 살 적 분신이다.
 
1970년대의 풍경. 동아일보 1970년 3월 14일자 기사.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과밀 억제 대책에 관한 기사다. ⓒ자료사진

이 책은 1970년대 말 외국인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대학가와 도시의 풍속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를 흥미롭게 재현해 준다. 세노 아키오가 관찰한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별도의 의미가 필요 없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록하지 않는 사이에 그 익숙한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려, 이제 우리는 외국인의 눈에 포착되고 기록된 것을 통해 우리를 다시 보게 된다.

“식당에서 계산할 때면 항상 누군가가 다 계산했다. 비록 학생들끼리라도 각자 낸다는 습관은 없었다. 습관이라고 하지만 학생이 결코 풍족하게 생활비를 받을 리 없다. 여러 명의 밥값을 내다니 상당히 부담이 될 텐데. 하지만 그들은 마치 밥값을 신경 쓰는 일 따윈 하찮다는 듯이 화제에 올리기를 피했다.”(46쪽)

“이 학생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녀가 상경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그는 무서운 얼굴로 호통쳤다. 그런 천한 패거리가 쓰는 말을 최고 학부에서 배우다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녀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침내 입학 허락을 받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신만 이렇게 허위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54쪽)

“만원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거나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든 주부나 학생이 있으면 좌석에 앉은 승객이 가만히 손을 뻗어 짐이나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일본인은 만원 버스에 타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입구 쪽에 몰려 있기 십상이다. 한국인은 버스에 타자마자 일단 맨 뒤로 가서 다음 사람을 위해 충분히 공간을 마련해두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어디서 이런 상부상조하는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어쩌면 한국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한국인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게 아닐까.”(62쪽)

세노 아키오의 기록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그 이튿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갑작스레 막을 내린다. 지은이는 이후 21년 만에 서울 중앙대학교 객원교수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 사이에 한국은 몰라보게 바뀌었는데, 20년 넘는 변화를 증언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지은이는 1979년 8월 중순, 한국 여행을 온 대학교 동문 여학생으로부터 일본에서 막 출간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건네받아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리고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 “이 중편소설은 재미었었다.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 아닐까 판단했다.”(196쪽) 군사 문화와 최루탄으로 매캐한 한국에서는 하루키 소설 속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한 달관(쿨) 따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가족, 민족,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재치 넘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할 리 만무하다.”(198쪽)라는 것이다.

우리 속담으로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민주화와 동시에 완전한 대중 소비 사회가 실현”(297쪽)되었고, 한국인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은이의 단언과 달리, 하루키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이 일으켰던 12·3 내란은 40년도 넘은 대한민국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폭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정보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계엄을 사전에 기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4.12.24 ⓒ뉴스1

1979년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한 세노 아키오는 광주 출신 복학생 홍기철과 친해졌는데, 세노를 서울로 부른 한국인 조교수로부터 “저 학생은 우수하지만 전남이니 조심하는 게 좋아요.”(124쪽)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었다. 지은이는 이후 여러 경로로 호남에 대한 역사적·체계적 차별의 실체를 듣게 된다. 그런데 2024년 9월, 12·3의 주요 하수인이었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정보사 소속 김아무개 대령과 정아무개 대령에게 중·소령급 내부 인원 35명을 선별하라면서 이렇게 지시했다. “820(정보 전문) 특기자 가운데서 선별하되, 호남 지역 출신은 배제하라.”

아가리를 찢을 노상원의 지시는 작년 12월 21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재까지 그 의미가 동결된 채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윤석열과 국힘 일당들은 12·3 내란을 ‘자유민주주의’니 ‘국가 위기’와 같은 헛소리로 옹호하거나, ‘부정 선거’, ‘친중’, ‘종북’에 원인이 있는 듯이 둘러댄다. 하지만 저 거창한 단어들이야말로 ‘체계적인 호남 혐오’를 은폐하고 있는 속임수가 아닌가. 저 내란범들에게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어떤 의미일까. 12·3 내란범들의 의식 구조는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훑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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