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미국 하원은 총 435석 중 공화당 221석, 민주당 214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근소한 격차는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제도적 편향의 산물입니다. 전국 득표율이 동일하더라도 공화당이 평균 16~17석의 ‘내장된 의석 보너스’를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공화당의 게리맨더링에서 시작한 ‘레드맵(REDMAP: 지도상에서 공화당을 의미하는 붉은색이 차지하는 정도를 뜻하는 표현이자 공화당의 선거 전략)’은 단순한 지역 전략이 아니라 지도 위의 권력 구조 재편이자 정치공학적 성공 사례가 되었습니다.
레드맵(REDMAP) ― “지도를 바꾸면, 패배해도 이길 수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II, 1961~)의 당선으로 정권을 잃은 공화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면, 패배해도 이길 수 있다.”
이 문구는 2010년 공화당 전국위원회 산하 공화당 주의회지도부위원회(RSLC)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세운 전략의 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레드맵(REDMAP)의 설계자는 크리스 얀코우스키(Chris Jankowski, 1968~), 데이터 설계는 토머스 호펠러(Thomas Hofeller, 1945–2018)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인구조사와 SNS 데이터를 결합해 방대한 유권자 지도를 정밀 분석하고, 민주당 유권자를 ‘패킹(packing)’과 ‘크래킹(cracking)’ 방식으로 재배치함으로써 표를 바꾸지 않고 의석을 바꾸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패킹(packing)’이란 특정 정당(주로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을 한 선거구에 과도하게 몰아넣어 그 표를 ‘낭비표(wasted votes)’로 만드는 전략이며, ‘크래킹(cracking)’은 반대로 상대 정당 유권자들을 여러 선거구로 인위적으로 분산시켜 세력을 희석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 조작 기술의 결합으로 공화당은 실제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전략은 완벽히 성공했습니다(앞의 표 참고). 2010년 이전 공화당이 장악한 주는 24개였지만, 2012년에는 31개로 늘었고 2020년에도 약 60%의 주에서 재획정 권한을 유지했습니다. 브레넌 센터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은 레드맵 덕분에 2012~2020년 동안 하원에서 평균 15~18석의 추가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는 국민의 표가 아니라 지도 위에서 벌어진 쿠데타였습니다.
MAGA와 REDMAP ― “지도 위에서 자라난 트럼프주의”
게리맨더링은 중도파를 몰락시키고 극단주의를 재생산했습니다. 경선만 통과하면 당선이 보장되는 ‘안전구역(safe district)’이 생겼고, 공화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 경선을 장악한 것은 극우 성향의 열성 지지층이었습니다. 한국의 대구·경북 지역에서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과 유사한 형국이 미국 정치에 고착화된 것입니다.
이 구조 속에서 트럼프주의(MAGA)는 단순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2020년 이후 공화당 하원의 약 40%가 MAGA 성향 의원으로 채워졌습니다. 게리맨더링은 사회의 균열을 제도화했고, 소수자·도시·진보 시민의 표는 무력화되었습니다. 이는 MAGA의 구호 ― “진짜 미국 대 그 나머지(Real America vs. the Others)” ― 를 정치구조로 고착시킨 셈입니다.
미국 사법부의 신성화와 한국 사법부의 교조주의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 1856–1941)는 “법에 대한 존중을 원한다면, 먼저 법이 존중받을 만해야 한다(If we desire respect for the law, we must first make the law respectable.)”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의 저서 《남의 돈 - 그리고 은행가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Other People’s Money and How the Bankers Use It, 1914) 서문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브랜다이스는 이 책에서 ‘금융 신탁(Financial Trust)’과 월가의 독점 구조, 그리고 은행과 산업자본의 결탁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법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의 신뢰 또한 무너진다고 경고했습니다. 훗날 그는 미국 연방대법관이 되어 공익 중심의 법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히려 그 정신과 반대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법복 귀족주의(Judicial Aristocracy)’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교조적 태도는 한국 사법부에도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한국의 조희대 대법원은 ‘삼권분립’을 헌법의 신성불가침한 절대 조항처럼 오독하며, 국회의 사법개혁 입법, 대법관 증원, 대법원장 국회 출석 요구 등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헌법 어디에도 ‘삼권분립’이라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상호 견제만이 강조되어 있을 뿐입니다.
한국 사법부는 미국식 사법엘리트주의를 수입하면서 ‘사법권의 독립’을 ‘사법권의 성역화’로 곡해한 구조적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조희대의 사법부가 내란 재판에 소극적인 것도, 지귀연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윤석열을 석방한 것도,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상고심에서 파기환송한 것도, 내란 재판의 비공개를 고수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보수성(내란동조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미국 사법부와 한국 사법부의 차이를 찾는다면, 미국 사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군을 투입하려 한 명령을 법적으로 기각하며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 있는 반면, 한국의 조희대 사법부는 극우 집회조차 모순된 판결로 허용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는커녕, 사법개혁의 명분만 쌓는 극단적 ‘자기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권위와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인으로 자처할 때, 국민과 시민이 선택할 길은 명료합니다. 이제 개혁의 시간표와 내용, 그리고 강도만이 남았습니다.
한국 민주공화정의 방파제- 혐오와 극단주의를 제어하는 제도 설계
오늘날 민주공화정의 위기는 단지 정치제도나 검찰을 비롯한 사법제도의 개혁만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위협은 극우·혐오·반공 포퓰리즘의 결합이 시민사회를 잠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MAGA가 게리맨더링의 제도적 보호막 속에서 자라났듯, 한국에서도 사법·검찰·언론의 권력 네트워크가 ‘법의 이름으로 정치’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지도 위의 민주주의’가 ‘제도 위의 독재’로 변질될지도 모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곧추세워야 합니다.
첫째, 극단적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세력에 대한 법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둘째, 민주헌정을 위협하는 선동과 허위정보를 감시·제재할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미 논의되어 온 ‘혐오방지법’과 ‘차별금지법’ 제정은 단순한 인권 입법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방어하기 위한 법적 방파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독일의 연방헌법수호청(BfV, 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처럼 헌법 파괴 행위를 감시·조사하는 ‘한국형 헌법수호청(가칭)’ 설립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 기관은 특정 정파가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고 국회가 감시하며 정부가 집행을 보조하는 삼자 견제 구조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극단주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혐오와 차별, 반헌법적 정치 행위를 감시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새로 써 내려가는 사회적 계약입니다. 법은 인간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시대정신과 시민의 뜻에 맞게 갱신될 때 공화국은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약속을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펜은 시민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 참고문헌 >
Brennan Center for Justice.(2019). Extreme Maps: How Gerrymandering Rigged American Democracy.New York University School of Law.
Retrieved from: https://www.brennancenter.org/our-work/research-reports/extreme-maps
Brennan Center for Justice.(2024). How Gerrymandering Tilts the 2024 Race for the House.New York University School of Law.
Retrieved from: https://www.brennancenter.org/our-work/research-reports/how-gerrymandering-tilts-2024-race-house
Rucho v. Common Cause, 588 U.S. ___ (2019).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Full text: 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588/
The National Constitution Center.(2022, January 25). The Confident and Aggressive Conservative Majority.
Retrieved from: https://constitutioncenter.org/news-debate/blog/the-confident-and-aggressive-conservative-majority
Brandeis, Louis D.(1914). Other People’s Money and How the Bankers Use It.New York: Frederick A. Stokes Company.
(Reprinted by Bedford/St. Martin’s, 1995.)
Bowler, Shaun.(2025, March 17). “Gerrymandering and Political Distrust.” UCR News,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Retrieved from: https://news.ucr.edu
U.S. Constitution.(1787). Article V.National Archives.
Retrieved from: https://www.archives.gov/founding-docs/constitution-transcript
Jankowski, Chris.(Interview, 2012). “How REDMAP Won the Map.”The Economist,December 2012 issue.
(Referenced regarding REDMAP strategic design, Republican State Leadership 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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