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의 취약성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근본 원인은 미국 자체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북극 항로, 희토류 자원,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 대부분을 미국은 이미 갖고 있다.
1951년 체결된 미국-덴마크 방위 협정이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그린란드 어디서든 비행하고 착륙할 수 있다. 북극권 최대 군사시설인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70년 넘게 운영해 왔다. 미사일 조기경보, 위성 추적, 북대서양 감시가 여기서 이뤄진다. 새로운 기지가 필요하면 덴마크와 협의해서 추가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시절 운영했던 16개 기지를 언제든 재개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병력을 보낼 수도 있다.
덴마크 정부는 협상 의지를 보여왔다. 미국의 그린란드 군사기지 확대에 열린 자세를 표명했고, 양국은 이미 광물 자원 협력을 논의 중이었다. 협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트럼프는 협박으로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트럼프는 1월 11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기를 언급했다. 기자가 "조약으로 기지를 열 수 있는데 왜 안 하느냐"고 묻자 그는 "소유권이 중요하다"고 했다. 왜 중요하냐는 질문에 "성공을 위해 심리적으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심리적으로 누구에게 필요하냐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하다(Psychologically important for me)."
국익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가 외교를 좌우한다는 고백이다. 부동산 거래에서 통했던 방식을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일회성 거래지만, 동맹은 반복 게임이어서 오늘의 협박이 내일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도 무시한다.
이 패턴은 그린란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10일 법무부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했다. 명목은 연준 본부 리모델링 비용 초과에 대한 의회 증언이지만, 트럼프의 요구대로 이자율을 낮추지 않아서 보복하는 것이라는 점은 시장 참여자 누구나 알고 있다.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 행동이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질 때
미국이 누리는 특권 중의 특권인 달러 패권은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국들의 신뢰, 제도의 예측 가능성, 법치의 일관성이 뒷받침해야 한다. 한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이 특권이 사라지면 미국의 지속 가능한 부채 수준이 현재보다 30% 낮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었다면 이미 재정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트럼프가 예고한 2월 1일 관세가 발효되면 EU의 선택이 시작될 수순이었으나 관세가 철회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예정대로 관세가 발효되더라도 유럽이 물러설 가능성은 낮았다. 이건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반복 게임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린란드를 내주면 내일은 무엇을 요구받을지 모르고, EU가 회원국의 영토를 지켜주지 못하면 연합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불확실성이 장기화할수록 레버리지로 버티는 시장 구조가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작년 한 해 한국에서 급격히 늘어난 대미 투자 금액은 미국 체제의 안정성에 베팅한 셈이다. 그런데 그 체제를 이끄는 사람이 동맹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도의 독립성을 위협하며, 개인의 심리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전제가 흔들린다. 달러 패권은 총과 미사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신뢰도 무너진다. 그린란드 사태가 결코 먼 나라 일이 아닌 이유다.
#그린란드 #미국 #유럽연합 #도널드트럼프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