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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심리적으로 중요"... 파국 부르는 트럼프의 위험한 집착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1/22 09:17
  • 수정일
    2026/01/22 09: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명구의 뉴욕 직설] 그린란드 위기가 드러낸 미국 채권시장의 진짜 취약점

26.01.22 06:46최종 업데이트 26.01.22 07:44

[기사 수정 : 22일 오전 7시 44분]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마린원에 탑승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EPA 연합뉴스

새해 들어 미국발 소식들이 심상치 않다고들 느낄 것 같다. 1월 3일 베네수엘라 침공, 1월 7일 66개 국제기구 동시 탈퇴, 같은 날 그린란드에 대한 군사력 행사 위협, 1월 11일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기소 협박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대해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유럽은 경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위협한다는 것 자체가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이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했고, 트럼프는 유럽 8개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가 그린란드 관련 미래 합의의 영구적인 틀을 마련했다며 21일 전격 철회했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현재로선 트럼프를 제어할 수 없다. 하원 탄핵 소추에 과반이 필요하지만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고, 상원 유죄 판결에는 67표가 필요하지만 공화당이 53석을 장악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한 지금, 정치적 견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시장뿐이다. 1월 20일, 트럼프 2기 출범 1주년에 시장은 경고를 보냈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하루 만에 0.07%포인트 올라 4.29%를 기록했고, 주가지수는 2.1% 빠졌으며, 달러도 약세로 돌아섰다. 주식, 채권, 달러가 동시에 하락하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미국 자산 매도)' 현상이 나타났다. 이 시장의 압력이 트럼프를 제어할 수 없다면, 우리는 더 큰 파국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빌린 돈으로 버티는 미국 국채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 그린란드를 인수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무역전쟁 우려가 고조되고 변동성이 커지자 세계 증시가 하락한 반면 귀금속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AFP 연합뉴스

위기가 점증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유럽연합(EU)의 통상위협대응조치(Anti-Coercion Instrument) 발동 여부에 쏠려 있다. 2023년 발효된 이 법은 EU 회원국이 경제적 강압을 당할 때 관세, 서비스 제한, 공공조달 배제 등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덴마크 상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이 보유한 미국 자산은 13조~15조 달러에 달한다. 이 돈이 움직이면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덴마크 연금펀드들이다. 1월 20일, 덴마크 아카데미커펜션이 미국 국채 전량 매각을 발표했다. 규모는 약 1억 달러로 작지만, 상징적 신호였다. 덴마크 최대 연금펀드 PFA도 같은 결정을 내렸고, 덴마크 연금업계 전체로는 2025년 한 해 동안 100억 크로네(약 15억 달러)어치를 팔았다.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아직 투매 규모는 작다.

그렇다면 유럽의 금융 카드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지금 미국 국채를 누가 사고 있는지 봐야 한다.

2008년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의 57%를 갖고 있었다. 주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었다. 2024년 그 비중은 30%로 떨어졌다. 미국 정부가 빚을 너무 빨리 늘렸기 때문이다. 외국 정부들이 사는 속도를 국채 발행이 앞질렀다.

빠진 자리를 누가 메웠을까. 연준이 2025년 10월 발표한 논문이 답을 줬다. 조세회피처로 잘 알려진 케이맨제도에 등록된 헤지펀드들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이 새로 발행한 국채의 37%를 이들이 사들였다. 보유액은 1조 8500억 달러. 일본, 중국, 영국을 제치고 사실상 최대 외국인 보유자가 됐다.

문제는 이들이 투자하는 방식이다. 헤지펀드들은 자기 돈으로만 국채를 사지 않는다. 돈을 빌려서 20배로 불려 투자한다. 1억 달러가 있으면 20억 달러어치를 산다는 뜻이다. 게다가 빌리는 돈이 하룻밤 짜리 초단기 대출이다. 매일 갚고 다시 빌린다. 2024년 말 기준 이런 방식으로 빌린 돈이 2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 2년 만에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이 구조는 충격에 취약하다. 2025년 4월이 그 선례를 보여줬다. 트럼프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전면 관세를 발표했을 때 시장은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주가, 채권, 달러가 동시에 하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증시는 4일 만에 12% 폭락했고 국채도 함께 팔렸다. 미국 자산 전체에 대한 불신 신호였다. 트럼프는 일주일 만에 관세를 90일간 유예했다. 채권시장의 발작에 굴복한 것이다.

현재로선 시장 반응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 긴장 관계가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문제다.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빌린 돈으로 투자한 이들이다. 20배 레버리지로 버티는 구조는 긴장이 장기화하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협상 대신 협박, 그 대가

20일(현지시간)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에 세워진 '그린란드는 팔지 않는다!'라는 입간판 옆으로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채권시장의 취약성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근본 원인은 미국 자체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북극 항로, 희토류 자원,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 대부분을 미국은 이미 갖고 있다.

1951년 체결된 미국-덴마크 방위 협정이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그린란드 어디서든 비행하고 착륙할 수 있다. 북극권 최대 군사시설인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70년 넘게 운영해 왔다. 미사일 조기경보, 위성 추적, 북대서양 감시가 여기서 이뤄진다. 새로운 기지가 필요하면 덴마크와 협의해서 추가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시절 운영했던 16개 기지를 언제든 재개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병력을 보낼 수도 있다.

덴마크 정부는 협상 의지를 보여왔다. 미국의 그린란드 군사기지 확대에 열린 자세를 표명했고, 양국은 이미 광물 자원 협력을 논의 중이었다. 협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트럼프는 협박으로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트럼프는 1월 11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기를 언급했다. 기자가 "조약으로 기지를 열 수 있는데 왜 안 하느냐"고 묻자 그는 "소유권이 중요하다"고 했다. 왜 중요하냐는 질문에 "성공을 위해 심리적으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심리적으로 누구에게 필요하냐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하다(Psychologically important for me)."

국익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가 외교를 좌우한다는 고백이다. 부동산 거래에서 통했던 방식을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일회성 거래지만, 동맹은 반복 게임이어서 오늘의 협박이 내일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도 무시한다.

이 패턴은 그린란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10일 법무부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했다. 명목은 연준 본부 리모델링 비용 초과에 대한 의회 증언이지만, 트럼프의 요구대로 이자율을 낮추지 않아서 보복하는 것이라는 점은 시장 참여자 누구나 알고 있다.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 행동이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질 때

미국이 누리는 특권 중의 특권인 달러 패권은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국들의 신뢰, 제도의 예측 가능성, 법치의 일관성이 뒷받침해야 한다. 한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이 특권이 사라지면 미국의 지속 가능한 부채 수준이 현재보다 30% 낮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었다면 이미 재정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트럼프가 예고한 2월 1일 관세가 발효되면 EU의 선택이 시작될 수순이었으나 관세가 철회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예정대로 관세가 발효되더라도 유럽이 물러설 가능성은 낮았다. 이건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반복 게임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린란드를 내주면 내일은 무엇을 요구받을지 모르고, EU가 회원국의 영토를 지켜주지 못하면 연합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불확실성이 장기화할수록 레버리지로 버티는 시장 구조가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작년 한 해 한국에서 급격히 늘어난 대미 투자 금액은 미국 체제의 안정성에 베팅한 셈이다. 그런데 그 체제를 이끄는 사람이 동맹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도의 독립성을 위협하며, 개인의 심리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전제가 흔들린다. 달러 패권은 총과 미사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신뢰도 무너진다. 그린란드 사태가 결코 먼 나라 일이 아닌 이유다.

#그린란드 #미국 #유럽연합 #도널드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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