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근본적인 대책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산 배분에서 부동산 보유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금이란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런 규제의 수단으로 전용하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아요."
"단기적 대책으로 보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공급을 늘리는 방법, 또 수요를 억제시키는 방법, 이 두 가지 아닙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에 관한 생각을 드러낸 말이다. 언변이 좋은 데다 얼핏 들으면 내용도 그럴싸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데, 경제학 이론과 부동산 시장의 현실에 밝은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대단히 위험한 신호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 조세 이론을 무시하고, 세금을 오로지 국가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치부해 버렸다. 수도권 집중 완화,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도, 공급 확대, 토지거래허가제 등 온갖 대책을 줄줄이 읊으면서도, 정작 한국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인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이런 태도를 실용적이라 여길지 모르나, 이론을 무시하는 해법이 현실에 먹힐 리 만무하다. 그럴싸한 '면피성' 대책들로 근본 원인을 덮으려는 정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리도 없다. 한때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브랜드 정책으로 내세웠던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어쩌다 이토록 퇴화했을까.
세금이 재정 확보 수단일 뿐?
사실상 '세금은 재정 확보 수단일 뿐'이라고 천명한 이날 발언은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19세기 야경국가 시절 경비병의 낡은 레퍼토리처럼 들린다. 시장 실패가 완연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에 달한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조세의 교정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도 할 수 있다. 투기 세력에게 '밤에 도둑을 막아줄 테니, 낮에는 마음껏 불로소득을 챙기라'고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오염 부담금을 매기고,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세를 걷는 것을 두고 "세금을 다른 정책 목표로 전용했다"고 비난할 경제학자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도 매한가지다. 천부 자원이자 공급이 고정된 토지(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주택)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 자원 배분을 왜곡할 때, 조세로 기대수익률을 조절하고 시장을 교정하는 것은 조세 본연의 임무다. 부동산 불로소득 때문에 날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질 때 불로소득에 과세해서 분배 상태를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외면하고, 세금의 목적은 재정 확보뿐이라고 강변하면 안 된다.
시중의 어떤 재정학 교과서도 세금을 단순히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정의하지는 않는다. 모든 교과서가 자원 배분, 소득 재분배, 경제 안정화를 세금의 3대 기능이라고 가르친다(조세의 교정 기능은 자원 배분 기능의 핵심이다). 부작용을 핑계로 세금을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한정 짓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결국 국가가 마땅히 쥐어야 할 이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항복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보유세의 교정 기능 절실한 부동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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