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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입에서 끝내 나오지 않은 말, '위험한 신호'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신년 기자회견에 드러난 우려스러운 부동산 인식

26.01.23 06:49최종 업데이트 26.01.23 06:49

21일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관계자가 이재명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주 근본적인 대책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산 배분에서 부동산 보유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금이란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런 규제의 수단으로 전용하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아요."

"단기적 대책으로 보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공급을 늘리는 방법, 또 수요를 억제시키는 방법, 이 두 가지 아닙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에 관한 생각을 드러낸 말이다. 언변이 좋은 데다 얼핏 들으면 내용도 그럴싸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데, 경제학 이론과 부동산 시장의 현실에 밝은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대단히 위험한 신호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 조세 이론을 무시하고, 세금을 오로지 국가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치부해 버렸다. 수도권 집중 완화,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도, 공급 확대, 토지거래허가제 등 온갖 대책을 줄줄이 읊으면서도, 정작 한국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인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이런 태도를 실용적이라 여길지 모르나, 이론을 무시하는 해법이 현실에 먹힐 리 만무하다. 그럴싸한 '면피성' 대책들로 근본 원인을 덮으려는 정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리도 없다. 한때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브랜드 정책으로 내세웠던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어쩌다 이토록 퇴화했을까.

세금이 재정 확보 수단일 뿐?

사실상 '세금은 재정 확보 수단일 뿐'이라고 천명한 이날 발언은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19세기 야경국가 시절 경비병의 낡은 레퍼토리처럼 들린다. 시장 실패가 완연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에 달한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조세의 교정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도 할 수 있다. 투기 세력에게 '밤에 도둑을 막아줄 테니, 낮에는 마음껏 불로소득을 챙기라'고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오염 부담금을 매기고,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세를 걷는 것을 두고 "세금을 다른 정책 목표로 전용했다"고 비난할 경제학자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도 매한가지다. 천부 자원이자 공급이 고정된 토지(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주택)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 자원 배분을 왜곡할 때, 조세로 기대수익률을 조절하고 시장을 교정하는 것은 조세 본연의 임무다. 부동산 불로소득 때문에 날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질 때 불로소득에 과세해서 분배 상태를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외면하고, 세금의 목적은 재정 확보뿐이라고 강변하면 안 된다.

시중의 어떤 재정학 교과서도 세금을 단순히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정의하지는 않는다. 모든 교과서가 자원 배분, 소득 재분배, 경제 안정화를 세금의 3대 기능이라고 가르친다(조세의 교정 기능은 자원 배분 기능의 핵심이다). 부작용을 핑계로 세금을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한정 짓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결국 국가가 마땅히 쥐어야 할 이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항복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보유세의 교정 기능 절실한 부동산 시장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연간 상승률이 한국부동산원 통계 공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12월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8.98%로 집계됐다.이는 부동산원이 KB국민은행으로부터 통계 작성 업무를 넘겨받아 공표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작금의 서울 부동산 시장을 보라. 이재명 정부 들어서 6.27대책, 9.7대책, 10.15대책 등 제법 굵직굵직한 내용을 발표했음에도 시장이 잠잠해지는 기색은 전혀 없다.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값은 8.98%나 올랐고, 2025년 11월 기준 실거래가는 이전 최고 수준이었던 2021년 10월 고점을 넘어섰다.

강도 높은 대출 규제와 거래 규제가 시행되고 5년간 135만 가구 착공 계획이 발표됐음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규제와 시장 안정화는커녕 오히려 투기 촉발 효과를 유발하기 쉬운 공급 확대가 대책의 중심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2025년 9월 11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이재명 정부는 달라야…'9.7 부동산 대책'의 결정적 문제점" https://omn.kr/2f9mi)에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건물의 바닥에 온통 휘발유가 뿌려져 있는 상태"로 비유한 바 있다(여기서 휘발유란 불로소득 획득 가능성이다). 그러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투기를 근절하려면 우선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해야만 한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보유 비용을 높여 투기 심리를 꺾는 효과가 있다. 대출 규제를 비롯한 각종 부동산 규제는 시장 참가자들의 행위를 직접 규율하는 것이어서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시장이 위급한 상황에 빠진 경우 잠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건물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슬프지만 작금의 한국 부동산 시장은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 윤석열 정권이 잔뜩 뿌려 놓은 휘발유 위로 불길이 튀었는데, 이재명 정부는 건물이 어떤 상태인지 살피지도 않은 채 엉뚱한 곳에 물을 갖다 붓거나 되레 타기 쉬운 재료를 던져 불길을 잡으려 한 것이다. 이미 불길이 치솟은 현 상황에서 휘발유를 제거하자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유세를 필두로 한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은 단지 바닥을 닦는 걸레가 아니라, 타오르는 기름불을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강력한 거품 소화기 역할도 한다.

현재 항간에는 폭주하는 집값을 잠재우려면 결국 보유세 강화밖에 없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있다. 국민은 이미 보유세의 효능을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그것을 최후의 수단으로 쓸지 말지 고민하겠다고 한다. 소화기를 손에 들고도 불구경하듯 망설이는 대통령의 발언, 과연 투기꾼들에게는 어떤 신호로 작용하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전반기에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후반기에 가서 초강경의 부동산 조세 강화 정책을 펼쳤다. 타이밍을 놓친 급격한 정책 선회, 주택 수 기준의 차등 과세, 핀셋 규제 등으로 기술적 실패를 겪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지언정, 최소한 부동산이 불로소득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실패가 두려워 그보다 더 나쁜 포기를 선택한 듯하다. 경제 정책에서 정부의 메시지가 갖는 '공표효과'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정부가 나서서 수시로 대책을 발표하고 대통령이 정책에 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바로 그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실상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는 정부가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음을 자인한 꼴이며, 시장 참가자들에게 '마음 놓고 달리라'며 파란 신호등을 켜준 것과 진배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거에 나는 부동산 투기를 '괴물'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에 갇혀 있을 때는 아무 힘이 없는 듯하지만, 일단 우리를 빠져나오면 도로 집어넣기가 너무 힘들다. 설사 우리에 도로 집어넣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동안 괴물 때문에 무너진 건물들을 헤아리기 어렵다. 올바른 철학과 이론에 기초하여 정책 세트를 만들고 적기에 그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현재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서 설치고 있는 괴물이 우리 사회에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짐작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더욱이 지금 이재명 정부가 서울·수도권의 투기를 잠재우는 데 실패한다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지방 주도 성장'과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아예 경제성장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대통령이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했던 '국민주권정부가 만들 창업·스타트업 열풍이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구조적 전환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삶을 저해하는 반칙과 특권, 불공정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반칙과 특권, 불공정은 부동산 불로소득에서 생기는 것 아닌가. 이를 외면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외치던 몇 년 전의 혜안과 용기를 다시 소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신년기자회견 #이재명대통령 #보유세 #불로소득 #전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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