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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불통'의 배후, 지배세력의 유착관계

 

 

[민교협의 정치시평]민주주의 회복? 언론의 현실부터 이해해야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22 오전 11:58:24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사건 논란으로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그 정도와 양을 불문하고 헌법이 정한 기본 질서를 침해한 행위로 사정기관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지금까지 개인, 단체의 시국 선언과 시민들의 촛불 집회, 정당들의 거리 농성과 시위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선개입의 주체들이 일선 수사를 방해하는 것에서부터 대선 개입 사건을 정상회담 대화록 사건이나 대선 불복 문제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강고하게 대선개입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수구 기득권 언론들이 일면 부응하고 일면 선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방해 공작을 뚫고 최근까지 드러난 대선 개입의 파편들만 보아도 이들이 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국민을 향해 날린 120만 여 개의 트윗, 리트윗 글이 밝혀졌다. 몇 개의 사이트에 1000여 개의 댓글을 단 것에 불과하다는 애초의 수사 결과에서 100만이 넘는 트윗글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면 그들의 국기 문란행위는 고구마 캐듯 줄기를 건드리면 줄줄이 드러날 사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정원은 물론 국군 사이버사 심리전단의 활동, 보훈처의 교육 등에서 보듯 이번 대선 개입은 일부 국가 기관의 일탈 행위가 아닌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국기문란 사건임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이의 해결은 민주주의 기본질서 회복이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우리 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한 사건으로부터 촉발돼서, 이를 알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은 거짓말로 인해 닉슨이 사퇴하게 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사법기관의 공정한 재판은 물론 상원의 특별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언론들도 제 기능을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할 수도 없는 선거 개입 사건이 21세기 민주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음에도 사건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것은 우리 사회 권력을 쥐고 있는 사건의 주체들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과 유착한 언론들의 왜곡 보도 역시 주요한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사실에 기반한 진실보도가 생명줄인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그에 역행할 때 사회가 얼마나 망가지는지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언론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이 '미디어 오늘'과 한 인터뷰 제목은 "통일교, 비리 있으면 보도 한다"였다. '개가 주인을 물면 안 된다'는 가부장적 정서로 보면 대단히 결연한 자세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보면 주목할 가치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성역 없는 보도 없이 공정한 저널리즘의 구현이 가능하겠는가. 문제는 이런 주장에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 우리 언론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소신 있는 언론인으로 존경받았던 손석희 아나운서를 뉴스 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던 JTBC가 그 효과가 미미했던지 메인 뉴스 앵커로 직접 나서게 했다. 이후 JTBC 뉴스는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방송 뉴스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모범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세계일보와 통일교의 관계와 다르기는 하지만 손석희 씨가 앵커로 복귀하면서 한 인터뷰의 핵심도 '삼성을 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언론들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고, JTBC와 특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대한 자본권력에 비판의 칼날을 댈 수 있다는 그 결연함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이 주장을 굳이 강조해야만 하는 언론의 현실에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느껴야 할까.

소신 있는 언론이 될 것임을 강조하는 이 두 사례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권력의 언론 장악은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자본권력의 언론 장악은 정치권력의 언론 장악보다 간접적이라서 좀 더 은밀하다. 평소에 자본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음을 일반 수용자가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더 강력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정부 10년 동안 정치권력의 언론 개입이 줄어들면서 자본권력의 위험성에 주목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가 익히 아는 자본권력의 언론 장악 심화에 더불어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 시점의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은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유착하고 있는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 언론은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통제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초기 방송이 신산업성장동력이라는 미명 아래 미디어 관련법을 개악하고 종편을 무더기로 승인했을 때 단순히 방송 산업화 이상의 의도가 있음을 염려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선 당시 종편의 노골적인 편파 방송에서 확인된 바가 있다. 정경언 유착이다.

비록 같은 새누리당 정권이지만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정권의 안정적 출발을 위해 전 정권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인정하고 해직자 복직 같은 약간은 개선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저질러진 언론의 황폐화는 한 정권의 오류가 아니라 우리 사회 주요 권력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그들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이나 박근혜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사안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배후에 있는 우리 사회 지배세력의 유착관계가 본질이다.

달리 말하면 언론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 단일 사안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수신료 인상은 정치권력과 유착한 언론권력 종편의 먹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속내가 있고, 종편의 재승인은 몇 방송사의 존속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 방송의 이전투구에 대응해야 하는 모든 방송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고, 방송 산업화 논리에는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같은 자본 권력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장기적인 포석이 깔려 있다. 그리고 권력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이러한 조치들의 결과, 수용자들은 진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깨어 있는 수용자의 선택은?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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