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숭미의 숲’에서 빠져나올 결기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주변 외교·안보 참모들이 당신의 생각과 의도를 거스르고 있음에도 전격적인 물갈이 인사 단행을 머뭇거리고 있다. 높은 국정지지도에 취했던 것일까, 자만심의 결과였을까, 6·3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는 국정동력의 결정적인 상실로 이어지고 있고, 때를 틈타 숭미세력과 미국이 합세해 정부를 전복하려는 공작도 노골화하고 있다. 임기 초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실기한 탓이다. 내란청산도 검찰개혁도 흐지부지 끝날 수 있다. 자주외교는 길을 잃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 외교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의 ‘싹’도 명확했다. 중국, 브라질, 인도와의 줏대 있는 정상외교는 미국만 보고 가지 않겠다는 의미 있는 신호였다. 미군의 서해상 무단 훈련에 대해 경고한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하고 정동영 장관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격에 일침을 가한 것도 인상적인 행보였다. 전작권 조기 회수를 위한 분명한 언사도 자주의 방향이었다. 전 정부는 물론이고 과거 진보 정권이 보였던 숭미 위의 ‘유사 외교행위’와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들을 만도 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외교는 임기 초기의 강도 높은 개혁 모멘텀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결국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 숭미의 그늘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유는 ‘외교철학’의 부재다. 명료한 외교 행보를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각성이다. 왜 우리가 전작권을 당장 회수해야만 하는지, 왜 우리가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들을 골라 국빈 외교를 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다극화 질서 안에서 중견국 협력을 해야만 하는지에 답하는 일관된 전략도가 없다. 기껏해야 직관적인 대국민 인기 영합용 홍보 메시지일 뿐이다. ‘외교철학’이란 난처한 상황을 받아넘기는 재치 있는 몸짓이나 말재주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치려 자신을 돛대에 묶은 것은 혹시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을 다잡기 위함이었다. 한국 외교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의 절대적 가치’, ‘미국의 은혜로 탄생한 대한민국’을 노래하는 숭미 사이렌의 교성을 따라가다 보면 배는 반드시 좌초하고 만다. 지도자가 자신을 묶어둘 돛대가 없다면, 주권과 국익과 자주의 외교철학이 없다면, 그는 결국 함선과 선원의 운명을 사이렌의 희생물로 만들 뿐이다. 지금 이재명 외교에 필요한 것은 세련된 수사가 아니라 돛대다. 스스로를 붙들어 맬 수 있는 단단한 철학이다.

우리 외교에 검찰해체 수준의 강력한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가 영원히 미국의 손아귀에서 신음하다가 생을 마치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검찰을 해체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우리 국민이 검찰의 손아귀에서 죽어 나자빠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 아닌가. 전작권 회수가 주권국의 당연한 권리이기 전에, 반미 삼총사와의 외교가 사진을 잘 받아서가 아니라, 중견국 협력이 그럴듯한 이야깃거리이기 전에,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주체적인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한다.

작년 8월 말 워싱턴 1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피스메이커’가 되 달라고 한 언사는 ‘입 발린’ 말로 끝냈어야 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은 미국의 기본 정책에 어긋나게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 역시 듣기 좋으라고 한 말로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보면 그 말들은 이 대통령의 진심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얼마나 자주 이 대통령은 자신이 한낱 ‘페이스메이커’임을 자처해 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가야 할 길 위에서 망설이고 있는가.

이 대통령은 한중관계의 ‘완전한 복원’을 밀어붙였어야 했다. 경주 정상회담에서 안보실장은 양국 관계가 완전 복원됐다고 과거형으로 말했다. 1월 초 베이징 정상회담 후에는 완전복원의 길로 들어섰다고 진행형으로 말했다. 6월 초 KBS 대담에 나온 안보실장은 다시 현재완료형 문장으로 한중관계를 말했다. 저의가 보이는 언사다. 한중관계가 더 깊어지면 한미동맹이 손상될 수 있으니 한중관계는 지금의 수준에서 봉합해야 한다는 ‘전략적인’ 계산의 사특한 발언들이다. 이 대통령은 숭미 참모의 간계를 꿰뚫어볼 관점과 철학을 가지고나 있는 것인지.

 

한중관계, 완전히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국익이요 외교의 자율성이다. 먼저 지난 10년의 얼음관계가 도래한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사드 3불’이다. 사드의 추가배치 배제, 미사일 방어체제(MD) 불허,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한 사항이다. 이에 더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이미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한 사안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중국을 공격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한중간의 ‘석자 얼음’은 한 순간에 녹고 한중관계는 최상의 수준으로 상승한다. 숭미파들의 악몽일 테지만 말이다.

한러관계 역시 정상화해야 한다. 아직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한중관계의 완전복원도 그렇지만 한러관계의 정상화도 미국의 얼굴을 살피고 있는 탓이다. 그러면서 무슨 북극항로의 개척이니 시베리아 횡단철도니 러시아산 가스도입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난 6월 10일 한·EU 공동선언이 러시아와 조선을 싸잡아 규탄하고 그 이틀 전 이 대통령이 강조한 조선 핵문제의 ‘현실론’적 접근법을 깡그리 무시하는 문장을 채택한 ‘대형사고’를 이 대통령은 알면서도 방치한 것인가. 6월 22일 조현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에 체포된 조선군 병사 2명을 한국으로 송환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인가.

지금 CIA와 미국이 이 대통령에 가하고 있을 협박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 대통령의 자주의 ‘싹’을 댕강 잘라내려는 외세의 공작은 늘 있어왔던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주의 ‘잎’과 ‘줄기’를 틔웠어야 했다. 지난 4월 정동영 장관이 숭미파와 미국의 합동 공격을 받을 때 이 대통령은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일축했었다. 그렇다면 진작 배후 숭미파와 미국의 교활한 작업을 철저히 파헤치고 결과를 국민에 알렸어야 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추진으로 핵심 지지층의 이반을 초래했다면, 지금 이 대통령 역시 내란 청산의 지연과 개혁의 머뭇거림 그리고 자주적 외교 행보의 주저로 지지율 폭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아니, 어떻게 자신의 언어와 천양지차가 나는 한·EU 공동선언을 버젓이 방치할 수 있는가. 아니, 어떻게 대화상대로 추구해야 할 조선과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도발하는 조선 포로 국내송환을 태연히 용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당신 자신의 생각인가, 아니면 미국의 공작인가.

늦었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않았나. 국익중심의 실용외교라 외치지 않았나. 결국 자주다. 미국이 협박을 가하더라도, 숭미파들이 온통 들쑤시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일이다. 국무회의를 공개하고 원고 없이 장시간 기자회견을 갖는 ‘멋진’ 장면들에 치중하기 전에, 수려한 언변으로 거침없이 국정을 논하는 모습을 과시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주체적 외교를 펼쳐야만 하는 실존적 필연성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외교는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하나다. ‘숭미의 숲’ 탈출을 기어코 이루어내는 일이다. 진짜 대한민국의 진짜 자주외교를 펼치는 일이다. 이탈한 핵심 지지층은 자연히 복귀할 것이다. 2년차 외교에 기대를 걸게 해 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