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이 지방의원 수의계약 내역 전수조사를 위해 분석한 자료의 일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535만여건의 계약정보를 추출한 뒤, 500건에 가까운 법인·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 의원과 회사의 연관관계를 확인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문경에 1등급 아스콘을 생산하는 공장이 저희 밖에 없어요. 도의원을 4번째하는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4선에 성공한 박영서 경북도의원은 말했다. 그는 아스콘을 생산하는 A사의 대표로 재직 중이라고 도의회에 신고했다. 이 업체는 박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에 당선된 이후 4년 동안 경북도에서 3건, 지역구인 문경시에서 5건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도합 1억9000만원대 계약. 지방의원은 자신의 소속 지방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할 수 없다. 단 제품을 만들 업체가 그 지역에 한 곳 뿐이면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박 의원은 자신의 업체가 그런 업체라고 주장했다.
지역을 수소문한 결과는 사뭇 달랐다. 문경시에서 1등급 아스콘을 생산하는 업체는 A사 말고도 두 곳 더 있었다. 문제는 두 곳 중 한 곳인 B사도 박 의원 관련 업체로, 그의 배우자가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B사는 지난 4년간 문경시에서 121건, 17억 4000만원대 수의계약을 따냈다. 이게 끝이 아니다. B사의 주소지에는 건설사인 C사의 간판도 함께 걸려 있었다. C사의 대표 역시 박 의원 배우자였다. C사는 4년간 문경시 수의계약을 24건 따내 5억5000만원을 벌었다. 박 의원은 B사, C사와의 관계를 묻는 추가 질의에 “사업을 (가족에게) 맡겨놔 잘 몰랐다. 죄송하다”며 “문경시에서도 한 업체에만 주기 어려워서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달 30일 4년 임기를 마치는 민선 8기 지방의원들의 수의계약 내역을 전수조사했다. 지방의원의 수의계약은 공적 권한을 사업의 발판으로 활용하고, 세금이 남용되며, 다른 사업자의 입찰 기회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문제다. 지방자치단체 행정부와의 수의계약 거래로 인해 행정부를 감시·견제해야할 지방의원 본연의 의무가 방기되고,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크게 3가지 기준을 정해, 이에 해당하면 수의계약 문제 사례로 분류했다. 첫째는 지방의원 당선 후에도 자신이 운영했던 회사에서 일하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겸업 유형’이다. 둘째는 회사 대표 명의를 당선 후 가족이나 지인에게 넘긴 ‘파킹(의원 임기 동안 회사 대표 명의를 맡긴 것) 의심 유형’이다. 마지막 유형은 의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가족회사’ 유형이다. 이 3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의원이 91명이었고, 516억원대 수의계약을 따냈다.
본인이 편성한 예산, 자기 회사에 주기도
비교적 확인이 용이한 건 ‘겸업 유형’이다. 91명 중 35명이 여기에 해당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윤구병 충남 공주시의원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후에도 동생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일하며 보수도 받는다고 시의회에 신고했다. 당선 전에는 이 회사에서 20년 넘게 등기이사,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회사는 윤 의원의 임기동안 공주시에서 56건, 15억2000만원 상당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회사가 따낸 사업중 절반 가량은 농로포장·배수로·마을안길 정비 등 민원형 소규모 공사였다. 윤 의원은 56건의 수의계약에 대해 “(공사를) 내가 준 게 아니고, 시에서 준 게 있고, 다른 의원들이 준 게 있다. 내 사업비에서 (공사를 만들어) 회사에 주긴 줬지만 형평에 맞게 줬다. 오히려 (회사) 애들이 ‘다른 사람 눈 있다, 너무 많이하면 안된다, 다른 회사 줘라’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해명에서 지방의원의 ‘쌈짓돈’이라 불리는 재량사업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방의원은 재량사업비를 통해 지역구에 소규모 사업을 편성할 수 있다. 공식 예산서에 있는 항목도 아니고, 의회마다 불리는 이름도, 규모도 다르지만 통상 의원 한 명에게 매년 5억원 안팎의 예산이 할당된다고 한다. 윤 의원은 자신에게 할당된 예산으로 사업을 만들어 일부를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맡겼다고 시인한 셈이다. 문제는 꼬리표가 남지 않는 이 예산의 특성상 이처럼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데 있다. 한 지방의원은 “자기 사업비를 자신과 관련된 업체에 몰아주는 용감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 사업에 예산을 넣고자 할 때, 업체를 가지고 있는 다른 의원과 서로 교환해서 티가 안나게 한다”고 했다.
사실상 대놓고 수의계약을 따내는 ‘겸업 유형’을 왜 지자체들은 제지하지 않을까. 법 조문의 허점에 기대 수의계약을 따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지방의원과 그 배우자·자녀·부모가 합산해 회사 지분을 30% 이상 가지고 있으면 관련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합산 지분이 30%만 넘지 않으면 법적 문제가 없다.
문제는 지방의원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대부분 소규모 비상장회사라는 데 있다. 상장회사와 달리 주요 주주들의 지분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지방의원이 제3자에게 지분을 넘겼어도 실제 매각이나 양도가 이뤄졌는지 검증할 길이 없다. 강영우 경기 수원시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 당선된 후 협동조합의 이사장직을 내려놨다.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전 강 의원 부부는 이 조합의 지분을 49.1% 가지고 있었는데, 법 시행 후 부부 지분율이 29.9%까지 줄었다. 강 의원은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저 때문에 피해볼 수 있기에 조합원들한테 나눠줬다. 서류상으로는 돈을 받은 거지만 그냥 같이 고생했기 때문에 그렇게 (줬다)”라고 했다. 가족 합산 지분율을 30% 문턱까지 조정한 셈이다. 이 협동조합은 2022년 시작된 강 의원의 두번째 임기동안 수원시로부터 35건, 5억원 상당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며느리에게 맡기면 1석 2조
보다 치밀한 이들은 당선 후 가족·지인에게 회사를 맡긴다. 파킹이 의심되는 의원들은 91명 중 38명으로 3가지 유형 중 가장 많았다. 충북 영동군에는 한 건물을 같이 쓰는 두 건설회사 D사와 E사가 있다. D사 대표는 서모씨, E사 대표는 박모씨로 별개의 기업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뿌리가 같다. 신현광 영동군의원은 당선 전 D사의 대표였고, 그의 배우자가 E사 대표였다. 당선을 전후해 부부 모두 사임했고, 현재는 두 며느리가 각각 대표가 됐다. 신 의원의 임기동안 두 회사는 4년간 24건, 6억5000만원 상당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신 의원은 “내 지분은 백지신탁으로 다 정리했다. 며느리는 친족이 아니라 (이해충돌방지법과)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해충돌방지법이 수의계약을 금지하는 가족의 범위에 며느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 수의1인견적 대상 사업은 가액이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는데, 며느리가 대표가 되면 ‘여성기업’으로 인정돼 한도가 5000만원까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법의 허점도, 이점도 백분 활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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