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반역 누명을 벗는 데 12년이 걸렸다. 진범이 드러난 뒤에도 군사법원은 유죄를 뒤집지 않았다. 군의 체면과 판결의 권위가 사실보다 앞섰다. 어제(5일) 한국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조작기소 특검법 문구에 의문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졌다. 현직 판사들은 사법개혁을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고 있다. 뉴탐사 역사탐사는 판사들이 동물농장보다 드레퓌스 사건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본다.
필적이 다르자 꾸며 썼다고 몰았다
1894년 9월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명세서 한 장이 나왔다. 프랑스 군사기밀을 넘기겠다는 내용이었다. 군부는 내부 첩자를 찾았고 의심은 드레퓌스에게 쏠렸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독일에 넘어간 알자스 출신이었다.
증거는 필적뿐이었다. 필체가 다르다는 의견까지 나오자 드레퓌스가 일부러 꾸며 썼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그해 12월 군사법원은 재판을 비공개로 열었다. 재판부에는 비밀 문서철이 따로 전달됐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그 문서를 보지 못했다. 드레퓌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895년 1월 5일 군은 공개 강등식을 열어 그의 계급장을 뜯고 칼을 부러뜨렸다. 이어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보냈다. 그는 1899년 6월까지 4년2개월을 그곳에서 갇혀 지냈다.
한국에도 닮은 사건이 있다. 지난 1991년 강기훈씨는 숨진 동료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국과수 필적 감정이 유죄의 근거가 됐고 그는 형기를 다 채웠다. 감정 결과는 2007년 뒤집혔고, 대법원은 2015년 5월 14일 무죄를 확정했다. 기소 24년 만의 일. 당시 수사팀 검사였던 곽상도씨는 훗날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진범을 찾은 장교는 쫓겨났다
정보국장 조르주 피카르 중령은 1896년 뜻밖의 사실을 찾아냈다. 페르디낭 에스테라지 소령의 필체가 명세서 필체와 일치했다. 피카르는 드레퓌스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그는 상관들에게 진범이 따로 있다고 보고했다.
군 수뇌부의 답은 재조사가 아니었다. 피카르는 정보국에서 밀려나 튀니지로 쫓겨났다. 에스테라지는 1898년 1월 군사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피카르에게서 박정훈 대령이 떠오른다. 박 대령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의 책임자였다. 수사 외압에 맞서다 보직에서 해임됐고 항명 혐의로 기소됐다.
3만부 신문이 30만부를 찍었다
사건을 뒤집은 쪽은 큰 신문이 아니었다. 에스테라지 무죄 이틀 뒤인 1898년 1월 13일이었다. 작은 신문 로로르가 소설가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을 1면에 실었다. 조르주 클레망소가 붙인 제목이 '나는 고발한다'였다. 평소 3만부를 찍던 신문은 그날 30만부를 찍었다.
졸라는 일부러 재판을 불렀다. 기소돼야 진실이 법정에 오른다고 판단했다. 그는 명예훼손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영국으로 몸을 피했다. 프랑스는 둘로 갈라졌다.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졸라 편에 섰고 가족 식탁에서도 드레퓌스 이야기만 나오면 싸움이 붙었다.
유죄의 근거가 위조였다는 사실은 1898년 8월 드러났다. 에스테라지도 망명지에서 명세서를 자기가 썼다고 인정했다. 최고법원인 파기원은 1899년 6월 유죄를 깨고 재판을 렌 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도 군사법원은 9월 다시 유죄를 선고하고 형량만 10년으로 낮췄다. 재판 도중 변호사 페르낭 라보리는 등 뒤에서 총을 맞았다. 그는 일주일 뒤 법정에 돌아왔다.
드레퓌스는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유죄 기록은 남았다. 파기원이 무죄를 선고한 날은 1906년 7월 12일이다. 졸라는 그 판결을 보지 못하고 1902년 집에서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프랑스군은 1995년에야 그의 무죄를 공개 인정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하원은 그의 준장 추서 법안을 197명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11월 공포됐다.
'동물농장' 꺼낸 판사들이 돌아볼 판결
성찬용 인천지법 부천지원 판사는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소설 동물농장에 관하여'였다. 검찰 폐지와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재판소원을 거론하며 사법부 독립이 위태롭다고 적었다. 돼지의 만행을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 당나귀 벤자민도 꺼냈다. 글에는 공감 댓글이 20개 넘게 달렸고 법원장과 고법 부장판사도 동참했다.
뉴탐사 역사탐사는 벤자민의 자리에 다른 판결들을 놓는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024년 1월 MBC에 '바이든-날리면' 정정보도를 명령했다. 음성 감정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외교부는 지난해 항소심 강제조정으로 소를 취하했다. 의대 2000명 증원 집행정지 신청은 지난 2024년 5월 항고심에서 각하·기각됐다. 재판장은 구회근 부장판사.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인 그는 지난달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사건에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형량은 징역 2년. 23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벌금 1000만원도 무죄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여론조사가 재산상 이익이 아니고, 명태균씨 진술은 일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 상식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라고 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사건을 상고했고 오 시장 사건도 상고 방침을 밝혔다.
법원행정처 의견은 특검법 심사에서 나왔다. 국민일보는 어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심사자료를 공개했다. 행정처는 '야당 대표 제거 등'의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민주당은 지난 4일 법사위를 통과한 수정안에 이 문구를 그대로 뒀다. 공소취소 관련 조항은 빠졌고 문재인 정부 사건이 수사 대상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 사건 특혜라고 반발하며 무제한토론에 들어갔다.
리호남 입국 기록 없다는 국정원 문건
피카르가 찾은 문서철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7년8개월을 확정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지난 3일 수원고법에 외국환거래법 위반 부분 재심을 청구했다. 변호인단은 국정원 문건에 리호남의 필리핀 입국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마닐라에서 방북비용을 건넸다는 진술과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앞서 리호남을 가명과 위장 신분을 쓰는 공작원으로 봤다. 김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도 인정했다. 수원고법은 새 자료가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새 증거인지 심리한다. 드레퓌스 사건과 달리 이 사건의 유죄 판결은 아직 효력이 있다. 조작 의혹도 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아니다. 재심 개시 여부와 특검법 표결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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