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뉴욕 브루클린 베이리지의 '리틀 팔레스타인'을 찾아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픈 랩 가사 같은 말을 들었다. “Refugee(레퓨지) is Refuse(레퓨스).” 난민은 쓰레기라는 뜻이다. 두 단어는 철자도 발음도 한 끗 차이라 귀에 쏙 들어왔고, 그 의미는 가슴 깊이 와닿았다. 가자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잊힌 채 살아간다. 그런데 refuse는 '거부하다'라는 동사이기도 하다. 버려진 존재이면서, 그 운명을 거부하는 존재라는 뜻도 겹쳐 있는 것이다.
한 힙합 가수 지망생에게서 제대로 된 라임을 들었다. “Mediterranean is Subterranean.” 지중해는 지하세계라는 말이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지중해 연안 가자지구는 지옥으로 변했다는 자조가 담겨 있다. ‘Subterranean’은 함축적인 단어이다.
땅속은 예로부터 죽은 자의 세계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이 묻혀 있는 지하 공간을 떠올리게도 한다.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국제 사회가 팔레스타인 민족의 문제를 땅속에 묻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가자는 전기가 끊겨 어둡기도 한데 세상의 망각이란 어둠까지 덥쳤다. 여러 겹의 어둠에 갇힌 땅속 세계 가자에 이제 다시 겨울 추위가 몰려올 것이다.
리틀 팔레스타인의 공기는 무겁다. 이곳의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는 민족의 현실에 획기적인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으로 어느 민족도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거나 힘을 보탠 적이 없다고 믿는다. 그런 그들에게서 희망의 표시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신의 뜻대로(인샬라, in sha’ Allah)"였다. 희망이면서 체념이기도 한 말이다.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 희망을 체감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힘과 영향력, 이를 떠받치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 정책 쪽으로 돌아서는 일부 아랍 국가들, 무능의 상징이 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까지. 어느 것 하나 희망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달 5일에도 가자지구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졌다. 가자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 인근 검문소에서 무장한 팔레스타인인 2명이 총격을 가해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숨졌다. 총격범들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이스라엘군은 곧바로 헤브론에 진입했다. 열흘간의 작전 동안 이스라엘군은 중장비와 폭약으로 총격범들의 집을 비롯한 건물들을 부수었고, 수천 명의 주민을 집에서 몰아냈다. 작전이 끝난 뒤 돌아온 주민들을 맞은 것은 부서진 집이었다.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던져진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힘의 비대칭은 그만큼 뚜렷하다. 그 물음 앞에서,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직접 닿지 않는 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에게는 짊어진 몫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자 사명이다. 그 사명을 실천하는 수단이 문화적 투쟁이고, 그 한가운데에 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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