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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설거지하는 남자

 

 

휴심정 2014. 06. 18
조회수 736 추천수 0
 

나를 울린 이 사람

처음 설거지를 한 중년 남자

 

박희승 조계종 한국문화연수원 교수

 

참선.jpg


한일 월드컵 열기가 절정에 달한 2002년, 나는 태백산 암자에서 한 선지식을 만나 그 인연으로 불교의 핵심인 중도와 참선에 눈을 떴다. 하루 5분씩 시작한 참선은 하면 할수록 이 좋은 것을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참선을 알게 된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지혜의 눈을 뜨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참선 입문 프로그램을 만들고 조계사에서 안내하기 시작했다. 참선 공부를 하러 오는 분들은 실로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40대 남자 한분이 유달리 기억난다. 이분은 대기업 자회사의 임원으로 종교도 없고 불교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저 남들 따라 참선이 좋다니 배워 보고자 왔단다.
그런데 참선 공부를 하면서 ‘중생이 본래 부처니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아 서로 존중하고 남을 도와주면 결국 그것이 수행이고 선이다’ 이런 강의를 듣고 이분은 혼란스러워했다. 자기 스스로 중생이고 남과 치열하게 경쟁해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자신과 남을 차별하지 말고 도와주라 하니 그래 가지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분은 참선 입문 과정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참가자들이 소감 한마디씩 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분은 “불교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참선 공부 하면서 생활에서 변화가 생겼다. 평생 한번도 설거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심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집사람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내아내의모든것.jpg

*집안일 하는 남자.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중에서


이 말을 듣고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같이 웃으면서도 내 가슴을 찌르는 게 있었다. 나도 설거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자기 일도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며, 밥은 물론 설거지와 빨래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많은 집안일을 아내에게만 맡겨놓은 채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선 공부 하러 오신 분들께는 자기를 비우고 남을 도우라고 안내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돌보지 못했다.
그 뒤로는 아무리 큰일을 하고, 거창한 대의를 말하더라도 가족과 직장 동료, 이웃 등 늘 가까이 함께하는 분들을 배려하는지 돌아보려고 애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멀리 거창한 것을 보기보다는, 늘 자기 발아래를 먼저 살피라는 선가의 격언이 더욱 가슴에 새겨진 것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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