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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미국식 병원 영리 자회사 모델 베꼈다

 

 

[병원 영리 자회사가 온다 ②] 미국 영리 자회사는 어떻게 환자 주머니를 털었나?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6.30 01:51:05

 

 

 

 

 

 

 

 

 
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의료법인 영리 자법인 허용'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병원이 자회사를 통해 외부 투자를 받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당시, 병원 영리 자회사의 외부 투자자 목록에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을 예시했다. 투기 자본이 의료계에 간접 투자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다.
 
이번에 정부가 허용하려는 모델이 실제로 구현된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이미 2000년대부터 미국 치과계에서 '영리 자회사'가 지원하는 네트워크 치과가 유행한 바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영리 자회사가 이른바 '치과계의 맥도날드'격인 '기업형 네트워크 병원'을 만들고 과도한 수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환자와 의사, 병원 노동자들이 모두 피해를 봤다.
 
미국에는 투기자본이 소유한 25개 치과 '영리 자회사(치과 경영 지원 회사)'가 있다. 영리 자회사들은 명목상 의료 장비 공급, 마케팅 등 병원 경영 관련 부대사업을 수행하는 회사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른바 '바지 원장'을 앉혀 치과를 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 '영리 병원 전단계' 사무장 병원, 어떻게 돈을 버나?)
 
송이정 치과의료정책연구소 전문위원에 따르면, 미국 치과 체인은 치과 원장들에게 병원 건물을 제공하고 불공정 계약서를 체결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거래할 때 자회사가 과도한 수익을 챙겨가도록 했다. 치과 원장은 자회사 경영자의 동의 없이 직원을 고용할 수 없고, 치과를 양도할 수 없으며, 진료 계획을 짤 수 없고, 장비를 구매할 수 없도록 계약했다. 한마디로 자회사의 허락 없이 치과 원장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했다. 
 
미국 치과 경영 지원 회사들은 이런 식으로 치과 수십, 수백 곳과 계약해 사실상 치과를 지배했다. "치과 의사가 아닌 영리 법인은 치과를 운영, 개설할 수 없도록 한" 미국 39개주의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것이다.
 
▲ 기업협 사무장 치과 구조.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가 아니면 병원을 개설, 소유, 운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비영리병원, 공공병원 제외). 한국에서도 불법적인 기업형 사무장(네트워크) 병원이 문제가 된 바 있다. ⓒ프레시안

▲ 기업협 사무장 치과 구조.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가 아니면 병원을 개설, 소유, 운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비영리병원, 공공병원 제외). 한국에서도 불법적인 기업형 사무장(네트워크) 병원이 문제가 된 바 있다. ⓒ프레시안

 
영리 치과 체인, 바가지 씌우다
 
대표적인 영리 치과 경영 지원 회사가 미국에서 가장 큰 치과 체인인 아스펜 덴탈(Aspen Dental)이다. 아스펜 덴탈은 미국 22개주에 358개 치과를 체인으로 두고 있는 영리 회사로, 사모펀드가 주식을 출자했다. 아스펜 덴탈은 검진과 엑스레이가 무료라는 광고를 통해 미국 서민들을 끌어 모으는 전략을 썼다. 
 
한국에도 '저가 임플란트' 등을 내세워 광고하는 네트워크 병원들이 있다. 일부 검진 항목이 무료이거나 싸다면, 환자들은 더 싼 값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스펜 덴탈이 박리다매식 경영 전략을 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 최대 독립탐사보도기관인 공공청렴센터 소속 데이비드 히스 기자는 "광고에 현혹된 환자들이 과잉 진료를 받고 수천 달러의 추가 지출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연 1만3000달러(1328만 원)로 연명하는 테레사 페리토(여·88) 씨의 사례를 보자. 페리토 씨는 동네 치과에서 치아 두 개를 뽑아야한다는 진찰을 받았다. 비용을 걱정한 페리토 씨는 '치료비를 대폭 할인한다'고 광고한 아스펜 덴탈을 찾았다. 
 
미국 클리블랜드 외곽의 아스펜 덴탈은 대뜸 종합 검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치료비용으로 7835달러를 청구했다. 치아 충전과 스케일링에 2540달러(259만 원), 항생제 350달러(36만 원), 구강 양치액 129달러(13만 원) 등이 청구됐다. 심지어 사은품으로 받은 줄 알았던 전동칫솔 요금 149달러(15만 원)도 청구됐다. 바가지를 쓴 것이다.
 
데이비드 히스 기자에 따르면, 아스펜 덴탈은 직원들에게 강매 훈련을 시켰다. 회사 경영진은 치과 의사와 직원들의 매출량을 매일 검사했다. 급여 체계는 건당 성과급이었다. 매출 목표를 달성한 치과 의사들은 보너스를 받았다. 심지어 매출 실적이 떨어진 직원들은 해고의 위협을 겪기도 했다. 의료인들이 양심적으로 치료하기 어려웠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실태를 두고 사모펀드가 소유한 치과 체인을 수개월 간 조사했던 미국 아이오와주 찰스 그레슬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모펀드가 연루되면, 돈 버는 것이 그들의 동기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치과 의사가 아니다. 치과 의사들은 환자의 치아에 무엇이 좋은지 결정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의 어떤 사모펀드 매니저에게 무엇이 좋은지가 아니라 말이다."
 
미국, 영리 자회사 규제 강화
 
영리 자회사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미국 주 의회가 나섰다. 텍사스 주 의회는 2012년 10월 89곳의 기업형 네트워크 치과가 미국이 노인에게 제공하는 공보험인 메디케이드에 과다 청구한 금액이 1억5400만 달러(1573억11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텍사스 주에서는 '기업형 네트워크 병원 규제법(텍사스 치과의료법)'을 통과시켜 '영리 자회사'의 폐해를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치과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은 치과 병의원을 소유할 수 없고, 치과 의사의 의료 행위에 간섭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치과감독위원회는 치과 의사가 영리 '치과 경영 지원 회사'와 도급 계약을 체결했거나 이를 소유했을 때, 그 소유 관계와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은 어떤가. '영리 자회사 허용 가이드라인'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영리병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모법인인 병원은 여전히 비영리 원칙으로 운영되고, 자법인이 거둔 추가 수익은 모법인에 재투자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단, 여기에는 투자자들이 주식 배당 등으로 이윤을 환수하고 남은 돈을 모법인인 병원에 재투자한다는 단서가 달린다. 미국식 영리 자회사 모델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정책, '의료 영리화'로 보는 이유는…)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면 불법적인 네트워크 병원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회사가 모회사를 사실상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료 영리화'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반면, 정작 한국에서는 미국식 의료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영리 자회사 관련 기사
 

 

* 참고 자료 
<미국 치과의료 위기와 탐욕의 네트워크 치과>, 대한치과의사협회 산하 치과의료정책연구소, 2013년 10월 
<치료비 없는 성인들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챙기려는 기업형 치과체인 : 어떻게 저소득 성인들이 치과 치료로 빚더미에 직면하는가?>, 데이비드 히스, 질 로젠바움,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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