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멸치 같은 멸치 아닌 비양도 꽃멸 아시나요

 
황선도 2014. 11. 03
조회수 2585 추천수 0
 

제주 옆 화산섬 비양도 회유하는 꽃멸은 청어과 생선, 제 이름은 샛줄멸

흑돼지고기 찍어먹는 '육젓' 맛 일품…멸치보다 10배 비싼 값으로 팔려

 

bi0-1.jpg» 비양도 꽃멸치. 실은 멸치와는 과가 다른 어종이다.  
   
요즘 나는 두집살림을 한다. 주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가족의 품을 찾아 육지로 간다. 내가 사는 한림에서는 서쪽 바다로 언제 어디서나 비양도가 보인다. 
 
제주도가 지각 밑에 흐르는 맨틀의 현무암질 마그마가 뿜어져 오르는 화산활동으로 섬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화산분출은 보통 마그마의 휘발성분이 폭발하여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위에 퇴적되어 정상 부분이 움푹 파인 분석구를 만들게 된다. 물이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 한 가운데에 분석구로 이루어진 비양도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더욱이 고려사(1451년)와 고려사절요(1452년)에 고려 목종5년(1002년)에 화산분출이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겨우 천년 전에 비양도가 만들어졌다는 탄생 설까지 회자되고 있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에 비양도 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고려 시대 분화설은 학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 입증되었음에도 한번 고정된 인식은 바뀌지가 않고 있으니 더더욱 신비로운 섬이다.

 

bi1.jpg» 제주의 서쪽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양도의 모습.  
 
올해 초 교육방송(EBS)에서 전화가 와서는 옛날부터 먹어왔고 그래서 생활에 깊이 연결된 물고기들을 발굴해내서 과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백성의 물고기’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들 물고기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4월 즈음 프로그램 기획회의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협조가 시작되었다. 5월 말에는 그때 만났던 문예원 작가가 제주를 찾아왔다. 
 
비양도에 꽃멸이라는 멸치가 있어 사전답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제주에 머문 지 반년이 다 되었는데도 비양도를 물 건너서 바라만 보았던 터라 이 현장취재에 동행하기로 했다. 
 
봄날의 따가운 햇살 속에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20여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비양도에 들어갔다. 정말 작고 이쁜 섬, 비양도에 도착해서 제주도를 바라보니 육지만큼 거대하였다. 섬에서 섬으로 들어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특별하였다.
   
비양도 선착장에 배를 대자마자 문 작가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에 나타난 분은 비양도 어촌계장 고순애씨. 육지에서는 보통 어촌계장이 남성인 것과 달리 제주는 여성 어촌계장이 더 많다고 하니 세삼 제주도에서 여성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끄는 대로 올라간 곳은 부두가 내려다보이는 이층건물 어촌계 사무실.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사이에 두고서 작가와 어촌계장 사이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꽃멸이 멸치가 아니라고?
 
작가가 묻고 어촌계장이 답하는 것을 나는 좀 떨어져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도무지 진척이 없다. 
 
작가는 멸치 이야기를 묻는데, 어촌계장은 ‘꽃멸’ 이야기를 한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나도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들어도 어촌계장이 말해주는 꽃멸의 생태와 습성이 멸치와는 같지 않았다. 산란장소가 다르고, 산란시기가 다르다. 
 
멸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외해에서 어미가 부성란(물에 뜨는 성질의 물고기 알)을 산란하고 그 어린 것이 연안으로 들어와 자라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시 외해로 나간다. 그런데 꽃멸은 봄에서 초여름에 어미가 연안으로 들어와 침성란(물 밑에 가라앉은 알)을 산란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같은 종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그 꽃멸이라는 놈을 보고 싶다고 했다. 어촌계장은 지금 실물을 볼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방송국에서 촬영을 많이 해갔으니까 인터넷을 뒤지면 볼 수 있단다. 
 
마침 사무실에 켜 놓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검색엔진에 ‘비양도 꽃멸치’를 치니 기사와 함께 사진이 떴다. 
 
아뿔싸! 이건 멸치가 아니었다. 몇 군데를 더 검색해 보니 이름이 나왔는데, 이 꽃멸치가 ‘샛줄멸’이란다. 
 
언뜻 보면 샛줄멸이 가늘고 긴 체형이어서 멸치와 비슷하고 같은 청어목에 속하지만 세분하면 멸치는 멸치과에 속하는 반면 샛줄멸은 청어과에 속해 분류학상으로는 다른 위치에 있다. 
 
물고기 박사인 내게도 익숙하지 않은 물고기이다. 그렇다면 멸치를 취재하러 와서 멸치가 아닌 샛줄멸을 만났으니 헛수고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문 작가는 태평하다. 그녀에게는 꽃멸도 멸치란다. 이름과 분류, 그 모든 것은 인류와 멸치가 태어나고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몇몇(?) 사람들이 딱지 붙인 것이란다. 
 
더욱이 비양도에서 나는 꽃멸은 너무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멸치라 하며 회로도 먹고 젓을 담아 먹어 온 백성의 물고기라는 것이다. 이게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인가?
   
비양도에서 꽃멸이라 부르는 ‘꽃멸치’의 생물·생태학적 정보를 찾아보았다. 정식 이름은 샛줄멸이고, 학명은 스프라텔로이데스 그라실리스(Spratelloides gracilis)이다.

 

청어목 청어과에 속한다. 영어로 실버스트라이프 라운드 헤링(Silver-stripe round herring) 또는 밴디드 블루스파트(Banded blue-spart)라 부른다.  

몸 빛깔은 등쪽은 연한 청색, 배쪽은 백색이며, 몸 옆구리에는 폭이 넓은 은백색의 세로띠가 있으며 이와 평행하게 등쪽 언저리에 푸른빛의 띠가 둘려 있어 반짝거린다. 몸은 가는 원통모양으로 앞뒤가 측편 되어있으며, 주둥이는 원추형으로 다소 뾰족하다. 
 
생태적 특성을 보면, 외양성 어류로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연해, 그리고 일본 중부 이남, 동중국해, 대만 등 따뜻하고 깨끗한 연안에 주로 서식하며, 먼 거리 회유를 하지 않는다. 산란기는 5~8월로서 이때가 되면 떼를 지어 연안으로 몰려와 지름 1.2㎜의 둥그런 점착성 알을 낳아 암초나 해조류에 붙여 놓고 떠난다. 
 
1주일 만에 부화한 새끼는 5㎜ 정도로 연안에서 동물플랑크톤을 먹고 살며 낮에는 수면 가까이, 밤에는 밑바닥 층으로 큰 떼를 이뤄 유영한다. 겨울이 오기 전 5㎝ 정도까지 자라면 외양으로 떠나는데, 다 자라면 체장이 11㎝로 수명은 1~2년 정도이다. 
 
1년이면 성숙하여 다음 해에 산란을 위해 다시 연안으로 들어오는 생활사를 거듭한다. 이 정도가 샛줄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이다. 
 
그 만큼 연구도 되지 않았고, 육지 쪽에 서식하지 않으니 두루 알려지지도 않았다. 자연과학은 연구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접하지 않으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bi2.jpg» 제주 비양도에서 꽃멸 또는 꽃멸치라 부르는 샛줄멸. 
 
비양도 사람들은 ‘꽃멸이 비양도에만 산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정도의 정보와 주민들의 설명을 토대로 하여 물고기 박사의 과학적 눈으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여기에 과거 뉴스 기사를 찾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참고문헌 조사에 해당할 것이다. 여러 기사를 종합해 보니, 201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는 매년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마을어장에서 샛줄멸(제주명 꽃멸치) 조업을 희망하는 연안자망어선에게 6~8월 한시적으로 조업을 허용하였다. 
 
이런 조처는 매년 이맘때면 값 좋은 샛줄멸 떼가 비양도 연안으로 회유하여 들어옴에 따라 어민들이 조업허용을 요청해서 이뤄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안자망 어업허가 내줄 때 마을어장에서는 수산자원보호 측면과 해녀가 물질할 때 위험할 수 있으니 조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붙여 제한해 왔었다고 한다.
 
bi3.jpg» 연안자망을 이용한 비양도 꽃멸치 잡이. 사진=<연합뉴스>
 
이 상황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활사에 따라 외해에 살던 샛줄멸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회유하는 시기, 즉 산란기가 비양도 주변 해역에서는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이다. 그리고 외양성 어류인 샛줄멸이 연안에서 점착성 알을 낳는데, 알을 붙일 암초나 해조류가 있는 얕고 깨끗한 물이 있는 곳으로 비양도가 적격인 것이다. 
 
비양도에서는 이러한 바닷가 해안을 ‘엿동산’이라고 한다. 나름 어원을 유추해보면 냇가에 돌멩이가 있고 그 위에 물이 자박자박하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하며, 깊은 바닷가에서 수심이 얕으려고 하면 어느 정도 솟아오른 곳이어야 하는데 이를 동산이라고 표현하였다. 여울이 있는 동산이라고 해서 지역 어민들이 부르는 이름 ‘엿동산’이 되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비양도에서만 샛줄멸이 서식할까? 서식환경으로는 제주도 연안은 거의 비슷한 조건일 것이다. 다만, 비양도 어업인들이 요구하고 이곳 연안자망어선에게만 한시어업이 허용되어 어획하고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섬에서 주민들이 담아 먹어왔던 ‘멸젓’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림수협에서 일괄 구매해서 젓갈을 비양도 특산품으로 만들었으니 훌륭한 협업 사례이다. 꽃멸치의 ㎏당 위판단가가 2500원이 넘어 일반 멸치의 가격과 비교하면 8∼10배 이상 높으니 어민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주에 오면 누구나 똥돼지 또는 흑돼지 맛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한림읍에 나가면 뒷골목에 근고기집이 하나 있다. 근고기는 몇 인분으로 팔지 않고 근을 달아서 판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단 고기가 두껍다. 아직도 연탄불을 고집한다. 가운데 화덕이 있는 스테인레스 원탁이다. 보드카가 연상되는 라벨을 붙인 한라산소주 한잔하기에 딱 맞는 분위기다. 
 
고기를 올려놓은 석쇠 아래에 뭔가 담긴 종지가 놓여 있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주인 아주머니는 고기 찍어먹는 육젓이란다.

 

보통 육지에서 육젓이라 하면 유월에 잡아 담근 새우젓을 말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새우는 아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멸치는 젓갈을 담으면 삭아서 국물만 남아 액젓이라 부르고, 샛줄멸은 살이 단단해 젓갈을 담아도 육질이 남아 있어 고기 육(肉)젓이라 부른단다. 
 
아하~ 기가 막히다. 이게 문화(文化)이다, 글이 되는 것.
 
bi4.jpg» 제주흑돼지 근고기(왼쪽)와 육젓이라 부르는 꽃멸치 젓갈.
 
일본은 역시 거의 모든 물고기에 대해 연구와 이용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샛줄멸은 일본 남쪽의 규슈 가고시마 지방에서 유명하다. 
 
심지어 안 먹어보면 ‘유감’이라고 할 정도이다. 게다가 ‘기비나고’(キビナゴ, 꽃멸치)’ 라면이 봉지면으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역시 샛줄멸이 살 수 있는 따뜻한 남쪽 바닷가 이야기다. 라면을 좋아하는 내가 한 번은 먹어봐야 할 패스트푸드이다.
 
bi5.jpg» 일본 가고시마 지방의 기비나고(꽃멸치) 봉지라면. 고양이가 물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 멸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미디어길 이문호 감독이 제주를 찾아온 것은 문 작가가 사전답사를 하고 간 뒤 두달여만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멸치를 촬영하러 오기에는 때 늦은 감이 있었다. 예상하건데 8월초면 멸치가 제주도 주변의 가까운 바다에서 빠져나가 먼 바다로 북상 회유하는 시기이다.
   
제주의 멸치는 전통적으로 불배 또는 챗배라 부르는 배를 타고 분기초망 어법으로 11월부터 다음해 8월 사이에 바닥이 모래펄질인 수심 10m 내외에서 조업한다. 
 
5~6월 봄에는 작은 멸치가 잡히고 멸치가 성장하면서 7~8월에는 큰 멸치가 잡힌다. 분기초망어업은 불을 밝히는 집어등을 뱃머리에 켜놓고 챗배 옆구리에서 챗대라는 막대기에 연결된 키 모양을 한 그물을 멸치 어군 밑으로 이동시킨 뒤 불을 밝혀 그물 속으로 유인하여 짧은 시간내 떠올려 잡는 어법이다. 
 
분기초망(焚寄抄網)이란 말 자체가 불빛으로 어군을 끌어 모아서 떠올려 잡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전통어업을 찾아 촬영하고자 성산포와 모슬포 등지의 서귀포 일대를 다 뒤졌는데도 헛방이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하여 물이 차서 일찍 조업이 끝났다고 한다. 멸치가 기다려주지 않고 이미 먼 바다로 이동한 것이다.
 
또 다른 제보가 들어왔다. 한림읍 옹포항에 가면 저녁 무렵 멸치 떼가 부둣가로 튀어오른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이 달려 나와 멸치를 바가지로 주워 담았단다. 
 
언뜻 듣기에 언젠가 뉴스에서 본 듯한 장면이 떠올랐다. 철지난 9월이 되면 동해의 속초 앞바다 백사장에 멸치 떼가 튀어 올라 주민과 관광객이 주워 담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현상은 늦여름 동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데, 고등어 떼에 쫒긴 멸치 떼들이 방향을 잃고 뭍으로 튀어올라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일이 제주에서도 일어나는가 싶어 몹시 설레는 마음으로 포구로 나갔다. 
 
달도 없는 그믐사리 때 만조가 되어 부둣가로 찰랑찰랑 물이 넘칠 만큼 수위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멸치 떼는 고사하고 멸치 그림자도 볼 수 가 없었다. 
 
함께 기다리던 제보자에게 그 당시 상황을 다시 들어본 즉 한달 전 7월 그믐 사리때 지나가던 멸치잡이 배들이 엔진소리를 높이며 항구로 들어오니까 멸치가 튀어올랐다는 것이다. 
 
동해 멸치 떼 뉴스와 같은 이유였구나 싶다. 멸치가 연안역에 충분히 있을 때 고등어 떼든 선박이든 멸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서 생긴 현상일 것이이라. 그러나 이 또한 시기가 지났다. 이미 멸치는 우리 주위에 있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기회는 바다목장사업과 바다숲조성사업으로 물밑으로 들어가는 잠수업체에게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잠수부들에 따르면 불과 보름전만 해도 서귀포시 보목리 앞바다에 있는 섶섬 물속에서 멸치 떼를 보았다는 것이다. 
 
혹시 발견하면 촬영을 해달라 부탁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자연은 이렇게 냉정하다.
 
■ 제주에는 원담이 있다
 
한림읍에서 옹포를 거쳐 협재를 지나 금능에 가면 금능해변이 있다. 예부터 육지에서 오는 관광객은 협재해수욕장에서 놀고, 지역 주민들은 금능해변에서 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평선 너머로 비양도가 보이는 백사장이 넓고 완만하여 아이들이 놀기에 최고이다. 이 백사장 한쪽으로 멸치가 들어온다.
   
제주도에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돌이라 하지 않았던가. 화산 폭발 때 분출한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송송 구멍 뚫린 시커먼 현무암을 제주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곳곳에 이용하였다. 
 
요즘 제주 올레 투어할 때 볼 수 있는 돌담이 그 대표적일 것이다. 돌담은 강한 바람으로부터 집과 작물을 보호해준다. 무덤가에도 돌담이 있는데, 산에 있다하여 산담이다. 
 
그러면 바다에도 돌담이 있을까? 돌 그물인 ‘원담’이 있다. 원담이란 돌을 둑처럼 얕으막하게 쌓아 놓고 밀물 때 물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다가 엉기성기 쌓인 돌담에 물은 빠져나가고 고기가 걸리게 만든 장치이다.
 
bi6.jpg» 제주 한림읍에 있는 금능원담. 생태적인 전통어법이다.
 
이와 같은 원리의 어업이 육지에도 있다. 서해 갯벌에 있는 독살이 그것이다. 
 
돌로 부챗살처럼 살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남해의 죽방렴도 재료가 돌에서 대나무로 바뀌었을 뿐 발을 쳐서 걸린 물고기를 잡는 원리는 같다. 
 
우리는 이들을 전통어법 또는 생태어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먹고 살려고 했던 자연발생적인 고기잡이이며 자연 순응적인 어업이라는 뜻이다. 
 
요즘 먹거리 관점에서 보면, 이런 어법으로 잡은 물고기는 슬로우푸드 또는 슬로우피쉬에 해당할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건강한 먹거리 운동으로 현대사회에서 이문을 남기려고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형 음식을 과거로 돌아가 천천히 그리고 소비자와 가까운 생산지에서 자연에 순응하여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의도이다. 절대적으로 옳다.
 
bi9.jpg» 원담 고기잡이와 원담지기 이방익씨. 
 
원담을 처음 만들 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품앗이로 무거운 돌을 하나하나 맞잡아 옮기고 쌓았을 것이다. 지금에야 그 엄청난 일을 손이 아닌 포클레인으로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겠지만 그 옛날에는 많은 노동력이 들었을 터이니 좀 미련해 보였을 것 같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동력을 감안하면 답 안나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원담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었던 것이지 한번 시설해 놓기만 하면 배 기름값이나 소비성 그물값이 들지 않아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니 자연순응적인 생태어업이 경제성도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지금은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도 줄고,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는 어부는 나일론으로 만든 그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더 이상 원담에서 고생스러운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원담에는 원담지기가 있다. 이방익 할아버지가 그이다. 
 
이 우직한 하르방은 소싯적에 군대 다녀와서부터 혼자서 부서진 원담을 보수하고 관리하면서 지금까지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이 원담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 자식들을 다 가르치고 장가보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무엇보다 남한테 해코지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 잡혀갈 일 없다고 농담하실 만큼 인생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8월은 우기가 한창이다. 가끔은 태풍도 분다. 제주의 여름은 유채꽃 피는 봄과 사뭇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감독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였다. 
 
자기 몸보다 더 소중이 여기는 촬영장비가 문제였다. 비가 치고 물이 차오르니 어쩔 수 없이 민박으로 옮겨 전전긍긍하였다. 
 
몸도 피곤해지고 멸치를 촬영해야하는 압박감까지 더해져 몰골이 말이 아닌데도 열정 하나는 대단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수중에 들어가 촬영을 해야 한다고 현지에서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았다. 그는 프로였다.
   
프로는 자기 일에 만족을 한다. 이 감독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원담을 촬영하고부터였다. 
 
물이 빠진 원담에 갇힌 어린 전갱이들이 군무를 하듯 일렬로 떼지어 다니는 모습은 맨눈으로 보아도 장관이었다. 맨 앞에 선 대장의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헤엄치는데, 유턴할 때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원담 물속에 카메라를 집어넣으니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맨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치어들과 작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보였다. 
 
연안이나 만 또는 조수 웅덩이가 해양생물의 보육장이라는 평소 나의 학설을 입증해주는 증거물이었다. 대중을 위한 방송촬영에서 과학을 입증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bi8.jpg» 원담에 갇힌 어린 전갱이 떼를 촬영하는 모습.
 
■ 원담에 갇혀 몰려다니는 어린 전갱이 떼 동영상

  

 

 

아직도 이곳 원담에 멸치나 꽃멸치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면 돌아오듯 북상했던 멸치가 월동하러 따뜻한 남쪽으로 남하할 때를 기다릴 뿐이다. 이렇게 자연은 기다림이다.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