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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역풍 자초하는 미국의 극단적 대결정책

북의 핵역풍 자초하는 미국의 극단적 대결정책
 
한호석의 개벽예감 <139> 대북유엔인권위 제소와 북의 핵시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11/25 [12: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이 사진은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특사자격으로 워싱턴 디씨를 출발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 지난 11월 7일 저녁 특별기편으로 평양에 도착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북은 미국에게 대통령 특사의 내방을 요구하였고, 미국은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냈다. 사진에 나온 군복을 입은 사람은 특사를 맞이하기 위해 평양국제비행장에 나온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다. 오른쪽은 통역관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이하 동일)

 

 

북은 왜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요구했을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는 특사로 지명된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지난 11월 7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사진 1>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특별기편으로 떠난 방북길이었다. 평양에 도착하여 하루를 머문 그는 북이 사면, 석방한 미국인 억류자 두 사람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주목하는 것은, 클래퍼 국장의 방북이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요구한 북의 제의에 따라 성사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SJ)> 2014년 11월 15일부에 실린 클래퍼 국장의 대담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 1일 북은 미국 대통령의 고위급 특사가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조속히 평양을 방문해줄 것을 미국에게 요구하였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북이 중시한 것은 미국인 억류자를 사면, 석방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 특사가 친서를 가지고 내방하는 문제였다. 


북은 왜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요구한 것일까? 위의 대담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은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요구하면서, “주요 국제회의 전에 (미국인 억류자들을) 석방하고 싶다”는 의사를 미국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인용문에 나온 ‘주요 국제회의’는 지난 11월 18일에 진행된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를 뜻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가 열리기 17일 전에 북이 미국 대통령 특사의 조속한 방북을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북인권결의안’이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 상정되기 전에 북이 대미직접협상을 통해 그 안건의 상정을 저지하려고 시도하였음을 말해준다. 


‘북인권결의안’을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 상정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서유럽 몇 나라들과 일본인데, 북은 왜 대미직접협상을 통해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 ‘북인권결의안’이 상정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것일까?


‘위킬릭스(Wikileaks)’에 폭로된 한 편의 비밀전문에서 그 사연이 드러난다. 주한미국대사관이 작성하여 2010년 2월 5일 본국에 보낸 ‘유엔인권이사회 3월 회의에 대처하는 한국과 미국의 행동통일의 중요사항들(ROK, U.S. Priorities In Sync for March Human Rights Council Session)’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미국 국무부는 ‘참고대책문건(reftel demarche)’을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남측 외교통상부(당시 명칭)에 전달하였다. 미국이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제기할 때 남측 정부가 미국의 문제제기에 찬성의사를 표시해달라는 요구가 그 ‘참고대책문건’에 담겨져 있었다. 이 비밀전문은 미국이 남측만이 아니라 다른 추종국들과 친미국가들을 인권공세에 끌어들이기 위해 은밀히 벌여온 막후공작의 일단을 보여준다. 미국은 바로 그런 식의 은밀한 막후공작으로 추종국들과 친미국가들을 동원하여 자기의 적국 또는 잠재적국들에게 인권공세를 가해왔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금 유엔무대에서 벌어지는 대북인권공세의 주범은 대북적대정책에 집착하는 미국이고, 대북인권공세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북은 미국 대통령 특사를 평양으로 불러 직접협상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클래퍼의 방북 이후에 전개된 상황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클래퍼가 방북한 기회에 북의 협상요구를 거부하였고,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서는 미국의 각본대로 ‘대북인권결의’가 채택되었다.  


지난 11월 16일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미국 CBS 텔레비전방송의 시사대담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하여 자신의 방북경험담을 들려주었는데, 자신이 평양에 도착한 직후에 마련된 만찬 중에 북의 고위급 인사들과 “서로 밀고 당기는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북의 고위급 인사들은 “미국이 개입주의적 접근에 따라 북의 내부문제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북의 내부문제’라는 것은 북의 ‘인권문제’를 뜻한다. 북의 고위급 인사들은 미국 대통령 특사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그 앞에서 북의 내부문제에 개입하는 미국을 비판하면서, 북의 ‘인권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 대통령 특사를 만나자마자, 북의 ‘인권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미국을 비외교적 언어로 비판한 것은,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이 북미직접협상으로 이어질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상황은, 미국이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 ‘북인권결의안’을 상정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북과 협상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미국인 억류자 송환만 생각하면서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지난 11월 8일 북이 평양고려호텔 회의실에서 진행한 미국인 억류자 사면식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북측 인사는 미국 대통령 특사 클래퍼에게 대통령 특사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모멸하였고, 그의 신변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위협하였고, 20분 시간을 줄테니 짐을 싸라고 명령하였다. 북은 사면식을 마치자마자 클래퍼 일행을 미국인 억류자 두 명과 함께 곧바로 출국시켰다. 미국 대통령 특사에 대한 북의 그러한 모멸과 위협과 냉대는 '북인권결의안'을 조작하여 유엔총회에서 채택하려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북의 대미협상제의를 거부한 미국에 대한 보복이었다.     © 자주민보


평양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의 태도에서 위와 같은 미국의 속셈을 간파한 북의 고위급 인사들은 미국 대통령이 특사로 파견한 그를 위협하고 모멸하고 냉대하였다. 이를테면, 북측 인사는 클래퍼 국장에게 “우리는 단지 억류자 두 사람을 데리러 온 당신을 더 이상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통령 특사가 아니므로) 당신의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시간 뒤에 다른 북측 인사는 클래퍼 국장과 일행에게 “20분 시간을 줄테니 짐을 싸라”고 말했고, 20분이 지난 뒤 클래퍼 일행을 평양고려호텔로 데리고 가서 미국인 억류자 사면절차를 진행하자마자 곧바로 클래퍼 일행과 억류자들을 출국시켰다. <사진 2>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은 자기 나라를 찾아온 미국 대통령 특사를 마치 황제의 칙사를 모시는 것처럼 극진하고 융숭하게 대접하는 법인데, 북은 미국 대통령 특사의 자격을 특사의 면전에서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특사자격을 인정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신변안전도 보장해줄 수 없다고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북은 클래퍼 국장에게 “특사자격을 인정할 수 없는 당신은 더 이상 필요 없으니 20분 안에 짐을 싸서 이 땅을 떠나라”는 식으로 명령하였으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이 보낸 대통령 특사를 모멸, 위협, 냉대하는 북의 당당함과 배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북이 미국 대통령 특사를 그처럼 모멸, 위협, 냉대하여 돌려보낸 것은 북의 협상제의를 거부한 미국에 대한 보복이었다.

 

▲ <사진 3> 클래퍼 특사가 북으로부터 모멸과 위협과 냉대를 받고 황망히 워싱턴 디씨로 돌아간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11월 18일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서 '대북인권결의'가 표결로 채택되었다. 사진은 그 회의에 참석한 북측 인사들이 전광판에 나타난 표결결과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미국은 1 대 1로 맞붙어 번번이 패해온 북과의 양자대결을 유엔무대로 끌고 가서 자기 추종국들과 친미국가들을 반북선동과 막후공작으로 동원하여 '북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 자주민보


평양에 간 미국 대통령 특사가 북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모멸과 위협과 냉대를 받고 황망히 워싱턴 디씨로 돌아간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11월 18일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서 ‘대북인권결의’가 표결로 채택되었다. 이것은 이제껏 1 대 1로 맞붙어 번번이 패해온 북과의 양자대결을 유엔무대로 끌고 간 미국이 자기 추종국들과 친미국가들을 반북선동과 막후공작으로 동원하여 ‘북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든 것이었다.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전면전위험을 촉발하여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알지 못하는 미국추종국들과 친미국가들은 미국의 반북선동과 막후공작에 부화뇌동하며 ‘대북인권결의’를 채택한 것이다. <사진 3>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꺼내든 미국

 

주목하는 것은, 유엔총회 69차 회의 제3위원회에서 채택된 ‘대북인권결의’에는 지난해까지 해마다 채택되어온 ‘대북인권결의’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어온 ‘대북인권결의’들은 북이 자국 인민들의 인권을 ‘침해’하였음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개선’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번에 채택된 ‘대북인권결의’는 북이 자국 인민들에게 ‘반인륜범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자행하였음을 지적하면서, ‘반인륜범죄’를 자행하는 북의 ‘범죄자’들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제소할 것을 권고하는 권고안을 유엔안보리에 제출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반인륜범죄는 인권침해와 전혀 차원이 다른, 가장 극악한 범죄유형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번에 미국이 반북선동과 막후공작으로 ‘대북인권결의’를 채택하게 만든 것은 종래의 대북적대행위를 뛰어넘어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꺼내든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북측 국방위원회는 지난 11월 23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에 ‘대북인권결의’를 채택한 것이 “우리 국권을 해치려는 가장 로골적인 선전포고로 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북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남으로 넘어간 일부 악질탈북자들이 악의를 품고 날조한 ‘증언’에 바탕을 두고 조작된 북의 ‘인권문제’를 유엔무대로 끌고 가서 북을 ‘인권침해국’으로 몰아간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이제는 북에게 ‘반인륜범죄국’의 올가미를 씌워 국제형사재판소로 끌어가려는 미국의 극단적인 대북적대행위가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반북선동과 막후공작으로 유엔무대에서 ‘대북인권결의’가 채택된 것은 2005년 12월에 진행된 제60차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처음 시작되어 해마다 되풀이되어온 일인데, 올해 2014년 12월에 진행될 유엔총회 제69차 본회의에서도 또 다시 ‘대북인권결의’가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이 사진은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6자회담에 참석한 6자 대표들이 9.19공동성명을 채택한 직후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맨 오른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대표, 일본대표, 우다웨이 중국대표, 송민순 남측대표, 김계관 북측대표, 러시아대표다. 미국은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새로 꺼내들고 그 이행을 가로막았으며, 6자회담을 파탄시켰다.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가로막은 대북적대정책의 산물인 것이다.     © 자주민보


그런데 미국은 왜 2005년 11월 17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대북인권공세를 처음 시작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해명하려면, 당시 두 달 시차를 두고 일어난,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채택과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 채택이 상호연관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 양자가 어떻게 상호연관된 것일까? 2005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이 충실히 이행되면,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을 영구 중지해야 하고,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하고, 한반도에 드리운 ‘핵우산’을 철거해야 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미동맹의 완전해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은 9.19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성명이 이행되지 못하게 가로막은 방해공작을 서둘러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이 느닷없이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꺼내든 배경이다. <사진 4>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날로부터 보름이 지난 2005년 10월 6일 미국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 겸 6자회담 미국수석대표는 9.19공동성명이 이행되어 ‘북의 비핵화’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북의 인권침해문제’까지 해결되어야 그 공동성명에 명시된 북미관계정상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힐의 그런 발언이야말로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새로 꺼내들고 그 이행을 가로막으려는 당시 부쉬정부의 노골적인 방해의사를 드러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자기의 대북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속하려는 구실로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한반도정세에 있어서 지난 9년은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촉발한 수많은 사연과 굴곡과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겨온 험난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북의 인권침해문제’를 또 다시 거론하는 기존 대북적대행위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북의 반인륜범죄’를 거론하는, 극단적으로 악화된 대북적대행위를 감행하였다. 유엔무대에서 “북이 자국 인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지하고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줄곧 비방중상해오던 미국이 올해에는 “반인륜범죄를 저지르는 북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반북대결정책이 극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얼마 전까지 그들이 그토록 목청을 높였던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결국 유엔무대에서 반북대결의도를 드러낸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마침표를 찍었다. 제국주의지배체제를 전면 거부하고 6.15 공동성명과 10.4 선언에 따라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북을 어떻게 해서든지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적 공격심리가 유엔무대에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함으로써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북측 국방위원회는 11월 23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벌어진 사태는 우리 군대와 인민을 무섭게 격노시키고 있으며 치솟는 보복열기는 하늘 끝에 닿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21일 세계보수정당연합체인 국제민주연맹(IDU) 당수회의 참석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나누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며 단절과 고립의 길을 고집하면서 지금 북한 주민들은 기아와 비극적인 인권상황에 직면해있다”고 비난조의 연설을 하였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이른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금 대폭발 직전 상태로 밀려간 한반도정세를 생각하면, 위와 같은 대통령의 발언과 새누리당의 행동은 이번 사태로 인해 분노와 보복열기로 들끓는 북을 더욱 자극하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11월 21일 북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991군부대를 시찰한 소식을 일제히 전하였다. 제991군부대는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항공군부대다.


유엔총회 제69차 회의 제3위원회에서 ‘대북인권결의’가 채택된 시각은 지난 11월 18일 오후였는데, 평양과 뉴욕의 시차를 대입해보면, 그 결의가 채택되었다는 보고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상신된 시각은 11월 19일 새벽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보고를 받고 장거리시찰길에 올랐다. 그 장거리시찰은, 북측 언론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외진 북변에 위치한 군부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이 유엔무대에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를 향해 장거리시찰길에 오른 것이다. 왜 그러하였을까?

 

▲ <사진 5> 2006년 3월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를 시찰하고, 그 부대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날로부터 꼭 일곱 달이 지난 2006년 10월 9일 북은 제1차 지하핵실험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다.     © 자주민보

 

▲ <사진 6> 2014년 11월 2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를 시찰하고 그 부대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부대가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에는 만탑산 핵실험장이 있다. 미국이 북에게 '반인륜범죄국'의 올가미를 씌워 북의 최고영도자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만탑산 핵실험장을 향해 장거리시찰길에 올랐던 것이다.     © 자주민보




여기에 실린 두 장의 기념사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5>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를 시찰한 날은 2006년 3월 2일이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부대를 시찰한 날은 2014년 11월 20일이다. <사진 6>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그 부대의 장병들은 406명이었는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뒤에 김정은 제1위원장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그 부대의 장병들은 44명밖에 되지 않는다.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병들이 왜 그처럼 줄어든 것일까?


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991군부대를 시찰하였을 때는 수행원들이 조립식 발판과 구호판을 현장에 가져갔지만,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군부대를 시찰할 때는 수행원들이 조립식 발판과 구호판을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대의 지휘관들과 비행사들 44명만 간소하게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던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군인들이나 인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조립식 발판은 400~500명이 한꺼번에 올라서는 크고 무거운 철제장비인데, 발판 위쪽에 커다란 구호판이 세워진다. 그처럼 크고 무거운 조립식 발판과 구호판을 사진촬영현장에 가져가려면, 대형화물차 두 대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이 유엔무대에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제991군부대를 향해 장거리시찰길에 오를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립식 발판과 구호판을 실은 대형화물차 두 대를 동행시키지 않고 고위급 군지휘관 4명과 경호병들만 대동하였던 것이다. 왜 그러하였을까?


이 의문을 풀려면, 우선 제991군부대의 주둔위치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북과 남에서 나온 어떤 언론보도기사에서도 그 군부대의 주둔위치를 말해주는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위의 기념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제991군부대는 장병 약 400명으로 편제된 부대이므로, 항공군부대로서는 아주 작은 규모임을 알 수 있는데, 그처럼 작은 규모의 항공군부대여서 언론보도에 그 주둔위치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북에서 북변이라고 하면, 험준한 산악지대가 펼쳐진 함경북도 내륙지방을 일컫는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가 함경북도 내륙지방의 외진 곳에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도를 살펴보면, 함경북도를 가로지른 북위 41도와 42도 사이에 위치한 비행장 세 곳이 눈길을 끈다. 남에서는 공군기지와 공항을 구분하지만, 북에서는 항공군기지와 공항을 구분하지 않고 비행장으로 통칭한다. 눈길을 끄는 그 비행장들은 한반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어랑비행장, 경성비행장, 길주비행장이다. 어랑비행장은 함경북도 어랑군 해안지대에 있고, 어랑비행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경성비행장은 함경북도 경성군 해안지대에 있고, 그 두 비행장들에서 멀리 떨어진 길주비행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내륙지방에 있다. 해안지대에 위치한 어랑비행장과 경성비행장은 규모가 비교적 큰 비행장들이어서 언론보도에 가끔 나오지만, 내륙지방에 위치한 길주비행장은 규모가 아주 작은 비행장이어서 언론보도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11월 20일에 찾아간, 외진 북변에 위치한 제991군부대는 길주비행장에 주둔하는 항공군부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유엔무대에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그 소식을 듣고 제991군부대를 향해 장거리시찰길에 오른 것일까? 
주목하는 것은, 함경북도 길주군에 길주비행장만이 아니라 만탑산 핵실험장도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유엔무대에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산악지대에 있는 만탑산 핵실험장을 향해 장거리시찰에 올랐고, 그 시찰길 도중에 제991군부대부터 돌아본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장거리시찰길을 가고 있었던 11월 20일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성명에서 “미국의 대조선적대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핵시험을 더는 자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언명하였다. 2006년 3월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제991군부대를 시찰한 때로부터 꼭 일곱 달이 지난 10월 3일 북측 외무성은 지하핵실험이 임박하였음을 알려주었고, 그로부터 엿새가 되던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실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이 해발고 2,205m의 거대한 만탑산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2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바로 그 군부대를 시찰하였고, 북측 외무성은 북이 새로운 지하핵실험을 자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북측 외무성은 이미 지난 3월 30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반인륜범죄국’의 올가미를 북에 씌우려는 미국의 난폭한 대북적대행위는 북에게 제4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명분을 안겨준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이번에 미국이 북에게 ‘반인륜범죄국’의 올가미를 씌워 북의 최고영도자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극단적 대북적대 정책 실행으로 사실상의 대북선전포고를 공식화하였는데,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누가 감히 북에게 보복할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참고 견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난 60년 동안 지속되어온 북미대결사를 보면, 이번에 벌어진 극도로 엄중한 사태를 북이 묵과하고 지나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북은 미국에게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지난 11월 23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미 선포한대로 극악무도한 대조선<인권>광란극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기 위한 미증유의 초강경대응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초강경대응전이란 북이 새로운 형태로 실시할 지하핵실험의 핵역풍이 머지 않아 미국을 강타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1월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북이 핵실험을 상시적으로 준비한다고 보지만 가까운 시일에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뭔가 어설프다. 북은 핵실험징후를 사전에 절대로 노출하지 않고 불시에 전격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북의 핵실험징후를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북이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만일 북이 새로운 형태의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국은 또 다시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대북제재를 추가하는 조치를 내릴 것이다. 이에 북은 이전보다 더 강한 보복조치를 연속적으로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측 국방위원회가 이번에 성명에서 예고한 초강경대응전이 결국 폭발점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형태의 지하핵실험으로 미국을 강타하게 될 북의 초강력한 핵역풍이 우려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근래 들어 통일성전을 자주 운운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는데 또 이렇게 북미관계까지 악화일로를 걸어가고 있어 더욱 한반도 운명에 대한 걱정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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