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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전 칼럼]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박근혜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18 오전 11:08:17

 

이번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은 흔히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한판 승부라고 한다.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를 사사건건 끊임없이 흔들어 댔고, 그리고 이명박정부를 만들어낸 바로 그 보수세력이 이번에는 박근혜 후보를 밀고 있다. 5년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후보는 절대 대통령감이 될 수 없다면서 그 이유를 열 가지나 나열하였던 보수 인사들도 지금은 박근혜후보의 뒤에 서있다.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 모두 '국민의 행복', '정치 쇄신', '경제민주화'를 핵심 선거 구호로 외치고 있어서 겉으로는 양쪽의 선거공약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속 내용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명분은 겉모습일 뿐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밑바탕에 꿈틀거리는 논리 및 사고방식이다. 사고방식과 논리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명분이 구체화되는 모습이 엄청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우리 모두가 사회 정의를 진정으로 원하지만, 보수진영이 말하는 정의와 진보진영이 말하는 정의가 사뭇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까지 보면, 보수진영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논리 및 사고방식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문제는, 그 논리 및 사고방식이 낡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보수진영으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주장은 경제성장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다. 마치 경제성장만 이루어지면 자동적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국민화합도 이루어지며 국민의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1997년 IMF경제위기 이전의 시대에나 통하는 것이다. 특히 박정희독재정부 시절에는 고용증대, 빈부격차 완화, 그리고 국민의 행복증진에 미치는 경제성장의 기여가 무척 컸다. 박근혜 후보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보수적 인사들 중에는 과거 박정희독재정권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시대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그런 시대에 통하던 사고방식이나 논리가 21세기에도 통할 수는 없다. 더욱이나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그런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고 경제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보수진영 인사들은 박근혜후보의 뒤에서 호랑이 담배 피던 때의 얘기나 하고 있다.

더도 말고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자. 우리는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맥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자살 증가율이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높았으며, 결과적으로 삶의 질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보수진영은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어서 이런 우리의 어둔 현실을 자꾸 외면하고 있다. 경제수준이 어느 단계를 올라서면(예컨대, 1인당 국민소득이 2,3만 달러 대를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경제성장의 약발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은 이미 선진국에서 거의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도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되는 경향이 있으며, 고용도 잘 늘어나지 않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보수진영 핵심인사들은 '경쟁의 원리'를 굳게 믿는 경향을 보인다. 경쟁이 활성화되어야만 나쁜 습관이나 제도가 도태될 수 있고,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솎아낼 수 있으며, 그래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 역시 구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생산성이 아주 낮은 후진국에서는 경쟁의 활성화가 확실히 생산성 향상에 효과적이다.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성이 고도화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는 경쟁의 활성화가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경쟁에도 생산적 경쟁이 있고 소모적 경쟁이 있다. 선진국과 같이 뜯어먹을 것이 많은 나라에서는 생산적 경쟁보다는 소모적 경쟁이 심해진다. 지대추구 활동은 소모적 경쟁의 한 예다.

이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사교육의 성행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인데, 이것도 소모적 경쟁의 일종이다. 요즈음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극히 드물어 졌다. 그 이유는 개천에는 학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자녀가 학원에 가서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고 모두가 일류 대학과 일류 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다. 사교육이 극성을 부린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소모적 경쟁이 극성을 부린다는 얘기다.

경쟁의 원리를 굳게 믿는 사람들은 실업자나 빈곤층은 무능하고 게을러서 경쟁에서 낙오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낙오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혼 내주는 것이고, 복지는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성공한 CEO나 재벌은 경쟁에서 이긴 존재요, 따라서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진영 사람들은 반기업 정서를 몹시 싫어한다.

보수진영 사람들은 경쟁의 장점만 얘기할 뿐 그 폐해는 잘 얘기하지 않는다. 경쟁은 스트레스를 낳는다. 우리 국민의 행복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의 하나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가져온다. 경쟁 강화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우리 행복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지에 대하여 보수진영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경쟁의 강화만 외칠 뿐이다.

경쟁의 원리와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보수주의 논리는 인센티브의 원리다. 능력과 실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수를 주어야만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요 따라서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 보수진영의 논리다. 그러나 이런 논리도 춥고 배고프던 박정희독재정권 시절에나 통하는 논리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국민들이 불평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이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첨부할 것은,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계층간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빈부격차가 고착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그토록 미국 사람들이 자랑하던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고 있다. 날로 늘어가는 우리나라 청년실업 현상은 "코리안 드림"이 사라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각 후보의 선거공약보다도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마음속에 있는 사고방식과 논리다. 근래 지속적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보수진영을 지배하고 있는 저 시대착오적 사고방식과 논리다. 설령, 박근혜 후보 자신은 그런 사고방식과 논리에 젖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보수진영에 업혀 있으면서 그녀가 과연 보수진영의 사고방식과 논리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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