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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영원히 승리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강화도 심도학사 길희성 원장

 
2012. 12. 18
조회수 276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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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심도학사 원장

 

 

 

독일에서 히틀러에게 쫓겨나 미국의 유니언신학대와 하버드대 등에서 가르친 신학자 폴 틸리히(1886~1965)는 “기독교만으로 신학을 하는 신학자는 내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폴 틸리히는 기독교 밖과도 대화하지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자극으로 이후 동서 종교간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다종교국가임에도 기독교와 불교는 아성을 굳건히 지키는데서 한발도 나아가려하지 않는다. 각 종교는 그 원인으로 상대탓을 들지만, 근본주의적 신앙이 지배하는 보수기독교에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는 배타주의적 이원론에, 불교에선 붓다의 가르침만이 최고이고 다른 것은 하등하다는 자만감에 갇혀 있기는 매일반이다.

 

 그런데 이런 아성을 과감히 뚫고 나온 선구자가 있다. 인천 강화도 내가면 오상리 심도학사(尋道學舍) 길희성(69)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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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길희성 원장과 프로그램 참여자들

 

 

 올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린 지난 7일 길이 꽁꽁 얼어붙고 미끄럽기 그지 없는 험로를 뚫고 고려산 자락의 심도학사에 차들이 한대 두대 도착했다. 이날 밤 8시부터 시작되는 2박3일간의 강좌에 참석하려는 이들이다. 강좌 연기를 고려할 기상 상황에도 14명이 강의실을 가득매웠다. 기업 시이오와 의사, 약사, 변호사, 예술가, 교사, 회사원, 주부 등 공부모임 참석자들이 각양각색이다.

 

 이번 강좌는 <수심결>이다. 한국불교에서 선서(禪書)로서 가장 많이 읽히는 고려승 보조 지눌이 ‘마음 닦는 길’을 밝힌 책이다.

 

길 교수는 크리스찬이다. 크리스찬이 불서를? 의구심이 들법하다. 하지만 종교학자인 그는 불교·인도철학자 몫으로는 유일한 학술원 회원일 정도로 불교학에서도 손꼽히는 학자다.

 

 기독교 환경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재학 때까지도 한경직 목사가 이끄는 영락교회의 ‘보수적’ 신자였다. 그러나 세상을 알면알수록 정통신학이 감옥처럼 느껴져 숨이 막혀왔다. 그 때 빛이 되어준 게 폴 틸리히와 영국의 다원주의 신학자 존 힉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예일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허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했다. 하버드대에서 불교 원전을 읽을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팔리어까지 배웠다. 그의 박사논문 주제는 고려의 대선사 보조지눌(1158~1210)의 선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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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 전경

 

 

 

 그는 서울대를 거쳐 서강대 교수를 하던 1980년대 보조국사의 본찰이던 전남 송광사에서 법정 스님, 김지견 박사 등 당대 최고의 승려 및 불학자들과 함께‘보조국사전집 편찬위원회’에 참여했다.

 

기독교 내에서도 그는 ‘새로운 길’을 연 개척자였다. 1980년대 한완상 교수 등과 함께 서울 강남 삼성동에서 목사가 없고, 교회 건물이 없고, 교단이 없이 대안을 모색하는 새길교회를 이끌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5월 서해바다가 보이는 고려산 자락 300여평에 세미나동과 숙소동 두동으로 지어 개원한 곳이 심도학사다. 16명이 동시에 숙박하고 공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심도학사에선 주말 2박3일간 △기독인을 위한 불교강좌 △불자를 위한 그리스도교 강좌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신앙 △초종교영성론 등의 주제별 강좌와 함께 <도덕경>, <반야심경>, <금강경>, <대학>, <복음서>, <바가바드 기타>, <고백록> 등의 고전읽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선불교에 대한 그의 강의는 직독직해에 머물지 않았다. 선(禪)의 특성 그대로 즉각 본성을 직시하게 한다.

 “선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공부다. 즉 이를 위한 내려놓기, 덜기, 벗기, 비우기, 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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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결 강좌

 

 

 선(禪)의 이유를 분명히 제시한 그는 이어‘마음 보는 법’으로 이끈다. 맑고 투명한 거울은 ‘진심’(眞心)과 같고, 이 거울에 미치는 생각들이 ‘망심’(妄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새가 허공에 달듯이 거울에 비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보라는 것이다.

 

 그는 프로그램 도중 오전과 오후 두차례씩 볕이 잘 드는 명상룸에서 명상을 직접 인도한다.

길원장은“모든 종교 모든 영성은 초월적 경지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된다. 그런데도 그에 이르는 명상법을 무시한 게 기독교의 맹점이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크리스찬 수강자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를 잊지않는다. 그는 “가족들끼리도 여행 중에 종종 사찰을 방문할 때면 독실한 크리스찬인 처형은 사찰 벽에 이상한 것들이 그려져 싫다고 아예 문안에 들어가려고도 하지않는다”며 “이런 상(相·모양)은 무상(無相·만물의 본체는 공으로 형체가 없음)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시청각 자료로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강의가 승려나 불교학자들과 남다른 점은 불교와 기독교, 동서사상을 회통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눈은 하느님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그는 마이스터 에카르트(1260~1327)의 말을 통해 참선의 정수를 전달한다. 에카르트는 그가 기독교와 선불교가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게 한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이자 수도자다.

 

기독교내에서 문자를 액면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는 불교적 근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초기불교의 공(空·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사상은 대승불교의 불성(佛性)사상으로 발전했다.

 

 “공사상만으로 부족해 불성사상이 나온 것이다. 텅 비어있는 가운데도 투명하고 환한 빛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공부한 이들이 불성사상은 붓다가 말한 게 아니라며 배타한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2천년 불교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초기 불교 이후 발전 역사는 모두 잘못됐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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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결 프로그램 참가자들

 

 

이 강의의 백미는 불교의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날 화두는 선악과 윤리였다.

 “기독교적 선악 이분법은 니체를 질리게 한 것이기도 하지만, 불교는 선악시비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하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돼 윤리의식이 약해졌다. 주자와 정도전이 불교에 대해 비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전후 독일의 사과와 달리 일본이 아무런 사과 없이 저렇게 나가는 것도 윤리의식의 부재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는 또 초월이 중시되는데 반해 불교적 윤리관을 확고히하지못했기에 불교에서 사회 참여의 논리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선악초월과 마찬가지로 불교의‘무아(無我)설’에 대해서도“히틀러와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이 죄와 공에 대해 제대로 징벌이나 보상을 받지 않고 똑같이 무로 돌아가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재자처럼 불의한 사람이 영원히 승리하는 것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의 강좌를 들은 한 기독교인은 “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스님들과 불자들과 만나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한 것과 달리 불교쪽 참여자가 거의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에 대한 편견이나 대화에서 기독교보다 오히려 불교가 많이 닫혀있는 것이 의외다”고 말했다.

 

심도학사(cafe.daum.net/simdohaksa) 프로그램은 겨울에는 쉬고, 내년 봄에 다시 재개된다.

 

강화도(인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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