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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산 달성 습지 고속도로로 숨 막힐 라

겨우 산 달성습지 고속도로로 숨막힐라

김정수 2015. 02. 04
조회수 738 추천수 0
 

한때 철새낙원 대구 달성습지, 고속도로 건설로 생태회복 기대에 찬물

환경단체, “습지생물 위협 불보듯, 노선 변경해 습지 추가훼손 막아야”

 

dal1.jpg» 경북 달성군 낙동강변 화원유원지에서 바라본 달성습지의 모습. 가운데 넓게 보이는 수면이 금호강, 왼쪽에 일부 보이는 수면이 낙동강, 오른쪽 숲에 가려져 있는 수면이 진천천이다. 육상부엔 주로 갈대와 물억새로 뒤덮인 가운데 버드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1989년 <아시아 습지 목록>에서 낙동강과 금호강 합수부 주변의 충적평야를 포함한 서대구 달성습지 총면적을 50㎢로 기록했다. 강 속과 주변에 펼쳐진 넓은 모래밭, 큰비만 오면 강물에 잠기는 범람습지와 인근 논습지 등으로 이뤄진 과거 달성습지는 두루미류를 포함한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대구를 섬유산업 중심의 공업도시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한테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 모습이다.
  

1월30일 달성습지에서 만난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회장(이학박사)은 “과거 습지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겨울만 되면 몰려든 새들이 내는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1980년대 대구 달서구 금호강 쪽 농경지가 공단으로 개발되고 낙동강 건너편 농경지가 비닐하우스로 덮여가자 달성습지의 비극이 시작됐다. 결국 1995년 이후 달성습지에서는 더는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의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지금의 달성습지 규모는 보고서에 따라 작게는 2㎢에서 크게는 8㎢까지로 평가된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그라들었다. 그렇다고 달성습지의 생태적 가치까지 비례해 줄어든 것은 아니다. 
   

03646585_R_0.JPG» 4대강 공사가 한창이던 2010년 달성습지(오른쪽)와 흙탕물이 흐르는 낙동강 본류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과거엔 금호강의 오수가 맑은 낙동강 물과 비교됐다. 사진=낙동강살리기운동본부

 

겨울 오후의 달성습지는 황량했다. 사람키 높이로 자란 갈대와 물억새 군락이 누렇게 말라 있었고, 수면엔 물닭만 십여마리 보일 뿐이었다. 습지 사이로 난 길 위엔 고라니와 너구리 등 야생동물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석윤복 달성습지생태학교 운영위원장은 “달성습지에는 맹꽁이, 구렁이, 삵, 수달, 수리부엉이,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종만 십여 종 이상 관찰된다”며 “생물다양성면에서도 최고의 습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작성된 ‘대구순환고속도로(성서~지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달성습지와 습지에 붙어 있는 26만㎡의 대명유수지를 대상으로 2013년 집중적으로 진행한 육상동물상 조사에서는 포유류 10종, 조류 74종, 양서류 7종, 파충류 8종, 곤충류 224종이 확인됐다. 양서·파충류나 조류의 종수 면에서는 경남 창녕 우포늪에도 뒤지지 않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05175304_R_0.jpg» 지난해 10월 달성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대구/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12년 달성습지에는 재두루미 70여마리가 찾아들었다. 1995년 이후 17년 만이다. 이듬해는 흑두루미도 400여마리나 나타났다. 두루미류가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데에는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안동 구담습지, 구미 해평습지 등 낙동강의 다른 주요 하천습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훼손된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달성습지는 좀 일그러지기는 했어도 안동댐에서 부산 을숙도에 이르는 낙동강 하도 구간의 최대 습지로서 야생동물들에겐 양보할 수 없는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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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들이 다시 찾아오자 달성습지 주변에는 생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 기대감은 지난달 초 한국도로공사가 달성습지 제방 위로 지나가도록 설계한 총연장 10.75㎞의 제4차 대구순환고속도로 공사에 들어가면서 흔들리고 있다.
  

너비 30여m에 이르는 달성습지 제방은 둑 옆으로 이미 나 있는 4차선 도로와 습지 사이에서 완충지대 구실을 한다. 이 완충지대를 20m가량 없애버리고 깔리는 고속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과 불빛은 습지의 야생동물들한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2011년부터 달성습지에서 멸종위기종 맹꽁이와 조류를 관찰해온 석 운영위원장은 “습지 제방 옆 대명유수지에서 변태한 맹꽁이들은 주변 숲이나 빈 땅에 많이 올라와 살기 때문에 유수지 옆으로 고속도로가 나면 생존 영역이 줄어드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큰비가 내려 습지가 물에 잠길 때면 안에 있던 고라니나 너구리 등의 포유류는 물론 뱀과 같은 파충류들도 제방 위로 피하곤 하는데, 도로가 만들어지면 이들이 피난하는 데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dal2.jpg»  달성습지 제방 위로 계획된 대구 4차 순환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모임인 ‘달성습지 친구들’ 회원들이 ‘세계 습지의 날’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습지 제방 위에서 “달성습지를 국가 습지로 지정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대구환경운동연합

  

달성습지 환경 보존을 바라는 대구 지역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달성습지 친구들’은 대명유수지와 유수지에 인접한 달성습지 구간만이라도 우회하는 대안 노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도로공사는 “공사비가 500억원가량 추가되는 노선 변경은 곤란하다. 보호 울타리와 방음벽 설치로 습지에 주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달성습지의 경관적 가치도 중요한데 도로공사와 시공사 계획대로 제방 위에 1.2m를 성토한 뒤 높이 2m의 방음벽을 설치하면 달성습지 경관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구시 인구가 350만명이 넘을 것에 대비해 1980년대에 세운 도로 계획을 인구가 250만명에서 정체해 있는 상황에서도 고집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2004년부터 달성습지 생태공원화 사업을 시작한 대구시는 올해에는 170억원을 들여 훼손된 습지를 복원하고 탐방로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둑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생태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고, 다른 쪽에서는 생태환경을 악화시킬 사업이 거의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는 노선 변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청 도로과 관계자는 “이번 공사는 도로공사에서 발주한 것이어서 시에서 이렇다 저렇다 할 사안이 아니다. 도로공사가 환경단체의 요구를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임성무 교사(대구 상인초교)는 “달성습지 제방에 세워질 방음벽은 자연과 인간을 가르는 거대한 장벽”이라며 “생명의 땅은 비껴가는 도로공사, 기업 이익보다 습지를 지키는 기업의 모습을 대구 달성습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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