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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가는 우려를 낳고 있는 병영문화 혁신조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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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2015. 02. 05
조회수 2982 추천수 0
 

  작년 12월에 국방부의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가 총 22개 혁신과제를 국방부에 권고하고 공식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후 국회 병영문화특위(위원장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활동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면서 혁신 과정에 힘을 보태기 위해 기존 병영혁신위원 중 일부가 참여하는 병영혁신자문위원회를 올해 1월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본 기자는 지난해 혁신위원회에 이어 올해 자문위원회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병영문화의 무엇이 혁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혼선과 이견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하게 됐다. 어쩌면 혁신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일부과제가 장기적으로는 혁신을 더 지체시키는 질곡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세간의 의심이 고조되고 있다.

 

  전체주의적 병영의 완결판


  이상 징후는 야전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전방의 한 부대에 근무하는 소령은 최근 군의 잘못된 후속대책 중 하나로 “초급간부 자가 차량 보유 금지” 지시를 지목한다. 최근 육군 일부 부대들은 초급 지휘관들의 자가 차량 운영을 전면 금지시키고 일정 시간까지 부대 내 독신자 숙소(BOQ)에 복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숙소에 들어오면 야간 당직사령에게 반드시 복귀 신고까지 의무화하면서 간부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부대가 통제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 지시에는 간부의 일탈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사고 예방이 장병에 대한 더 강한 통제와 규율로 연결된다는 불편한 진실도 내포되어 있다. 병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병영혁신위원은 윤 일병 사건으로 뒤숭숭하던 작년 말에 야전부대에서 실제 목격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어떤 부대에 영관급 장교가 부임했는데 휴일 날에 매 시간마다 수첩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병사들이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장교가 한 병사를 붙들고 “뭐하는 거냐”고 질문하자 “매 시간마다 분대원들의 현 위치를 파악하여 상황실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 부대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관리가 되지 않고 안심이 되지 않으니 일과 이외의 시간에는 매 시간대별로 병사들의 위치와 이동상황까지 다 파악하고 통제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감시와 통제 강화의 이면에는 “지휘관의 관리소홀, 통제 부실로 사고가 발생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여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병사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더 강화하는 조치를 불러온다는 분석이다. 최근 언론에는 군의 고급간부들이 회식 자리에서 여군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빈발함에 따라 ‘회식 감시조’를 운영하여 회식이 종료되면 그 내용을 상급기관이나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지휘관 옆에 여군이 앉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관리지침이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고예방 대책이 남발되는 것은 ‘지휘 소홀’이라는 외부의 질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처럼 보여 진다. 물샐틈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이 사고예방을 위한 지휘관의 임무라는 인식이 강화되자 병영혁신위원회에도 외부로부터 이상한 제안들이 들어왔다. 그 중 한 가지는 ‘병사관리에 사물인터넷 활용방안’이다. 이 방안은 병사들의 인식표(군번줄)에 전자 태그를 부착하여 병사들의 현 위치를 상황실에서 앉아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일종의 전자 감시체계라고 할 수 있다. 매 시간마다 분대원들의 현 위치를 사람이 일일이 파악하여 보고할 것 없이 아예 전자적으로 감시하면 편리하다는 게 이 방안이 제안된 이유이다. 그런가하면 병사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을 비롯하여 부대 주요 지점에 CCTV를 설치하자는 방안도 제출되었다. 주로 예비역 장교집단에서 제안 되는 이런 방안들은 그 발상의 해괴함 때문에 검토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는 장병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병영혁신의 본질과도 동떨어진 과도한 관리대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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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권은비 디펜스21+ 인턴기자

 

 인간관계망을 빈틈없이 감시

 

  그런가하면 더 높은 수준에서 병사 개개인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기법도 다수 선보였다. 기존에 병사들은 징병검사 단계, 보충대 대기 단계, 자대배체 단계에서 각각 인성검사를 실시한다. 지금 시행하는 인성검사도 80% 정도의 적중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28사단에서 윤 일병을 때려서 숨지게 한 이 병장의 경우 인성검사 결과를 보면 “분노조절이 안 되는 자원이니 반드시 지휘관의 관심을 필요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인성검사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 인성검사가 “문제가 있는 개인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 한다”는 지적이 고조되자 또 새로운 인성검사 도구가 개발되어 올해부터 병영에 적용될 예정이다.

  그런가하면 병사 생활기록부, 상담기록 유지에도 지휘관은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병영생활에서 집단 따돌림, 일명 왕따 놀이를 예방하기 위해 병사들 상호 간의 호감과 배제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상호관계 인식검사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지휘관은 누가 왕따인지, 이를 주도하는 리더가 누구인지를 식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학교나 병영에서의 왕따 놀이는 ‘비호감’으로 불리는 개인에게 조직의 모든 문제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가혹한 집단 처벌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되는 개인을 미리 식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원천적으로 부적격 자원의 군 입대를 차단하기 위해 징병검사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가 대폭 보강된다. 건강보험공단의 정신과 치료 기록까지 열람하여 정신이상자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이중삼중의 장치가 강화된다. 이런 징병검사 강화로 1년에 3000명 정도의 병역자원의 입대가 차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인간 불량품’ 걸러내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되는 개인에 대해서는 병영 상담관의 상담을 강화하고 그래도 문제가 되면 자살 예방자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일명 그린 캠프에 입소시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이런 활동을 종합해보면 어떻게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하고, 병사들 간의 모든 인간관계에 개입하여 문제점을 해소하는 총체적인 부대관리 활동이 강화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그러면 우리 군은 초급간부와 병사들을 못 믿는다는 것, 미성숙한 인격으로 본다는 것, 그래서 더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기울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구호 중 하나가 “부모가 믿고 보내는 군대”다. 이제껏 우리는 군에 입대한 진짜 사나이 병사들이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노래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군대 보낸 아이들이 못미더워 ‘부모가 안심하는’ 군대로 구호가 바뀌어졌다. 군대가 일종의 보육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최근 언론에는 훈련소에 입소한 아들이 걱정이 되어 부대 인근에서 하숙을 하는 부모들이 생겨났다는 걸 감안하면 군대가 부모가 한통속이 되어 병사들을 미성년의 피보호자로 인격 수준을 더 낮추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휘관들은 카톡이나 밴드, 휴대폰 메시지로 병사, 지휘관과 소통을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가족 같은 병영의 문화를 조성하는데 일정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결국 병사들의 인격은 더욱더 보호 받는 위치, 미성숙한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많은 관리와 통제, 보호대책이 중첩되다 보면 병사들의 자기결정권은 더욱더 침해되고 그 결과 병사의 인격은 더 침해되는 결과적 인권 유린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지친 야전에 책임 떠넘기기

 

  병사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관리대책의 범람은 병사들의 여가생활에 대한 지나친 간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올해 국방예산 심의 과정에서 병사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바둑을 장려한다며 4억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또한 국회 병영문화특위 정병국 위원장은 과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병영에 독서 장려운동을 최초로 실시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병영 내 독서 카페 설립, 독서 코칭 프로그램을 실시하도록 강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120여억원인 도서 구매 예산도 병영혁신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8억원이 추가 증액되었다. 이 외에도 재능기부 은행 설립을 통해 여가시간에 댄스 동아리, 영어 동아리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였다.

  예산이 투입되면 감사가 따라오게 되어 있고, 감사에서 지적받지 않으려면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장병들 여가시간도 지휘관에게는 또 하나의 관리업무가 추가되는 업무의 과중으로 연결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여가시간이라는 의미는 본래 병사들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의미이다. 실적을 만들기 위해 여가시간도 또 하나의 통제공간으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여가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장병의 인성을 함양시킨다는 명분으로 각종 관리대책이 추가되면 여가시간은 또 하나의 업무시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군 생활 중에 대학 학점 이수를 위한 원격 강의제도가 도입되면 이것도 군으로서는 관리 부담이 추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많은 관리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 운영, 규정이나 훈령 제정, 각종 시범행사, 시설 유지, 부대 평가요소 반영 등이 뒤따르게 된다. 지휘관으로서는 또 새로운 부담이 계속 추가되는 것이다.
  이런 혁신과제들이 아니더라도 전방 육군의 초급간부의 경우는 밤 10시 이전에 퇴근이 거의 불가능하고 휴일 출근, 심야시간 대 순찰 등 거의 모든 생활을 부대관리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선의 군인에게 이미 너무 과중한 일과 책임을 떠넘기기고 있는 상황에서 야전에 숨통을 터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조여붙이고 잔소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병영을 더 질식시키는 것은 아닌지를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작년부터 야전은 각종 군 사고로 인해 혁신 피로증, 개혁 피로증이 만연되어 있다는 불만의 소리도 터져 나온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야전에 또 무슨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방식으로는 병영문화의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온다. 이렇게 보면 병영혁신위원회가 각고의 노력 끝에 엄선한 혁신과제라고 하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야전으로부터 상당한 저항과 부적응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 시행과정 자체도 끊임없는 자체 진단과 효과를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성공적으로 병영문화에 접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관리대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병영문화의 혁신은 병사들이 하나의 인격으로서 제대로 존중받고 대접받는 것이다. 민법상으로도 이미 성년이 된 병사들이 먹고 자고 입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노는 것까지 전부 통제 대상이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병사들의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자기결정권이 박탈되고 남이 정해준 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더 불완전한 인격이 된다. 그 결과 자존감이 결여된 청년 병사들이 그 불안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 강력한 일탈을 꿈꾸거나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낸다면 이는 병영문화 혁신이 아니라 파산으로 연결된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자기계발을 하며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인간이라야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존감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국가와 조직, 부모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고 모든 영역에 간섭하여 규칙을 정해준다면 그 개인은 더욱더 불안한 인격이 된다.

  미군의 경우 이등병이라 하더라도 선탑자 없이 군용차를 몰고 출장을 다녀온다. 그러나 우리 병사들은 간부의 선탑 없이 개인이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간부의 감시 범위 밖에서 병사들의 어떤 업무도 수행할 수 없고 자기 인생에 대한 어떤 결정권도 없다. 이런 경향이 더욱더 강화되어 미군은 학력도 보잘 것 없는 병사가 높은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우리는 학력이 높은 병사가 아주 낮은 수준의 임무 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이제껏 군대는 병사들의 인격을 더 미성숙하고 불안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병영을 악화시켜 왔다. 그 감옥에서 자기 인생을 살고자 하는 병사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국가와 조직, 부모가 거대한 산성처럼 버티며 이를 막아온 것이 그간의 현실이 아니었을까?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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