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리스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

Joseph E. Stiglitz Headshot

그리스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

 
게시됨: 업데이트됨: 

5년 전 유로 위기가 시작됐을 때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리스를 비롯해 위기에 처한 여러 유럽 국가에 강요된 긴축 정책이 실패할 거라고 예측했다. 즉, 성장을 억누를 것이고 실업률을 악화시킬 것이며 더 나아가 GDP 대비 부채 비율을 낮추는 데도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유럽위원회(EU의 집행기관), 유럽 중앙은행(ECB), 또 몇 개 대학들은 '(성장을 촉진하는) 확장적 재정긴축(expansionary contractions)'을 주장했다. IMF 같은 기관조차도 정부 재정지출 삭감 같은 것들은 무슨 말로 표현해도 긴축정책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도 말이다.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실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긴축정책은 주식 시장 폭락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으로 이어지게 만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그 유명한 사례에서부터, 90년대 동아시아와 남미에 강요됐던 'IMF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문제가 생기자 또다시 긴축정책이 시도됐다.

greece

그리스는 유럽 연합 집행 기관, 유럽 중앙은행, IMF로 형성된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사항을 상당 수준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정부의 재적 적자를 흑자로 바꿨다. 그러나 그에 따른 정부 지출 감소는 예고했던 것처럼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실업률이 25%로 치솟았고, 2009년 이후 GDP가 22%나 감소했으며, GDP 대비 부채 비율도 35% 증가했다. 긴축 반대를 외친 시리자가 최근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건 '이제 겪을 만큼 겪었다'는 그리스 유권자들의 선언과도 같다.

그렇다면 이제 뭘 해야 하는가? 우선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만약 트로이카의 치료제가 투여된 국가 중 비참한 실패를 맞본 게 그리스뿐이라면 그리스를 탓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기 전에 흑자였고 부채 비율도 낮았던 스페인은 오히려 지금 불황을 겪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건 그리스나 스페인 내부의 구조 개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럽 통화동맹의 크나큰 실패를 자초한 유로존(eurozone)의 기획에 대한 구조적 개혁과 정책 체계에 대한 근본적 재고다.

또 그리스는 전 세계적인 채무 구조조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상기시켜주는 사례다. 과도한 채무는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1990년대 동아시아 외환위기, 또 1980년대 중남미 위기를 야기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집을 잃은 수백만명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으며, 스위스프랑 채무를 안고 있는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수백만 인구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과도한 부채로 인한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각해볼 때, 누군가는 왜 개인과 국가가 스스로 그런 상황으로 자신들을 몰아넣고 있는 건지 의아해할 수 있다. 결국 그런 부채도 일종의 계약, 자발적인 계약이다. 채무자만큼이나 채권자에게도 그만한 책임이 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채권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채권자는 일반적으로 전문성이 높은 기관인 반면 채무자는 시장 변화와 자신들이 맺고 있는 계약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미국 은행들이 그런 채무자의 무지를 악용해 자기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선진)국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부여될 때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채무자를 감옥에 가뒀던 19세기의 제도는 실패했다. 비윤리적인 것은 물론, 돈을 갚도록 하는 데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효과적인 방법은 따로 있었다. 채권자들이 (돈을 빌려주기로 한) 자신들의 결정에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건전한 대출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한 것이다.

greece election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부여하는 체계적인 절차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전부터 유엔은 이미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런 정책 틀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단호하게 반대해왔다. 채무국 관리들을 위한 '채무자 감옥'을 다시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관타나모에 자리가 조만간에 빌 것 같다).

'채무자 감옥'이라는 표현이 터무니없는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요즘 자주 언급되는 도덕적 해이니 도덕적 책임이니 하는 말에 비추어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즉, 만약 그리스에게 채무 재조정을 허락하면 그리스는 또다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고,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 말이다.

그건 완벽한 헛소리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어느 국가가 오로지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지 않으려고 그리스가 겪은 그런 사태를 일부러 자초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도덕적 해이 같은 게 존재한다면, 그건 채권자들의 몫이다. 특히 매번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은행들을 생각해보라. 만약 유럽에도 기업(은행)의 과실로 생긴 민간부채가 (정부 구제금융에 따른) 공공부채로 탈바꿈하도록 허용됐다면 - 이건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 그리스가 아니라 유럽이 그 책임을 져야 했을 거다. 사실 엄청난 부채율 증가를 포함해 지금 그리스가 겪고 있는 문제들 중 대부분은 트로이카가 강요한 엉뚱한 프로그램이 실패한 결과에 훨씬 더 가깝다.

따라서 채무 재조정 요구가 '부도덕'한 게 아니라 채무 재조정이 없다는 게 부도덕한 일이다. 그리스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른 여러 국가도 비슷한 상황에 닥쳤었다. 다만 그리스의 문제를 다루기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유로존의 구조다. 통화 동맹의 일부로 묶여 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회원국들은 화폐 평가 절하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없으며, 사태 해결에 필요한 정책적 유연성을 위한 최소한의 결속도 유럽 국가들이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greece

70년 전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국들은 독일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에 더 많은 부채를 안긴 결과 실업률(인플레이션이 아니라)이 치솟았고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연합국은 독일의 무책임한 부채 증가나 독일이 다른 국가에 얼마나 큰 손실을 입힐 것인지는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의 모든 부채를 탕감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에 주둔한 연합국들은 재정 부양책을 제공하며 독일 경제의 회생을 도왔다.

기업이 파산할 경우, 출자전환(debt-equity swap)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이용된다. 이와 비슷한 방법을 그리스에 적용한다면, 기존의 채권을 GDP와 연결된 채권(GDP-linked bonds)으로 바꾸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 (경제)가 잘 되면 채권자들도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채권자들도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양쪽 다 성장 회복 정책을 시행할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 선거가 이번 그리스에서처럼 확실한 민중의 목소리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변화를 추구하는 그리스의 목소리를 유럽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적어도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자세를 고수하려면, 2차 세계 대전 바로 전에 뉴펀들랜드가 파산하면서 아예 민주주의를 폐쇄하는 것처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부채와 긴축정책의 경제학을 이해하면서 또 민주주의와 인도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What Is the Real Greek Morality Tale?' (영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은 Project Syndicate에도 실렸습니다.

 

 
Close
Greece Prepares For Key Vote
1 / 11 
 
ASSOCIATED PRESS
  •  
  •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