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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때 벗겨낸 제2기 민주주의 건설해야

등록 : 2015.02.2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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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시민들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민주헌법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의 요구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이들이 원했던 진정한 민주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정치혐오증’ 만연하고 제3세력 등장하지 못해

‘반독재’에 입각한 대립으로 존재감 찾는 야당,
87년 체제의 실패 극명하게 드러내

‘권위주의’ 때 벗겨낸 제2기 민주주의 건설해야

[한겨레21]

 

 

지난 2월8일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문재인 의원이 선출됐다. 문 의원은 첫 일성으로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2년 동안 인사 참사, 복지 공약 후퇴, 측근의 국정 개입 의혹 등을 일으키며 지지율 최저 상황을 맞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표면적인 모습만 놓고 보면 2012년 대선 당시에 벌어졌던 선명한 여야 대결 구도가 다시 돌아온 듯하다. 그러나 지금 새정치연합 앞에 놓인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전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 해산이 결정된 뒤 진보세력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대안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지지율 급락 등 박근혜 정부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들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 채 무당층으로 돌아서는 상황이다. 2015년은 진보세력에게는 물론 여야 두 거대 다수당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다.

 

<한겨레21>은 여야를 포함해 한국의 정치체제가 이처럼 위기를 맞고 있는 원인을 ‘권위주의’에서 찾았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정당 간 자율 경쟁이 본격화되는 등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사회’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제도만 바뀌었을 뿐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권위주의는 제대로 청산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정당체계는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보수적 양당체계’가 더욱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정당체계 안에서 우리나라 정당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받아안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난 28년간 누적돼온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해봤다. _편집자

 

 

1987년 6월 항쟁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 타도’를 외쳤던 사람들은 민주화가 이뤄지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독재를 청산하고 대통령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사회는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꿈은 민주화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취업준비생 등 서민들의 고통은 날로 심해지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당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자율적인 정당 경쟁이 시작된 뒤에도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성장하지 못한 진보세력의 실패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고통받는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받아안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등 대한민국 정당 전체의 실패다.

 

사실상 보수만 있는 정치적 대표 체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정의하는 것은 1980년대 거대한 사회운동을 통해 이루어진 한국의 민주화가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계기들은 점차 약해진 반면 변화를 거부하는 힘들은 보다 조직화되고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997년 처음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 교수는 또한 한국의 정치체계를 ‘보수적 양당체계’로 규정했다. 그는 같은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 체제, 사실상 보수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 체제에 있다고 본다. 내용적으로 보수 편향의 정치 구조는 민주화 이후에 변화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 정당체계 안에서 민주노동당 출범이나 안철수 신당 등 제3당을 만들려는 세력들의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거나 군소 세력으로 남았다. 그 결과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이라는 ‘보수 양당체계’가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당체계가 1987년 이전의 ‘보수 양당체계’(한국민주당·민주정의당)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의 이념 성향은 보수가 아니라 중도 혹은 진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의원들의 이념 성향을 조사해보면 새정치연합에선 자신을 진보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당 밖으로 표출될 때는 대북관계라는 분야 외에 사회·경제적으로는 보수인 새누리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가 대다수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경험 자료를 통해 일치되는 견해는 ‘(두 당 사이에) 이념적 차이는 있는데 그게 대북정책, 남북정책이라는 분야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사회·경제 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받아들인 부분이나,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성장에 집착하면서 양극화를 심화한 것도 이들의 보수성을 설명해준다. 현재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증세’ 논란만 봐도 누가 새정치연합이고 누가 새누리당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막연한 정서, 반정치주의, 제한된 다원주의…

 

지난해 7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유가족 참여 등을 요구하며 침묵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여야 두 정당은 유가족 등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무능함을 보였다. 김경호 선임기자 ae@hani.co.kr

 

새정치연합이나 새누리당의 이념적 특성이 보수든 중도든 ‘권위주의’라는 측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두 당 사이의 이념 성향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스페인 정치학자 후안 린스는 권위주의의 특징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분명한 이데올로기 없이 막연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사고방식(Mentality)에 의존하는 것이고, 둘째는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반정치주의를 동원하는 것이고, 셋째는 야당을 집권의 범위 밖으로 두는 ‘제한된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정당체계는 서로 이념적으로 구별되지 않고 당 스스로도 정체성이 모호한 두 개의 당이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의 첫 번째 특징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유권자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정치혐오증’과 제3세력이 정치권에 등장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또한 우리나라가 아직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권위주의적 구도는 어떻게 해서 굳어지게 됐을까. 다양한 이념 차이 속에서 경쟁하고 협의하는 ‘다원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심지 못하고 오히려 권위주의로의 역행을 불러오게 된 데는 무엇보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새정치연합이 제1야당으로서 보여온 행태는 여전히 30년 전의 독재 대 반독재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로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데만 집중해온 것처럼 보인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담론에서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반독재 민주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됐으면 상대방을 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경쟁자로 봐야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독재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게 새정치연합의 모습이다”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이 이렇게 독재 대 반독재 구도에 매달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누리당과의 이념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념적으로 차이를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더 심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의 이념 간극이 적음에도 양극화 정치는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누가 집권세력과 대통령을 더 세게 공격하느냐 하는 ‘외부화 경쟁’이 ‘양극화 정치’를 부추겨왔다. 다수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도록 대안 정부로서 조직적 준비를 하기보다는 누구든 상대를 공격하려는 열정만 지배하는 게 지금의 새정치연합의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이 최근 새로운 지도부를 꾸리면서 ‘선명 야당’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이런 점에서 오히려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선명 야당’이라는 구호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은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나쁘다’는 구호를 자신들의 무능력함에 대한 핑계로 삼아왔다. 새정치연합이 최근의 연말정산 논란이나 지난해 세월호 사태 등에서 내놓은 대안이 하나도 없지 않나. 이명박 정부 이후 야당이 이슈를 선점한 적은 없고 ‘4대강’ 등 정부 비판만 해왔다. 이것은 일종의 권위주의의 유산이면서 새정치연합을 허약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상대방을 적이 아닌 협의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대안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대립각을 세울 때라야 ‘다원성’을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성숙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폐쇄적으로만 발달해온 한국의 정당‘체계’

 

새정치연합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잘못된 방향의 정당 조직 개혁이다. 새정치연합은 2000년대 초반에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집단지도 체제, 완전국민경선제도, 의원 자율성 강화 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당 개혁에 나선 바 있다. 이 방식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논쟁이 있지만 최장집 교수, 박상훈 대표, 박찬표 교수 등은 이러한 당 개혁이 당의 리더십을 약화하고 당의 조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박상훈 대표는 “정당체계(한 사회에 나타나는 정당들의 분포)는 사회의 다원적 갈등 구조에 맞게 ‘폭넓은 구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당체계와 달리 ‘정당조직’은 ‘유기적으로 구조화’돼야 한다. 한마디로 단단하게 조직돼야 한다는 말이다.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정당체계’와 동시에 ‘응집적이고 강한 정당조직’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는 정당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한국 정치에서 정당체계는 더욱더 폐쇄성이 심화된 반면, 정당조직의 개방성은 정당 자체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아무렇게나 실험되었다. ‘체계’에 맞는 개혁의 원리(개방적이어야 한다)와 ‘조직’에 맞는 개혁의 원리(응집적이어야 한다)가 서로 거꾸로 적용된 탓이다”라고 지적했다.

 

박찬표 교수도 ‘민주 개혁파의 정당 개혁론 비판’(<논재으로서의 민주주의>)이라는 글에서 과거 열린우리당의 개혁 실험은 당 조직을 해체시키고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개혁파는 (국민경선제도 등을 통해) 당원 및 지지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당의 기반을 강화하고자 했지만, 제도화의 수준이 취약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대안을 급속히 추구한 결과 당 자체의 정체성을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혁파는 권력 분산을 민주화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당정 분리, 집단지도 체제, 투톱 체제, 원내 정당화, 의원 자율성 강화 등을 추구했는데 이는 결국 정당 리더십 해체로 인해 당의 정체성과 응집성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도 “국민경선은 편법이다. 물론 국민의 의견을 받아안는다는 개방성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선결돼야 하는 과정이 당원에 기초한 정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걸 아예 제쳐버리고 인기 있는 사람이나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게 되면 당내 분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지역 기반에 의존하는 새누리당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채진원 교수는 ‘완전국민경선제도’가 정당을 약화한다는 주장에 대해 “현실은 국민 참여와 개방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고 자꾸 진성당원 중심으로 가자고 하면 안 된다. 진성당원이 생기면 좋겠지만 생기지 않는 현재의 조건에서 이를 계속 추진하면 특정 지역이 과두 대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네트워크 정당 모델과 오픈프라이머리는 (당원이 중심이 되는) 대중정당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의미다. 당원 공급이 안 되니 바깥에 있는 집단지성의 참여를 빨아들여서 정당의 정체성을 더 강화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당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후 새정치연합은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심각한 리더십의 부재를 겪으면서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훈 대표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정당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해 ‘여론이 지배하는 정치’였다. 여론조사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면서 시민을 구성하는 계층과 집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고 무정형의 ‘국민 여론’만 부각됐다”고 진단했다. 정당의 역할이 국민을 대표할 사람을 공천하고 선거를 통해 이에 책임을 지는 것인데, 공천을 일반에 맡겨버리면서 정당의 역할 자체가 사라지고 책임 또한 없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권위주의 청산’을 기치로 내건 개혁의 방향이 거꾸로 한국 정당체계의 민주주의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새누리, 위기를 다룰 줄 아는구나”

 

2010년 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단독 예산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의장석을 차지하고 있던 야당 의원이 단상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끌려 내려오고 있다. 과거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은 시민들에게 ‘정치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그렇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것에 새누리당의 책임은 없을까. 새누리당은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집권을 놓지 않았던 세력이다. 이들은 권위주의 시대부터 집권여당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누려왔던 ‘힘’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정치뿐 아니라 사법부와 행정부 등 온 사회의 구석구석에 뻗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나 지난해 ‘정윤회 문건 의혹’에서 드러난 정치 검찰의 행태, 헌법재판소의 유례없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의 사건은 집권여당이 가진 권력 자원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밖에도 박근혜 정부 이후 2배로 늘어난 불심검문 등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권위주의의 유산도 여전히 건재하다. 김경미 팀장은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써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권위적인 정부의 힘에 의해 검찰·국회·관료·재벌·언론까지 단단히 뭉쳐 (국가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자체의 행태로 놓고 봤을 때도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청와대에 종속적인 ‘위성 정당’의 역할만을 해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에 휘둘려 제대로 된 책임정치를 하지 못해왔다는 점과, 지역 기반 외에 자율적으로 새누리당의 당원임을 밝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당의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최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당선은 그동안 당이 청와대의 ‘오더 정치’에 이끌리는 등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새누리당이 이런 권위주의를 극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최근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역시 새누리당은 위기를 다룰 줄 아는 정당이다. …총선을 1년여 앞둔 2015년 2월 예기치 않게 엄습한 위기, 새누리당은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유승민 카드를 선택했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 때의 위기 돌파와 같은 해법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위기 앞에 남 탓 공방에 당내 갈등만 키워 결국 무너졌던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선 엄두도 내기 어려운 터닝이고 기율이다. 선당후사를 외치는 건 새정치민주연합인데, 실제 그 정신이 작동하는 건 새누리당”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새누리당도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진정한 보수주의로 가는 길을 걸어야 할 시점에 놓였다.

 

한국에서 공고하게 자리잡은 두 개의 정당은 이렇듯 여전히 권위주의의 유산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극복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지금이 미완의 ‘87년 체제’를 청산하고 ‘권위주의’의 때를 완전히 벗겨낸 제2기의 민주주의를 건설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정치체제의 제2기가 건설돼야 할 시점이다. 2기 체제는 어느 한 주체가 독자적으로 만들기보다 상호작용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당체계 차원에서) 일종의 빅뱅 같은 것이 올 수도 있고 (정당) 내부가 전반적으로 교체될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 저 틀대로 좀더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체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진보는 망가졌는데 새정치연합만 살아난다거나, 새누리당만 살고 새정치연합과 진보는 무너진다든지, 이런 방식보다는 당분간은 각자도생하면서도 서로 맞물리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합의점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정당체계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폐쇄적인 한국의 정치체계를 단번에 뒤엎어줄 정치 기획자나 정치적 리더를 찾아내는 일도 요원해 보인다.

 

‘정당의 복원’, 정공법이 해답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정공법이 해답일 수 있다. 바로 ‘정당의 복원’이다. 박상훈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비판적 무당파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 제대로 된 정당이지 정당이 아닌 정치, 나아가 정치가 아닌 다른 수단이나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야당 내 정당 개혁론은 공천권을 행사할 당권과 차기 대선에 나설 대권 후보 선출 문제를 둘러싼 제도 논쟁으로 일관해왔다. 왜 정당 개혁론을 말하는 누구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열정적 팀으로서 강한 정당을 만드는 문제, 집권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야당을 만드는 문제, 유능한 미래 정부가 되기 위해 예비 내각을 갖춘 대안 정당을 만드는 문제, 일상의 시민 삶을 보호하는 생활 지킴이 정당을 만드는 문제, 함께 교육하고 함께 정책을 만드는 당원과 적극적 지지자들의 자랑스러운 정당 만들기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할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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