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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세요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세요

 
혜민 스님 2012. 12. 23
조회수 1049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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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테라피 그림 <한겨레> 자료

 

 

“스님, 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지금 내려놓지 못해서 너무도 힘이 들어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과거의 상처를 내려놓지 못해서, 이룰 수 없는 내 안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해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내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잊고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짐할수록 더 생각이 나서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었던 일에 문턱까지 다다랐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좌절했을 때, 그걸 내려놓고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의 욕망과 기억에 끄달리게 되는 것이다.

 

삶이 가져다주는 실망, 좌절은 누구나 경험한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다 잊어,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다 내려놓아”라고 조언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게다가 잊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잊고 싶은 사람, 잊고 싶은 일들은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이상하게 점점 더 생각이 나고, 실패했던 일들이 더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내려놓고 비우기는커녕 괴로운 그 과거를 마음속에 담아놓은 채 ‘그리워하고’ 있는 셈이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어떻게 해야 정말 내려놓고 좀 편안해질 수 있을까?

 

“내려놓는다”는 말은 사실 “받아들인다”의 다른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없애고 지운다는 말이 아니고, 그 기억에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실제로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그 과거의 일이 아니고, 그 과거의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저항감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내려놓기 위해 예전의 아픈 기억들을 무작정 없애려고, 참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고 더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이 있다. 바로, 과거의 기억 때문에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즉, 힘들어하는 지금의 나를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게 되면, 허락하는 즉시 마음의 상태가 미묘하지만 곧 바뀌게 된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힘들어하는 나 자신, 내 마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루빨리 벗어나려고 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버거워했는데, 허락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힘들어하는 마음이 계속 진행되지 않고 멈추게 된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나를 좀더 자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나면, 힘든 상태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진정한 내가 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내 마음이 지금 힘들어하는구나. 힘들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마음아, 그동안 많이 아팠지?’ 하고 말이다.

 

여기까지 오면 힘들었던 기억에 저항했던 마음이 쉬게 되면서 좀 편안해진다. 힘든 것을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허락하고 인정하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좀 힘들어도 괜찮아, 좀 아파도 괜찮아.’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내 안의 상처를 거부하지 말고 자애의 눈길로 보듬어주길 바란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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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조계종 승려이자 미국 메사추세츠주 햄프셔대 종교학과 교수.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방향을 바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받고 출가했으며,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를 받았다. 종교계 최고 트위터리언이자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메일 : monkhaemin@naver.com 트위터 : @haeminsun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onkha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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