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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밥 걱정 없어야 공부도 하죠”

등록 : 2015.03.29 20:03수정 : 2015.03.2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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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고등학교 식당 입구에서 학생들이 바코드 단말기에 급식카드를 대며 출입을 확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밥값 지원 받는 친구 왜 몰라요? 돈 안 내면 다 티나요”
무상급식 끊어도 굶는 아이 없다? 밥도 ‘의무교육’이다

지난 20일 낮 12시50분 경기도 화성시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 점심급식이 시작되는 1시까지는 아직 10분이 남았는데, 급식줄은 벌써 건물 밖까지 늘어져 있었다. 급식도 위아래가 있어서 3학년, 2학년, 1학년 순서로 먹지만, 3학년 배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1~2학년 줄이 몇미터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급식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 학교의 ‘유상급식’ 풍경은 아직 의무교육도, 무상급식도 도입되지 않은 일반적인 한국 고등학교의 점심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삑’ ‘삑’ ‘삑’ 학생들이 급식실 입구 바코드 단말기에 급식카드를 대면, 대형마트 계산대처럼 ‘계산’이 정상적으로 이뤄졌음을 알리는 확인음이 들린다. 급식이 시작된 지 5분쯤 지났을 무렵, 단조롭게 반복되던 바코드 단말기 소리가 갑자기 ‘빵빵 빠빠방~’ 요란해졌다. 한 여학생이 급식카드를 대자 컴퓨터 모니터에 초록색으로 ‘이미 배식함’이라는 글자가 떴다. 바코드 단말기는 대형마트 검색대에서 계산하지 않은 물건이 적발됐을 때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내 거(카드가) 이상해.” 이 학생은 과장된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관리자한테 카드 오류를 문의하지 않고 황급히 급식줄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곤 배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급식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안해서 우는 대신 오히려 크게 웃어 젖히며 뛰쳐나간 터라 친구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이 고봉밥을 먹을 동안 텅 비어 있을 이 학생의 뱃속까지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교육 하려면 교육환경 필요한데 
교육 따로 급식 따로 넌센스” 
교육비 지원 사각지대 꼭 있어

 

급식실 모니터는 급식카드를 다섯 종류로 구분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급식비가 결제된 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맛있게 식사하세요’(파랑)라는 글자와 함께 ‘삑’ 하고 단음이 울린다. 카드에서 ‘결제 이상’이 발견되면 ‘이미 배식함’(초록) ‘신상기록 없음’(빨강)과 ‘급식신청 안함’ ‘관리자에게 문의’ 중 한 가지 문장이 뜨면서 ‘빵빵 빠빠방~’ 굉음이 울린다. 이 학교에서 실제 급식 현황을 가장 잘 아는 급식당번 한아무개양이 말했다. “급식비를 못 내서 친구한테 빌린 카드를 대는 애들이 하루에 한두 명씩은 있어요. 배고프니까 친구 카드라도 빌려서 급식을 먹어 보려다가, 친구가 이미 한번 먹은 카드라 걸리는 거예요. 짠하기는 한데, 돌려보낼 수밖에 없어요.” 이른바 선별적 복지가 선별해내지 못한 ‘복지 사각지대’의 그늘이었다.

 

이 학교 누리집에 게시된 전체 학생 수는 529명인데 모니터에 기록된 급식 신청자는 499명이다. 1학년 204명 중 203명, 2학년 151명 중 141명, 3학년 174명 중 155명이 급식을 신청했다. 나머지 30명이 왜 급식을 신청하지 않았는지는 선생님들도 정확히 모른다. 학생들은 주로 “급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2학년 부장인 김동현 교사는 “교육비 지원 대상자는 아닌데 급식비를 낼 형편이 안 돼 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이 있다. 재작년에 담임을 할 때, 점심시간에 배회하는 아이를 붙잡고 물어보니 그제야 급식비가 없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 학교는 논과 바다가 가까이 있는 농어촌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조손가정 아이들이 꽤 많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아이들한테 끼니당 3700원, 한달에 약 8만원 정도인 급식비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려면 끼니당 4000원짜리 석식까지 먹어야 한다. 석식비가 부담돼 ‘야자’를 신청하지 않는 아이들도 제법 된다.

 

정부는 가구의 소득·재산이 최저생계비 120~150% 이내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비와 방과후 수강권 등 교육비를 지원한다. 물론 급식비도 대준다. 하지만 이 학교 박천익 행정실장은 교육비 지원의 ‘사각지대’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박 실장은 “교육비 지원 대상이 아닌 학생 중에서 갑자기 부모가 부도를 맞거나, 아버지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특히 많다. 학기 초 교육비 신청 기간 이후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지원도 못 받고, 돈이 없으니 급식비도 못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지웅 교사는 지난해 1학년 담임을 하면서 급식비로 곤란을 겪는 학생을 맡았다. 교육비 지원 신청 기간이 끝난 이후 아버지가 몸져눕게 되면서 갑자기 곤궁해진 여학생이었다. 부모님이 급식비를 안 낸 걸 모르고 있던 학생은 급식실에서 바코드 경고음이 울리자 크게 당황했고, 이후 한동안 점심을 걸렀다. 김지웅 교사는 “어머님이 학교로 전화하셔서 아이가 창피해하니 친구들한테는 급식비 못 낸 걸 숨겨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한창 친구들 시선을 많이 신경쓰는 사춘기다. 김 교사의 제자 중에는 심지어 부모님이 안 계신데 담임한테까지 양친이 다 계신다고 둘러댄 아이도 있었다. 김 교사는 “애들이 교사한테 경제적으로 곤란하다는 얘기를 잘 안 하고, 돈 없어서 급식 못 먹는다는 얘기는 더 안 한다”고 말했다.

 

급식비 독촉 교사도 ‘고통’ 
“애들, 밥 걱정 없어야 공부도 하죠” 
“아이가 급식비 못낸 것 창피해해 
부모가 알리지말아달라 전화도” 

정부선 인터넷 등으로 신청하면 
노출 없이 지원 가능하다지만 
돈내는 학생들은 따로 신청서 내 
무상급식 받는 학생들 금방 노출

 

일단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급식을 먹은 다음 일년 내내 급식비를 밀리는 아이들도 해마다 꼭 있다. 김지웅 교사는 “행정실에서 급식비 미수납 명단이 내려오면 학부모님한테 전화를 한다. 교육하는 사람이 학부모한테 돈 달라고 전화하는 것도 민망하고,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전화하기도 죄송하다. 몇번 하다가 나중엔 그냥 문자로 남긴다”고 말했다. 학부모한테 독촉을 하다 하다 안 되면 결국 연말에 ‘급식비 털어주기’를 하게 된다. 식대 소멸시효인 1년이 지난 뒤 불납결손 처리를 하는 방식이다. 박 행정실장은 “학부모님한테 전화하면 다들 죄송하다고 한다. 돈이 있는데 안 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불납결손 처리로 발생한 손해는 학교가 떠안게 되는데 작은 학교들한테는 이것도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쌍계초등학교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27일 하동군 지리산 관리소 하동분소 주차장에서 경남도의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전교생 37명 중 36명이 등교를 거부했다. 하동/연합뉴스
해마다 유상급식으로 인한 크고 작은 난처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교사들은 초등·중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도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지웅 교사는 “교육을 하려면 교육환경이 필요하다. 일단 의식주가 해결돼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교육 따로 급식 따로라는 건 난센스고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 기본급식이 맞다”며 답답함을 쏟아냈다.

 

정부와 여당은 시·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초·중 무상급식까지 중단하면 그 돈으로 영유아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는 태도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급식비를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고, 정부의 노력으로 이른바 ‘공짜밥 낙인감’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학생이 학교에다 직접 교육비 지원을 신청하는 대신, 학부모가 인터넷 누리집이나 주소지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신청하면 다른 아이들한테 저소득층 학생들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지원이 가능하단 얘기다.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물샐틈없는 행정’은 아직 요원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틈’을 요령껏 잘도 찾아낸다. 한양은 말했다. “누가 급식비를 지원받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한테 매달 급식 신청서를 내는데, 그 친구는 (정부에서 알아서 지원해주니까) 따로 신청서를 안 내고 계속 급식을 먹어요. 왜 신청 안 하느냐고 물어보면 급식비 지원받는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뭐 안 물어봐도 다 아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고요.”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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