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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의 생명사상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12) - 세월호 추모작
심규섭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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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5  1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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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그림은 생명사상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그림에는 온통 생명찬양, 생명존엄, 생명확산, 생명영원, 생명환희 일색이다.
장수, 풍요, 다산, 출세, 조화, 화목, 벽사 따위는 모두 생명활동의 사회적 가치이자 현실적 요구이다. 오래 사는 일은 생명의 연장이고 물질적 풍요는 생명을 안정시킨다. 또한 다산은 생명의 확장이며, 출세는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벽사는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며, 화목은 생명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생명을 담고 있는 우리그림에는 부정적인 요소는 없다. 생명은 자기 긍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선과 악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다.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일체의 행위는 선이다.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는 악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생명의 가치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환경이나 자멸적 행위들이 난무한다. 
죽임, 약탈, 파괴, 폭력, 살육, 겁탈, 기만, 사기 따위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의 가치를 빼앗는 행위이다. 다른 생명의 가치를 빼앗아 자신의 생명을 채우면 공멸한다는 것은 자연의 진리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는다. 죽임과 약탈과 폭력 따위에 당해 생명력은 훼손되고 낡아지며 약해진다. 이러한 훼손된 생명력을 정화하고 복원하는 것을 ‘신명’이라고 한다. 
훼손된 생명력을 정화하고 복원하는 방법은 더욱 강력한 생명의 힘을 투여하는 것이다. 생명의 힘으로 생명을 치유할 수 있다. 
하나의 생명이 약해지면 여럿의 생명력을 나누어준다. 사회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적극적인 활동의 산물이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이라는 어린 목숨을 앗아간 커다란 사고이다.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생명의 확산에 반대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나고 예비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이럴 때는 공동체의 힘으로 훼손된 생명의 가치를 정화하고 복원해야 한다.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실천들은 더 많은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생명에 관한 문제는 여야가 따로 없고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진보나 보수, 야당과 여당의 정치적 입장은 모두 생명의 하위개념일 뿐이다.

예술은 원래 당대의 지배철학을 적극 반영한다. 이것은 동서양의 모든 예술이 그러하다. 유럽에는 인본주의 사상을 담은 예술이, 이슬람문화권의 나라에는 금욕과 절제를 담은 예술이, 아프리카에는 원초적 생명력을 담은 주술적 예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그림도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중심이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불교미술이 꽃을 피웠다. 유학을 지배사상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유학적 가치를 담은 미술이 주류를 형성한다. 조선 유학의 핵심적 가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부터 궁중화원의 [십장생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당대의 우리그림도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을 압도하는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패권주의 따위는 생명사상과 반대된다. 설령 이런 사상이 현실을 주도한다고 해도 반영할 수가 없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생명사상보다 높은 가치는 없다. 위의 사상들이 아무리 유행한다고 해도 결국은 생명사상의 하위개념일 뿐이다.
상위 개념은 하위 개념과 싸우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뿐이다.
죽임, 폭력, 약탈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그림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큰 생명의 힘으로 훼손된 생명을 정화하고 복원하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모두 우리 화법으로 그렸다. 우리 화법이란 우리그림의 미학인 생명미학과 확대원근법이란 조형원리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또한 전통적인 표현방법을 차용하거나 변주했고 진채법을 사용했다.

 

   
▲ 약리도(躍鯉圖)/심규섭/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이 작품의 제목은 약리도(躍鯉圖)이다. 뛰어오르는 잉어그림이라는 뜻이다. 약리도는 원래 중국의 등용문이란 그림에서 변주된 것이다. 등용문은 전형적인 출세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힘차게 약동하는 물고기 그림으로 바뀐다. 등용문을 뜻하는 건물이나 여의주, 주변의 바위도 모두 사라진다. 대신 거친 파도와 아침 해가 더해진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들도 이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약리도를 통해 출세의 욕망을 담고 염치를 위해 그 욕망을 숨겼을 것이다. 
하지만 도약하는 물고기가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거친 파도는 주변을 어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에 생명의 영원성을 뜻하는 아침 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상징들 결합하여 거친 파도를 이기며 도약하는 물고기를 표현한 것이다. 물고기를 황금색으로 표현한 것은 허영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드러낸 것이다.

 

 

   
▲ 추모 화원도/박수정/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이 그림은 화원도를 중심 소재로 세월호 사건을 결합한 것이다. 화원도는 생명의 풍요를 뜻하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에 국화와 복숭아를 넣었다. 일반적으로 국화는 추모함을 상징하고 복숭아는 이상세계를 뜻한다. 또한 바다 위의 괴석은 침몰한 세월호의 일부라고 해석해도 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대략적으로 보면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숱한 생명들을 추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 나비 잠/박선정/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이 작품은 독특한 원형구도로 되어 있다. 원형은 완전성과 더불어 영원성을 드러낸다. 이 그림에서는 세상 전부이면서 동시에 자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바다 속에 웅크려 자고 있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태아를 보는 듯하다. 그림의 중앙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는데 나비는 애벌레에서 하늘을 나는 탈바꿈을 하기 때문에 환생의 의미가 있다.
죽은 아이들은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다. 생명은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확충한다. [나비 잠]이란 제목이 이런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 희망으로 다시 태어나기/김신애/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이 그림은 오봉도와 장생도의 요소를 결합한 그림이다. 얼핏 세월호 참사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나비를 넣어서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오봉도와 복숭아는 이상세계를 뜻한다. 또한 노란색의 나비는 마치 노란리본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탈바꿈, 어린 아이, 희망 따위를 복합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힘으로 죽은 아이들을 추모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 연꽃과 나비/심주이/디지털회화/2015. [자료사진 - 심규섭]

이 그림은 신선도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것이다. 
전통한복을 입고 구름 위에 서 있는 젊은 남녀는 모두 신선이다. 붉은 치마를 입은 여선은 풍요를 상징하는 복숭아를 들고 있다. 파란색 옷의 남자신선은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이다.
피리를 부는 것은 죽은 자를 달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선은 서양의 절대성을 가진 신이 아니다. 또한 숭배의 대상도 아니다. 조선시대의 신선은 선비의 또 다른 이름이고, 백성들의 삶을 도와주는 일종의 모범적 인간의 상징이다. 이 시대의 신선은 곧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의 상징이다. 
그림은 전반적으로 밝고 화사하다.
작품의 제목이 연꽃과 나비이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의 내용을 넣기 위해 여선의 옷에는 연꽃을 남선의 옷에는 나비를 그려 넣었다. 모두 환생, 탈바꿈, 새로운 생명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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