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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는다고 예수 되나... 큰 범죄 저지르고 있다

 

[주장] 국정화 행정예고 오늘까지... 검정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드리는 글

15.11.02 21:27l최종 업데이트 15.11.02 21:27l

 

 

박근혜 정부는 3일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 고시'를 단행합니다. 2일 자정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의견을 분석하는 절차도 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성균관대 사학과 석사과정 수료생인 박지빈씨가 국정화 중단을 호소하는 글을 보내와, 이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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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통일을 주제로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 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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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럽게 한국사회에 던져진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것이 지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저명하신 많은 분들이 무엇이, 어떻게, 그리고 왜 잘못되었는지 충분히 잘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제가 어쭙잖게 이러저러한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자리를 빌려서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검정 세대' 속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노력하면 기회가 있을 거라 믿었고,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20대 초반까지는요. 기성세대가 일궈놓은 '민주화'와 '자유'라는 기반 위에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러한 희망을 제가 추구할 수 있다는 것에,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면, 상호 간에 점철된 혐오구조와 작은 이익 추구 과정마다 덧씌우는 집단 간 갈등 프레임, 이분법적 사고, 그리고 어느샌가 낙관이 사라진 현실이 있습니다. 정부나 기성세대는 과거의 영광만을 이야기하고, 현재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모든 기준을 세워놓고 꽉 부여잡은 채로, 다른 세대를 재단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 때문에 나라 탓? 조선 시대에도 나라님 탓했는데...

역사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나라 탓을 한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역사교과서가 제대로 보급되지도 않았던 조선 시대에도 나라에 가뭄이 들면 나라님을 탓하곤 했지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종북'에 물들게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실제 교과서에 주체사상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몰라도 나치즘에 대해 배운다고 나치스가 되는 건 아닙니다. 논어를 읽는다고 해서 공자가 되는 게 아니며,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예수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이면에 권력투쟁과정이 있다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데도 그것을 가리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포장합니다. 전형적인 이분법 프레임이죠. '국정화를 주장하는 내가 옳고, 너희들은 잘못되었다', '나는 애국 보수, 너희는 종북'. 이런 프레임들로 인해 국정화를 반대하는 순간부터 저는 국민이 아닌 종북 세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강제적으로 그어진 선의 반대편으로 떠밀리게 된 셈이죠. 국민을 둘로 분열시킨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사회적 합의가 된 내용도 아니면서 무엇이 급하셔서 '잘못되었다'라는 하나의 결론을 들고 나오셨는지 의문입니다.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있는 시점에서 굳이 지금까지의 흐름을 역행하는 '국정화'문제를 꺼내게 된 것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을 모두 차치하고서 '검정세대'인 제가 보기에 현재 '국정'의 가장 큰 문제는 '기준'입니다. 

국정의 기준은 '국정화'라는 문제를 들고나오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와 기성세대, 어디에선가 혀를 끌끌 차고 계실 어르신들끼리의 공감대로 만들어진 이 기준은 정말이지 이상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건 둘째 치더라도, 새롭게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나라 탓만 하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추진을 결정하였다고 했을 때, 그 기준에 정말로 우리들이 고려되어 있는지 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정부와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미래로 만들어가기 위해 아직 앞날이 무궁무진한 후진세대들을 하나의 고정된 틀에 가두겠다는 것은 아닐까요? 

정부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역사'라는 미명 하에 담겨진 온갖 추악한 내용들은 결국, 국가나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하고, 나라 발전을 위한 무한 봉사만을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심지어는 '긍정적인 역사'라고만 이야기할 뿐 어떠한 내용들이 긍정적인 역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가 유관순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서, 김일성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만 들었습니다. 

지금,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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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1일 오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4차 청소년행동' 회원들과 자발적으로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이 손피켓과 국사교과서등을 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촉구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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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제강점기에 대해 배우면서 '황국신민서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선인들을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보내기 위해서, 충실한 신하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세뇌정책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러한 '신민서사' 앞에 놓인 기분입니다. 일제가 우리한테 그랬듯, 현재 저는 정부가 정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말 것인지 기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받아들인다면 저는 대한민국의 충의로운 국민이 될 테지만, 아닐 경우는 반국가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검열을 당하고 있는 셈이죠. 

좌편향적 역사 교과서 때문에 현재의 젊은 세대가 국가에 대한 '충의'를 다하지 않고 비관적이라면,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어렵게 나라를 되찾은 해방의 역사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달성한 긍지의 현대사를 마주하며 끊임없이 제 뇌리에 스치던 자긍심은 어디서 오게 된 걸까요? 역사의 순기능인 반성과 발전은 어디에 묻어두려고 하시는 걸까요?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기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 역사를 꺼내든 것은, 어쩌면 극단으로 내몰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를 비난하고 구분 짓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뿐입니다. 진정으로 교과서 문제가 권력투쟁에서 자유로운지,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세대는 권력투쟁과 기성세대의 이익갈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종북'이나 '좌편향'에서 벗어나 하나의 극단만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건 아닙니다. 사회에 만연한 현상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현 정부가 잘못 판단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대와의 갈등을 지속할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아이들의 생각을 획일화 시키는 큰 죄를 범하게 되는 셈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어른들이 막아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계속 강행된다면, 이는 미래의 다양성을 막아선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국정 교과서 행정 예고기간이 오늘로 끝납니다. 아직까지도 사회적 합의나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도 않은 채, 흑색선전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남은 하루만이라도 본인들의 진정성을 상기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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