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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을 제한하나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⑩]
 
허환주 기자 2015.12.27 09:06:59

 

김경욱 씨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조직에 힘썼다. 파업 때 비정규직 노동자를 참여시키지 않았나. 첫 단추를 그렇게 채웠다. 이후부터는 그때 파업에 참여한 세 사람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받아야 했다. 단체협약상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을 금지했다. 이에 비밀리에 비정규직을 조직했다. 쉽지 않았다. 정규직 조직보다 백배 천배 어려웠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에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가입하는 사람도 사고를 쳤거나 해고될 위기에 있는 이들이었다. 한 달에 세 명 가입하면 두 명 탈퇴 하는 식이었다. 이게 반복됐다. 이슈가 없다보니 노조 가입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했다. 이슈가 있을 때는 줄기차게 달라붙었다. 2005년 임금협상 때는 주5일제가 이슈였다. 회사는 당연히 주5일제가 임금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노조는 임금문제라며 협상을 요구했다. 당시 노조는 임금이 깎지 않는 주5일제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거부했다. 노사간 평행선을 달렸다. 
 
그 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회사가 임금을 그대로 두는 주5일제를 실시했다. 노조 요구안을 받은 것. 대신 노조와 아무런 협의없이 결정했다. 노조로서는 회사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노조의 성과로 가져가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알아보니 정규직만 임금이 그대로인 주5일제였다. 비정규직은 제외됐다. 김경욱 씨는 비정규직도 동등한 주5일제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곧바로 간부 파업에 들어갔다. 
 

ⓒJTBC

 
하 지만 파업은 쉽지 않았다. '눈물 나는 파업'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참여하는 간부가 거의 없었다. 2명이 참석해 집회를 하는 일도 있었다. 휴가 중인 지부장 몇 명만 나왔다. 그래도 끈덕지게 비정규직 주5일제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비정규직이 주5일제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소식지에 줄기차게 실었다. 까르푸 프랑스 본사와 국제상업연맹에도 이메일을 보내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을 6개월 동안 이어갔다. 그러자 회사가 질려버렸다. 노조가 불법도 안 저지르니 고소도, 징계도 하지 못 했다. 회사가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까르푸 직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주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주5일 근무를 위해 파업까지 포함해 6개월 이상 투쟁한 사례는 흔치 않다.  
 
직원 수당이나 단체보험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차별을 받았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단체보험이 매우 중요했다. 매장 직원 중에는 일반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보험 비용이 비싸다보니 쉽게 가입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들을 위해 회사가 단체보험을 들어주도록 노조가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단체보험이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것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조합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지 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 회사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정규직 조합원의 반발이 김경욱 씨를 힘들게 했다. 정규직 간부들이 노조 회의 때마다 한 말이 '위원장님, 계속 이렇게 할 거예요?'였다. 언제까지 비정규직을 챙길 거냐는 뜻이었다. 비정규직 이슈만을 끌고 오는 김경욱 씨를 질타했다. 김경욱 씨로서는 대의명분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약속한 게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을 다 탈퇴시키고 정규직만으로 노조가 갈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반쪽짜리 노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규직이라서 비정규직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고 하면 나도 여러분을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 나는 관리자다. 관리자가 평직원들을 위해 왜 싸워야 하나.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여러분이 비정규직을 챙기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노조 안 하겠다." 
 
이렇게 넘어가고 넘어가고를 반복했다. 김경욱 씨 말 중에 틀린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 노조 간부들도 할 말이 없었다. 뒤에서는 뭐라고 할지언정 앞에서는 아무 말 못했다. 
 
내부 반발이 이어졌지만 김경욱 씨는 지속해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같은 노동자인데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더구나 같은 노동자끼리 차별하는 구조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조를 시작하며 들은 '노동자란 무엇인가' 강연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 노조, 그리고 노동운동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비정규직도 싸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같은 노동자 아닌가.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은 단체행동권도, 단체교섭권도 가지지 못하나. 그리고 그 권리를 왜 정규직 임의대로 제한해야 하나.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싸울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JTBC

무 엇보다 비정규직 아주머니 세 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약속이 그를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했다. 그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사람이 김경욱 씨였다. 회사가 당장은 불이익을 주지 않지만, 언제 어떻게 해코지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었다. 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보다 근간에는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밀어내고 대신 노조 위원장을 하게 된 '부채의식'이 컸다. '자존심'과 오기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 내가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날리지 않았나. 그에 대한 부채의식과 책임감이 있었다. 70일 파업 동안 까르푸 중앙노조를 잡고 있는 좌파 정파조직 '미래연대'와 줄기차게 싸웠다. 사실상 중앙노조와 지부가 내부싸움을 한 셈이다. 그 결과, 중앙노조 위원장이 미래연대라는 정파와 함께 물러났다. 그때 함께 파업을 지지했던 학생들도 같이 떠났다. 그때 우리 노조는 무주공산으로 붕 떠버렸다. 민주노총 부천지역협의회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텅 빈 듯했다. 그때 우리를 지지했던 학생들이 떠나면서 했던 말이 늘 뇌리에 남아있다. 
 
'관료, 어용, 투쟁을 망치고 훼손시키고 조합원을 후진화 하는 자, 연대를 저버리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적나라한 표현을 노조 게시판에 쏟아 부었다. 내겐 굉장한 상처였다. 학생들과 잘 지냈는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때 학생들이 썼던 글에 답장했다. 
 
'연대를 배신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 과연 연대가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그 리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종의 오기였다. 내가 날린 노조 위원장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300일 넘게 파업을 했다.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갓 노조에 가입한 내가 파업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파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지 않겠나. 지금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업무에 복귀했다고 그를 공격했다.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고 그랬다.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자연히 '니가 밀어냈으니 니가 하라'는 식이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위원장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전처럼 비정규직 배제하고 가야 하나. 노조활동 편하게 해야 하나. 내가 했던 말이 있지 않나. 300일 넘게 싸워서 단협 체결했을 때, 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 자신이 뱉은 말이 있으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했다."
 
부채감, 자존심, 자격지심…. 이런 것들이 비정규직 조직화, 그리고 이후 이랜드 싸움을 이어나가는 힘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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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1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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