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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외교공세가 아닌 핵실험을 선택했을까?

북한은 왜 외교공세가 아닌 핵실험을 선택했을까?<연재> 정창현의 ‘색다른 북한이야기’ (2)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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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1  1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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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월 6일 전격적으로 4차 핵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직후 북한은 “첫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며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5월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후 5년 8개월이 흐른 시점이다. 2014년 3월 말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약 2년만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핵융합 반응을 기본으로 하는 수소탄이 아니라 증폭핵분열탄(원자폭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기본 기술에 중수소를 이용해 폭발력을 증폭시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수소탄이든 증폭핵분열탄이든 이번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 실험에 이어, 수소탄 개발이라는 일반적인 핵 개발 수순을 밟고 있고, 핵탄두 소형화․경량화․다종화 기술에서 상당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은 분명하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핵실험을 시사하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를 분석하면서 필자는 5월 초 노동당 7차대회 개최 시점까지 북한이 국제적 고립 탈피와 경제건설을 위한 대외환경 조성을 목표로 적극적인 외교공세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교공세가 아닌 ‘핵무력’ 시위를 선택했다.

북한의 핵실험 자체는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이었다. 2014년 제기된 ‘4월 위기설’부터 시작해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제기한 ‘전략적 도발설’까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자신들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 하는 것이다. 2년 전쯤인 2014년 4월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이미 붉은 선(레드 라인)을 그어놨다. 미국은 이걸 넘어서는 안 된다. 넘을 경우 우리가 어떤 대응조처를 취할지 미국은 알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방식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권 교체를 하려는 어떤 시도도 금지선(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상정한 금지선을 미국이 넘어섰기 때문에 핵실험으로 대응했다는 것이 된다.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수소탄 발언을 보도한 것은 지난해 12월 10일이다. 북한 보도매체의 관행을 고려하면 12월 9일 이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은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의 갑작스런 ‘수소탄 발언’은 미국 재무부가 12월 8일(현지시간) 북한 전략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한 직후에 나왔다. 미국의 추가 제재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리고 6일 후 김 제1위원장은 “첫 수소탄시험을 진행할 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수소탄 발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한 맞대응으로 핵실험 실시

   
▲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와 연관돼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1일로 추정되는 SLBM 발사 장면. [자료사진 - 통일뉴스]

형태상으로 보면 과거 북한의 핵실험은 장거리 로켓발사 후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단행됐는데, 이번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후 나온 미국의 제재에 대한 맞대응으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2년 4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공개연설에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하다”라고 해 ‘자주권’을 더 강조했다.

북한은 위성 탑재 로켓 발사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도 자주권 차원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이번 핵실험에 대해서도 북한은 “미제와 제국주의자들의 핵전쟁위험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북한은 자주권과 자위권 차원으로 주장하는 미사일 개발에 대해 미국이 제재, 그것도 미사일 부대를 지휘 총괄하는 전략군을 제재 대상으로 하자 곧바로 핵실험을 결정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받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특별한 제안을 내놓지 않은 것이 주목된다. 더 이상 미국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9일 미국이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며, 이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다.

1월 18일 싱가포르에서 북한 리용호 외무성 부상을 만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도 “리 부상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의 대가로 핵실험과 함께 핵탄두 소형화 노력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성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평양 방문도 무산됐다.

그러자 북한은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끝난 후인 5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를 해 미국을 압박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경제와 핵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을 더 많이 만들며 핵무기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보다 위력하고 발전된 핵무기들을 적극 개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핵무기 운반수단’의 다양화 차원이다.

남북 간에 8.25합의가 성사된 후 북한은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다시 제안했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모든 문제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사항을 포함한 모든 문제들이 타결될 수 있다”며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 논의를 제의한 것이다. 미국은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로 가려면 그 전에 비핵화의 핵심 이슈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으로 대응했다.

10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강화만을 강조해 압박을 통해 북한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11월 11월 한국과 미국은 “실질적인 (대북)제재 조치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는 합의했고, 이틀 후 미국은 김석철 주미얀마 대사를 비롯한 북한인 4명과 북한 기업 1곳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11월과 12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지난해 미국을 향한 북한식 대화와 압박정책이 현재로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강도의 대미압박책으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미국이 협상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자신들의 핵 능력이 갈수록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위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인내’나 인권문제 등을 통한 대북압박이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신정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종 서명하고, 6일에 핵실험을 단행한 데는 5월 초에 열리는 노동당 대회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당창건 70돌 기념열병식에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북.중 관계의 회복과 북.중 정상회담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전 행사로 기획된 모란봉악단 방중 공연이 무산되는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서 대중외교가 의도대로 진행되기 어렵게 됐다.

어렵게 성사된 12월 11~12일 남북차관급 당국회담도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됐다. 북한으로서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을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대회 전에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대화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주관적 희망’이 담긴 전망일 뿐이었다.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까지는 외길 수순

2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되면 4월 초까지는 예년처럼 남북 간에 긴장국면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4월까지는 총선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적극적인 외교공세나 남북대화가 별 다른 성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와 그나마 대화의 통로를 열 수 있는 시점은 상반기까지다. 오바마 행정부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핵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차기 행정부와 협상에 대비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이번 핵실험이 전략적 선택에 따라 이뤄진 만큼 북한은 국면 전환 카드도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대해 ‘벼랑끝 전술’이라고 폄하하지만 북한은 1990년대 북핵문제가 발생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벼랑 끝에 선 적이 없다. 항상 강온책을 구사하며 국면을 전환시켜왔다.

물론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까지는 외길 수순이다. 미국과 한국은 한.미.일 차원의 국제공조를 통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대북 추가제재 및 실효적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추가제재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방법은 없고, 중국의 협력 없는 경제제재는 더 이상 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결의차원의 대북제재에는 동참하겠지만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는 분리 대응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외교부를 통한 국제공조에 나서면서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월 말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되고 여기에 핵미사일로 무장한 미국의 전략무기와 항공모함이 참가할 경우 북한의 대응에 따라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긴장국면에 도달할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며 도상연습까지 마쳤다.

역설적으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의 긴장국면은 ‘핵실험정국’의 종결과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4월 총선이 다가오면 북핵대응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공방만 치열해질 것이다. 북한은 5월 초 당대회 개최 전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그 때쯤이면 북한은 다시 ‘핵실험과 핵탄두 소형화 시도 중단’을 내세워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와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할 수도 있다.

긴장국면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것인가 하는 것은 소극적이고 단기적 대응책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북한붕괴론에서 벗어나 장기적 평화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 방안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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