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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라는 댐은 웃음으로 무너진다

 
[프레시안 books]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 2016.03.12 08:27:08
시민단체 혹은 야당의 기자회견장에 가거나, 시위 현장에 가보면 비장함이 가득하다. 왜 아니겠는가. 삶의 조건은 형편없이 나빠지고, 정부는 괴상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변화의 기미란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시민 중 이들의 외침에 절대적으로 찬성하는 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가 아닌, 당장은 큰 관심이 없지만 상황에 따라 이들의 구호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는 이의 눈으로 이 기자회견, 시위 모습을 한번 바라보자.  
 
엄숙한 운동가요를 바탕으로 군대처럼 정돈된, 그러면서도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구호가 나오고, 활동가들은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듯 고뇌에 찬 표정으로 압제자를 규탄한다. 정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추상명사가 대화의 반을 차지한다. 장담하건대, 이들이 하는 말 다수는 대다수 시민의 삶에 이롭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민의 표정을 보라. 관심을 두는 이 누가 있는가.  
 
마치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인 양 박근혜 정권의 선거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잘못되었다며 규탄하는 활동가의 말은, 뉴스를 챙겨보는 극소수(그렇다. 뉴스를 끝까지 제대로 읽는 이는 극소수다.) 사람만을 위한 제스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이 가운데 박근혜 정권이 국정원에 권력을 몰아주든, 특정 재벌에 유리한 조세제도를 개혁하든 관심 가질 자 누구란 말인가. 설악산 환경파괴는 오늘 내 밥벌이랑 아무 관련 없기 마련이고,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도대체가 나랑은 우주적 거리가 느껴질 정도로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런 고상한 차원의 이야기는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말을 눈 부릅뜨고, 가르치듯 하는 사람에게 일상을 유지하기도 힘든 이가 가질 감정이란 뭐겠는가. 기껏해야 "더럽게 잘난 체하네!" 정도 아니겠는가.  
 
그러니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답답하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저 우매한(!) 군중은 도대체 지금이 얼마나 큰 위기인지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철옹성 같은 부패 권력, 경제 독재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까.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스르자 포포비치 지음, 박찬원 옮김)은 "일단 웃겨라"고 말한다. 인종청소라는, 인류사에 영원히 죄악으로 기록될 만행을 저지른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끌어내린 비폭력저항운동 단체 ‘오트포르!(otpor!)’의 리더였던 저자는 이 책에서 풍부한 사례를 들며 '호빗'에 불과한 시민이 어떻게 해야 독재자와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가를 차례로 설명한다.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 가령, 당신이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라고 해보자. 지나가는 시민에게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해 주세요!"라고 말한들, 누가 귀 기울여 듣겠는가.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이 도대체 이 운동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저자는 하비 밀크의 사례를 들며 "가장 많은 시민이 관심 가질 만한, 일상의 일부터 바꿔나가라"고 한다. 하비 밀크는 샌프란시스코 거리의 개똥을 치우는 일을 효과적으로 알렸고, 이를 바탕으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세상에 알렸다. 개똥을 치우는 건 동성애자 인권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보다 훨씬 쉽다.  
 
책은 이런 식으로 유머가 필요한 이유도 설명한다. 저 무지막지해 보이는 모슬렘 사회에서 유머라니? 당장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행동하는 데도 제약이 따르기 마련인 사회에서 유머가 어떻게 독재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저자는 '웃음행동주의(laugh와 activism의 합성어)'야 말로 시민을 조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경찰과 군인과 정보 권력을 몽땅 틀어쥔 독재자를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무기도 바로 웃음이라고 강조한다. 지구의 모든 인류는 웃음을 원하기 때문이며, 높은 자리에 앉은 힘 있는 사람은 대체로 농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스르자 포포비치 지음, 박찬원 옮김) ⓒ프레시안

저자는 세르비아 민주화 운동가들이 웃음을 이용해 사람들이 구금을 이른바 '힙'하고 쿨한 행동으로 인식하도록 바꾼 이야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리아 활동가들이 정권의 수호자인 경찰을 바보처럼 만들어버려 사람들의 두려움을 없앤 이야기 등을 전하며 강조한다. 모든 악덕한 권력은 두려움을 먹고 자라고, 그 두려움을 이길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바로 웃음이라고. 
 
물론 이 책은 단순히 '시민을 웃기면 세상이 바뀐다'는 투의 허황한 이야기만 담지 않았다. 웃음은 시작일 뿐이다. 우선 시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더 많은 이가 세상의 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는데서 혁명은 시작한다. 대다수 시민이 관심 가질 소소한 일을 바꿔나가고, 웃음으로 정권을 조롱하는 건 시작일 뿐이다. 결국,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려야 세상이 바뀐다. 
 
이건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의 말대로 "제대로 된 혁명은 어마어마한 대폭발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단련된 불길이다."
 
중요한 건, 가장 낮은 곳에서 이 불길을 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불씨를 만드는 데서부터 불길을 효과적으로 퍼뜨리는 방법까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이야기 내내 유지하는 유머로 독자에게 알려준다. 직접 독재자를 무너뜨렸으며, 지금도 세계를 돌며 각지의 활동가를 교육하는 믿을만한 경험자가 전수하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방법' 실전 가이드다. 다시 강조한다. 시작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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