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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한가한 소리 마라, 국감이 기다린다

등록 :2016-09-15 12:05수정 :2016-09-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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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회 국정감사 풍경. 상임위별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복도에서 생중계를 보며 답변자료를 준비하느라 북적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4년 국회 국정감사 풍경. 상임위별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복도에서 생중계를 보며 답변자료를 준비하느라 북적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치BAR-보좌관Z의 여의도 일기

의원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에이스’로 평가받는 직업
카페인 흡입하며 날밤 새우지만
실적 낮으면 ‘비명횡사’하기도
찬바람이 분다. 국회에 은행 열매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면, 보좌관들의 표정이 굳어지고 눈에 힘이 들어간다. 비로소 국정감사(이하 국감)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제헌헌법에 도입됐던 국감이 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폐지됐다 88년 본격 부활되고 28년째를 맞는다. 나는 이 중 8번의 국감을 연속해서 치렀고 이제 9번째 국감을 치를 참이다.

 

국감은 국회가 대정부 견제·감시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기회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별 국회의원이 언론의 집중과 관심을 받으며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위해 한껏 피치를 올려 한 건 터뜨리려 혈안이 된다. 스포트라이트의 집중 포화를 받아 대중적 인기를 얻고 이를 발판 삼아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 실제 법제사법위원회의 ‘박남매’(박지원·박영선)가 보여준 저격수의 강한 인상도 국감을 활용한 결과이다.

 

국회에 갓 입성한 초선 의원들은 경험이 짧다. 고작 10명이 안 되는 의원실 조직을 가지고 비대한 행정부 조직, 그것도 여러 개 기관의 문제점을 파헤치려니 답답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감(보좌진이 국회의원을 부를 때 쓰는 은어)의 이름으로 제대로 한 건 터뜨려줄 수 있는 보좌진이 있다면 안심할 수 있을 터이다.

 

어차피 ‘Z’의 익명에 숨었으니 털어놓는다. 어디 가서 떠들 일은 아니지만, 나는 ‘에이스’다. 국감 잘한다고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나 에이스라는 평가엔 만만찮은 부담이 뒤따른다.

 

보좌관이 에이스냐 아니냐에 대한 평가는 일단 국감 기간 동안 신문 1면에 몇 번이나 영감의 이름이 등장했는지, 지상파 뉴스에 영감의 얼굴이 몇번이나 나오는지로 갈린다. 시민단체들이 선정한 의정활동 우수 의원 명단에 올라, 연말 의정보고서에 근사하게 몇줄 써넣어 지역구에 뿌릴 수도 있다. 상임위를 같이해 보면 어느 의원실에 ‘선수’가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국회 개원 시기에 이어 국감도 선수들의 활발한 이직이 이뤄지는 시즌이다. 국감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단칼에 비명횡사다. 20여일간의 국감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냉혹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의원들은 선거 때 도와줘서 데리고 왔더니 정책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보좌관들을 내보내기도 하고,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아왔더니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떠밀기도 한다. 물론, 국감용으로 뽑혀왔다가 운이 좋게 영감과 정치적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추석 직후 국감이 치러지기 때문에 보좌진에게 추석이란 명절은 그림의 떡이다. 8월 휴가를 떠나며 각 피감기관들에 요구 자료 리스트를 보내놓는데, 이 자료가 들어오면 확인하고 재차 보완할 점을 요구해야 한다. 피감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추석을 전후로 막바지 자료들이 배달된다. 추석 연휴 동안 국감 때 쓸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막바지 검토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추석 명절은 기껏해야 하루 정도 쉰다. 우리 가족도 이제 이런 삶에 익숙해졌는지, 이젠 아예 나를 제쳐두고 추석 연휴 계획을 짠다.

 

국감 때 분주한 건 보좌관들만이 아니다. 대기업 대관업무를 하는 이들도 눈에 불을 켜고 국회를 누빈다. 어느 상임위에서 회장님이나 임원을 증인으로 불러들이지 않는지 바짝 긴장하고 주시한다. 이들로선 국감 기간이야말로, 그동안 보좌관들에게 밥을 사며 인맥 형성에 공을 들인 것이 평가받는 시기다. 간혹 어떤 보좌관들은 대관업무를 하는 이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증인으로 세울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미리 증인 목록에 넣어놨다가 부탁을 받으면 빼주는 식으로 짜고 치기도 한다. 순수하게 인간적 호의일 수도 있고, 어떤 조건이나 대가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증인 신청을 무기 삼아 좀체 막기 어려운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내는 ‘우수 사례’도 있다. 지난해 한 기업이 국내 쌀 도정업에 진출하려다가, 회사 대표를 증인 목록에서 빼내기 위해 물러선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은 국감이 끝난 뒤 도정업 진출을 재추진했다.)

 

국감은 대학 때 시험기간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사흘은 집에 가지 못하고 이틀 정도는 날을 새우기도 한다. 나는 몇년 전부터 국감철이 되면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음료수를 두 박스 준비한다. 어떤 보좌관은 국감 때 이 음료를 즐겨 마시다 중독이 된 탓인지 나중엔 1년 내내 마시기도 했다. 추석이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이 음료를 주문하게 될 것이다.

 

자칭타칭 ‘국감 에이스’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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