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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코에 걸린 자영업자의 자살을 보고

 
[민미연 포럼] 한국의 자영업자는 어떤 의미일까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2017.02.01 08:21:39
 

자살한 두 남자 모두 자영업자였다. 설 연휴에 EBS에서 방영한 한 프로그램을 봤다. 극한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감정의 상처와 흔적을 조명하고 치유하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가정주부로 살던 50대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두 가정 모두 화목했지만, 불행은 남편의 사업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여러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서 전업 주식투자자로 나섰다. 그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금을 거의 다 날린 뒤, 가족에게 몇 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여성과 가정을 꾸리며 모범적으로 살던 이였다. 이 사람 역시 새로 시작한 학원 사업이 실패한 뒤, 심리적 고통을 겪다 자살하고 만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우리 동네 상황이 생각났다.

경기도에서도 한적한 편인 우리 동네는 교통량은 많아도 거주 인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동네에 가장 큰 아파트라고 해야 겨우 500세대가 입주한 우리 아파트다. 십수 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주인 부부의 친절과 미소는 사람을 늘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주인인 A의 미소는 사라졌다. 아파트 진입로에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서고부터다. 버스정거장 바로 옆에 자리한 편의점은 아파트 단지 안 슈퍼보다 접근성이 훨씬 좋았다. 40대 주인인 A는 6개월 정도를 버티다 결국 폐업했다. 슈퍼의 가게임대료는 월 80만 원이었는데, A는 임대료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A가 나간 뒤, 점포를 비워둘 수 없었던 60대 임대주 B는 마지못해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과 경쟁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주말과 휴일도 없이 강행군하고 있다.  

아파트 진입로에 생긴 편의점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편의점 주인은 6개월 만에 30대 여성에게 가게를 팔았다. 중견기업을 다니던 여사장 C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60대 어머니와 같이 편의점을 인수했다. 이들 모녀 역시 친절했다. 그러나 친절한 미소는 편의점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이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300미터면 제법 떨어진 거리지만, 동네 사람들이 많지 않고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는 유동인구만 있는 동네 특성상 손님이 줄어들 것은 분명했다. 그때부터 여사장 C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일했다. 주간 아르바이트보다 야간 아르바이트에 더 많은 시급이 지불된다. 줄어든 손님 수에 비례해, 편의점 사장 모녀는 아르바이트를 대신하며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모녀도 결국 편의점을 팔았다. 새로 인수한 사장은 여성 D였다. 처음에는 역시나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그러다 2개월 전 아파트 진입로에 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이 생겼다. 여사장 D의 얼굴 역시 어두워졌다. 새로 생긴 편의점 사장 E의 얼굴은 아직 밝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500세대에 불과한 아파트 주위의 자영업 경쟁을 생각하면, 그의 밝은 얼굴도 얼마나 갈지 걱정이다.  
 

ⓒ연합뉴스

 


위에 나열한 가게 사장들 A, B, C, D, E를 생각해보면, 현재 서민들이 느끼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영업자 비율'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7.4%다. 이 수치는 2010∼2011년 OECD 평균인 15.8∼16.1%의 두 배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다. OECD 국가 가운데, 2013년 기준 자영업자 비율 1위는 36.9%를 기록한 그리스였다. 2위는 터키(35.9%), 3위는 멕시코(33.0%)였다. 우리보다 자영업자가 많은 나라들의 특징은 이미 망한 나라 그리스, 선진국에 포함시키기에 부족한 터키, 미국 시장을 노리고 진출한 다국적 기업으로 겨우 먹고사는 멕시코와 같은 국가뿐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비록 1인당 GDP는 최상위 수준에 이르지 못하지만, 최근까지 산업경쟁력만은 강했다. 산업경쟁력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의 경쟁 상대국의 자영업자 비율을 살펴보자. 일본의 자영업자 비율은 11.5%로 21위를 차지했고, 독일의 경우 11.2%로 23위였다. 산업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1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이토록 높다는 것 자체만으로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유시장과 개개인의 선택에 기반한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상 자영업을 시작하는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자영업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인가 하는가이다. 자영업의 비참한 실태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2016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2014~2015년간 하루 평균 3000명 가량이 창업하고 2000여 명이 폐업했다. 생존율은 30%에 불과하다. 진입장벽이 낮아 경쟁이 심화된 치킨 업종 등의 생존율은 더욱 낮았다.

그럼, 생존한 자영업자는 제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문제는 살아남은 사업자도 대출로 겨우 연명하는 이가 많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2016년 9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액은 464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9월까지 사업자금 명목의 사업자대출은 13.4%, 생계비 마련 등을 위한 가계대출은 14.0% 급증했다. 대출을 받아서 생활한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을 들여, 본인을 포함해 가족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하는 자영업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경제연구원이 2011~2013년 자영업 진입·퇴출을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자영업 진입자의 48.7%가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사례였다. 이들은 고용시장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퇴출되고, 마지못해 자영업에 진출하게 된 사람들이다. 즉, 한국 자본주의의 고용 창출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의미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콘트라티에프 장기 주기'(소련의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콘트라티에프는 물가·금리·무역·석탄 및 철강 생산 등 자본주의 경제는 50년에서 60년 주기의 장기 파동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만이 아니라, 더 짧은 주기의 불황도 수시로 발생한다. 한국 산업의 생산성 하락에 의해서도 세계 경제의 구조적 불황에 의해서도 불황은 수시로 출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불황의 시기에 직면해 어떠한 응전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는가이다. 불황이라고 모든 산업 모든 기업이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강한 기업 강한 산업 분야의 수익이 일반 국민으로 흘러들어 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어려울 때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고율의 과세를 통해 가진 자들에게 더욱 많은 양보를 강제하는 루스벨트의 '뉴딜'이 대표적이다. 미국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진행한 다양한 '친노동 정책'은 결국 사회의 강자였던 대기업의 이익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또한 1982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바세나르 협약'도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각자의 이익 특히 조직노동자가 좀 더 양보하는 대타협을 통해서 네덜란드는 50%에 불과하던 고용률을 75%까지 끌어 올리게 됐다. 이런 협약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직업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여성인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들 사례는 사회 전체의 갑(甲)인 대기업이나 노동시장의 갑인 정규직 조직노동의 양보 없이는 제대로 된 개혁이 수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의 지난 20년을 살펴보자. 한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가 닥치자 나름의 개혁을 한다. 그 개혁의 핵심 내용은 작업 현장에서 외부 노동자를 만들어내어 이들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기업이 관할하는 내부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기업은 내부에 소(小)사장제를 만들었다. 소사장 밑에 원청과는 소속이 다른 외부 노동자를 만들어 왔다. 이 소사장제, 즉 내부 하청이 경제 위기를 극복한 한국의 대표적 수단이었다. 

이 소사장제, 노동의 이중구조는 연쇄 고리로 이어진다. 대기업 현장의 하청노동은 외부 1차 하청의 노동자에 비교해 내부자의 입장에 선다. 또한 1차 하청의 노동자는 자신의 공장에서의 재하청 노동자나 2차 하청 노동자와 비교해 또다시 내부자의 입장이 된다. 이런 갈등관계의 복잡화는 갈등관계를 단순화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갈등관계가 단순하지 않으면, 갈등 해결의 동력을 얻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익과 손해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이해타산이 어려워진다. 결국 갈등 구조의 복잡화 때문에 개혁의 동력은 길을 잃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그물망 안을 맴돌게 된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그물망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노동자로 일하는 순간, 이 그물망 속에 포섭된다. 한국의 노동자는 노동자끼리의 연대의식보다는 그물망 속에 자신이 자리한 그물코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의 그물코가 저 사람의 그물코보다 좀 더 나은 자리인지 못한 자리인지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의 대개혁을 위한 갈등 구조의 단순화는 점점 멀어져간다. 그물망에 들어가 있는 각자는 서로의 처지를 비교한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하나 되어 비교하는 대상이 존재한다. 이 존재가 그물망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그물망에서 퇴출된 사람들이다. 그물망 외부의 사람들 중 생계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영업자'로 불리는 것이다.  

한국 자영업자들의 생존의 절박함은 그물망에 속한 사람들의 안도감의 크기에 연결된다. 그물망 내부자들이 그물망에 만족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그물망 외부의 존재들의 생존은 더욱 각박해질 따름이다.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그물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그물코의 크기를 줄여 그물망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물망에 들어올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생계형 자영업자의 수를 줄여 자영업자 간의 경쟁을 완화해나가야 한다. 답은 분명하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행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그물코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각자의 그물코는 자신들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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