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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월호委 메모 "의전에 실수는 용서가 없다"

 
[세월호 특조위를 말하다] 조사3과 황광석 전 조사관 인터뷰
2017.04.19 08:14:53
 
 

 

 

 

그토록 기다린 세월호가 1089일 만에 뭍으로 돌아왔다. 하얀빛을 자랑하던 세월호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다 깊숙한 곳에서 뒤틀린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예상보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얼마나 흘려야 눈물이 멈출 수 있을까.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필요성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해경은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왜 이러한 참사는 반복되는지... 세월호 참사에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달려있다. 그러한 의문을 풀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세월호 특조위다. 하지만 2017년 6월 30일자로 조사활동은 강제종료 됐다.  
 
여러 변수가 존재하지만 현재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끝나면 다시금 세월호 특조위 2기가 구성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러 의원들이 세월호 특조위법안을 발의해둔 상황이다.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2기 특조위의 향배도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가 재구성된다고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기 특조위가 의도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접수된 231건 사건 중 단 4건에 대해서만 보고서가 나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내재해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와 특조위 무력화 시도다.  
 
그렇다 해도 그 이유만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나의 사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상수(常數), 그리고 그 이면의 다양한 변수(變數)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게 일반적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기 특조위가 왜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에 따라 2기 특조위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월호 특조위에서 활동한 조사관 당사자들 인터뷰를 통해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개선책은 어떤 게 있는지를 살펴본다. 세월호 특조위 내 진상조사국 조사1과, 2과, 3과에서 각각 조사관 1명과 안전사회과 조사관 1명을 만났다.  
 
아래는 세월호 특조위 진상조사국 조사3과에서 일한 황광석 전 조사관과의 인터뷰 내용. 황 전 조사관은 특조위가 강제종료 된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 국민조사위원회 사무실 근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해경,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프레시안 : 진상조사국 조사3과에서 일했다. 조사3과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황광석 : 세월호 특조위는 직권으로 어떤 사안을 조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청 받은 사건을 조사하는 식이었다. 그 사건이 200건이 넘었다. 이 사건들이 각각 사건이지만 결국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건이다. 각각 조사관들이 저마다 맡은 사건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 즉 세월호 참사라는 큰 틀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이에 조사관들이 다 같이 봐야 하는 기록들이 있었다. 기록 선원 재판기록이라든지, 감사원 감사자료, 국정조사 기록, 행정부의 수사기록 등. 이에 그것을 조직하고 목록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조사관들이 필요할 경우, 컴퓨터에 앉아서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런 일도 했다. 또한, 청문회, 위원회 회의 등의 기록도 정리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조사를 해야 하는 세월호 특조위 특성상 기록 정리보다는 조사활동 지원에 포커스를 더 맞췄다.  
 
프레시안 : 정부 기록을 모으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특조위에 비협조적이지 않았나.  
 
황광석 : 그렇다. 일례로 특조위 활동 종료 즈음인 2016년 5월, 우연히 해양경찰의 TRS(해경공용통신) 존재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TRS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 이것이 해경 본청에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특조위가 증거수집을 위해 실지조사 형태로 해경 본청을 방문했다.  
 
프레시안 : 기억난다. 당시 특조위가 방문했으나 해경에서 이를 주지 않아서 며칠 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졌던 거로 기억한다. TRS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황광석 : 당시 우리가 요구한 TRS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해군 사이 교신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조위는 전체 녹음파일 제출을 요구했지만 해경 측에서는 선별해 제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프레시안 : 해경에서는 왜 그랬나.  
 
황광석 : 안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선별한 파일은 위·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하드를 통째로 가져와서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세월호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2급 비밀취급을 인가받은 기관으로 공익적 목적으로 비밀사항에 해당하는 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 않나. 
 
황광석 : 맞다. 안보는 핑계였다. 해경은 당시 세월호 특조위를 이미 활동이 끝난 조직으로 판단했다. 그러니 버티기면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프레시안 : 그래도 대치 끝에 특조위는 TRS를 입수하지 않았나. 
 
황광석 : 받으려 했던 자료에서 일부를 뽑아 줬다. 하지만 거기에도 이제껏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여러 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프레시안 :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해경 등이 숨기고 있는 자료와 정보가 얼마나 더 있을까.  
 
황광석 : 분명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민감한 개인정보 있다며 자료 공유를 못하도록 했다" 
 
프레시안 : 다른 조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각 조사관들이 수집한 기록들이 공유가 안 됐다고 들었다.  
 
황광석 : 특조위에 있으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이곳에 온 사람 중 자격 미달자가 있다는 점이다. 스펙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 이해, 그리고 사명감, 문제의식 등이 없는 분이 많았다.  
 
프레시안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황광석 : 조사관들이 우리 과에 어떤 조사기록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상급자가 이를 주지 못하도록 했다.  
 
프레시안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황광석 : 상급자의 논리는 간단했다. 특조위는 공공기관이면서 조사기관으로서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거기에는 개인 정보 중에도 민감정보, 즉 범죄기록, 의료기록 등도 포함돼 있다. 그것까지 우리는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민감 정보라면서 이것이 다 공유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공유를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말만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조사관이 그런 정보를 보지 않고 무슨 조사를 할 수 있나. 그리고 조사관은 그런 정보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나.  
 
황광석 : 답답했다. 활동기간이 1년 반 밖에 안 되는 특조위에서 무엇을 그렇게 따지나 싶었다. 미친듯이 달려들어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듯한데... 나는 이것저것 따지기 보다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은 채워지지 않았고, 청문회는 계속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조사는 지속해서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됐다. 정부의 방해는 계속 이어졌다. 그 속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프레시안 : 위에서는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황광석 : 아마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걱정됐던 듯하다. 자기 이력에 흠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면 특조위에 와서는 안 됐다. 경험을 쌓고 싶었다면 다른 곳에 가야 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궁금한 것은 자료 공유 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그런 것을 위에서 알았다면 조정을 해야 하지 않나. 
 
황광석 : 위에서는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았다. 밑에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 아쉽다. 
 

▲ 별정직 조사관 책상에 붙은 메모. ⓒ황광석

"조사보다 의전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하는 파견 공무원"
 
프레시안 : 파견 공무원은 어땠나.  
 
황광석 : 사실 대부분 파견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 안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들 공무원 특유의 행위를 별정직 부하 직원들에게도 주입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 예가 있었나.  
 
황광석 : 한 번은 다른 과에 갔다가 별정직 직원 컴퓨터 모니터에 붙은 메모를 우연히 보게 됐다. '업무에 실수는 용서가 되지만, 의전에 있어 실수는 절대 용서가 없다'라는 제목의 쪽지였다. 과장 모시고 점심 장소 등을 알아보는 방법, 그리고 회식 약속 체크하는 방법 등을 적은 쪽지였다. 그것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  
 
프레시안 : 할 말이 없다. 파견 공무원이 부하 조사관 군기 잡는 식인 듯하다. 그리고 특조위 업무보다 상사와의 밥자리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황광석 : 처음에는 기록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특조위 조사가 잘되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며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안 되겠다 생각했다. 위원회 안에서 이 문제를 두고 조사관들과 대화를 했더니 대부분 조사관들이 다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위를 찾아가 문제제기도 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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