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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성향·동향 뒷조사 문건 있었다

[사법개혁 저지 파동]판사 성향·동향 뒷조사 문건 있었다

이범준·이혜리 기자 seirots@kyunghyang.com

 

ㆍ진상조사위, 행정처 고위법관이 학술행사 연기·축소 ‘압력’ 확인
ㆍ“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셀프 결론…대법원장 책임 여부 안 밝혀

대법원이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법관들의 동향과 성향을 ‘뒷조사’한 대책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 조사 결과 확인됐다. 그러나 조사위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진상조사위는 18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25일 법원 내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의 인사제도와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 집중 등을 다루는 학술대회를 열려 하자 행정처 소속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모 판사 등 연구회 관계자들에게 학술대회를 연기·축소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 상임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실장회의와 고영한 행정처장이 주재하는 주례회의에 보고했다. 조사위는 논의된 대책 중 일부가 실행된 이상 행정처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지난 2월 대법원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연구회에 복수가입을 금지하는 공지를 올린 것에 대해서도 인권법연구회 또는 학술대회 견제를 목적으로 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조사위는 이 상임위원이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라”고 말했다는 이모 판사의 진술을 확보했다. 조사위가 이 파일이 저장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컴퓨터와 e메일 서버를 조사하려고 했으나 행정처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위는 대신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자신이 언급한 파일이라며 학술대회 연기·축소를 위한 대책문건 2건을 제출받았다.

이 문건들에는 학술대회 관련 추진 경과와 추진하는 대표, 간사, 주요 참여자는 물론 ‘현재 잠시 참여도가 낮아진 참여자’ 등의 이름과 소속이 담겨 있다. 대법원이 학술대회를 추진하는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뒷조사한 결과로 판단된다. 조사위는 이 문건 외에 전체 판사들 동향을 조사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조사위는 임 전 차장이나 고 처장 등이 학술대회 연기·축소를 직접 지시했는지, 양 대법원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사위가 행정처의 조직적 개입 의혹을 확인했음에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사태를 무마하는 데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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