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보 위는 녹조로 몸살, 아래는 물골 사라져
철거해야 하중도, 백마도, 점박이물범이 돌아온다
» 김포대교 아래 신곡수중보 모습. 흰 포말은 한강을 단절시키는 선인 셈이다.
‘노루목’ 장항습지는 30여 년 전만 해도 없던 곳이다. 옛 지도에도 흔적이 없었다.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은 전국의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멋진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특히 양천 현령을 지내며 그린 한강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도 장항습지를 찾지 못한다.
»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만나는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불기둥.
지금의 장항습지는 그저 서해 앞바다가 썰물일 때 북한 개풍군 장단반도 언저리를 휘감고 내려오는 임진강의 민물이 닿는 수로였다. 물때가 바뀌면 강화와 김포 앞바다 유도의 한강수계에서 짠물과 민물이 만나 바닷물이 치고 올라오는 요동치는 펄이었다. 장항습지의 태동은 김포대교 바로 밑 신곡수중보 건설(1987년)과 맞닿았다. 정부는 ‘88올림픽’을 앞둔 1982년 9월 대공사를 벌였다.
»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한의 개풍군 하조강리.
총사업비 9560억 원을 들인 한강종합개발사업이 그것이었다. 서울시가 내세운 목적은 취수장의 수심 확보, 유람선 띄우기, 염수 역류 피해 방지, 하천 주변의 지하수위 저하 방지, 바닷물을 막아 농업용수 확보 등이었다. 한강의 바닥을 긁어내 저수량을 늘렸고, 퍼낸 모래와 자갈은 강변도로에 얹어 올림픽 도로를 닦았다.
새로 묻힌 하수관은 빗물과 하수를 걸러냈고, 신축 하수처리장은 오폐수를 정화했다. 거무튀튀한 빛으로 죽어가던 한강에 푸른빛이 돌았다. 물위에 유람선이 뜨고, 보트와 윈드서핑이 물살을 갈랐다. 그러나 한강 하류는 물이 마른 임진강 물과 서해 바닷물로 찰랑거렸다.
» 한강 하류를 바다와 단절시킨 신곡수중보를 옆에서 본 모습.
» 신곡수중보의 가동보.
신곡수중보는 1986년에 준공되었으며 1007m 길이로 고촌읍 신곡리와 고양시 신평동을 잇는다.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백마섬을 사이에 두고 고양시 쪽으로는 길이 883m의 물속에 높이 2.4m의 고정보를, 김포방향 124m에는 폭 20m, 높이 5m의 수문 다섯 개 의 가동보를 만들었다. 이로써 한강에는 서울 잠실수중보와 함께 한강의 수위를 최소 2.6m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담수호가 생겼다.
» 한강상류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차단한 신곡수중보는 지속적으로 한강하구의 하상을 높이고 있다. 썰물 때 바닥을 완전히 드러내면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일산대교와 전류리 포구 사이 전경.
» 2015년 8월31일 오전 김포시 아라 한강 갑문 앞에서 먹이를 사냥하다가 끈적이는 녹조에 빠져버린 황로.
신곡수중보는 한강의 물길을 막아섰고, 서해 바다가 밀고 썰며 토사를 실어 나른 강물이 경기도 고양시 신평동에서 송포동 이산포까지 길이 7.6km, 최대 폭 600m의 장항습지를 만들어냈다. 하루 2번 한강물이 빠지면 육지처럼 보이는 이곳에 4.7㎢ 넓이의 갯벌이 쭉 이어져 마치 강 건너 김포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 장항습지에 버드나무 군락지가 늘어나고 있다. 육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 장항습지의 육화현상이 가속화하며 버드나무군락이 자리를 잡고 유속을 느리게 하고 생태변화를 방해한다.
어림잡아 10년마다 찾아온 대홍수도 신곡수중보 인근에 흙모래를 쌓는데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기를 30년, 장항습지의 펄은 세월을 먹은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육화현상을 상징하는 버드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한강의 물길을 방해하고 있다.
» 신곡수중보가 설치되기 전 한강 하도의 모습.
» 한강신곡수중보 설치로 인한 하도 변화의 모습.
신곡수중보와 마주한 채 한가운데 떠있던 하중도는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와 향산리를 가로지르며 자리잡은 길이 3㎞, 폭 2㎞의 크기의 섬이었다. 이 섬은 1990년 착공한 자유로(고양시 행주대교~파주시 문산읍 자유의 다리 간 46.6㎞) 건설용 토사로 사라졌다.
» 골재로 사라진 하중도의 흔적이 모래톱으로 남아있다.
고양시는 김포보다 지형이 높고 김포시는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유속과 수심이 깊은 김포시 쪽에 옛날부터 뱃길과 포구가 있었다. 고정보도 문제지만 김포시 쪽 가동보의 영향도 매우 크다. 둔치 침식이 일어나고 강물로 인해 절벽처럼 깎인 둔치에 돌과 시멘트로 석축을 쌓았다.
» 백마도.
국토해양부에 딸린 서울지방 국토관리청이 2008년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와 운양동 사이 4.9㎞에 55억원을 들여 제방을 보강한 것이다. 개보수공사는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둔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한강제방까지 터져 홍수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일산대교 우측 아래 독도가 보인다. 한강하구의 백마도, 유도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섬이다.
어린 시절 하중도와 백마도에 배를 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미루나무가 서 있던 하중도에 동네 사람들이 땅콩 등 농작물을 일구었다. 백마도의 강폭은 좁았지만 물살이 워낙 사나워서 조심스럽게 배를 타고 건너가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소풍을 즐기던 추억이 떠오른다.
» 한강 어로 한계선 앞에 떠있는 고기잡이배.
신곡수중보 준공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한강 하구와 관련된 지자체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그냥 원래대로 자연에게 돌려주면 될 일이다. 하구가 막히면 상류가 병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이 흐르는 것이 곧 생명이고 생명은 물에서 시작된다.
특히 전류리는 한강 하구 중 가장 물길이 요동치는 곳으로 물길이 거꾸로 흐른다하여 뒤집힐 전(顚) 흐를 류(流)를 써 '전류리'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전류리 포구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잔점박이물범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 전류리 포구의 하류 모습 멀리 오두산 전망대가 보인다.
2007년 9월 정부에 제안서를 내어,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디엠지(DMZ) 일원의 생태환경 남북공동조사’를 포함시켜 달라고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난다. 2008년부터 한강 하구 생태복원을 위해 신곡수중보 철거를 여러 차례 주장하였다.
» 한강 법정수계가 끝나는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산1번지(머무르 섬) 유도.
4대강 건설 이후 신곡수중보 아래 한강 하구는 갯벌 하상이 빠르게 높아져 아예 물골이 사라지고 장판을 연상케 한다. 신곡수중보를 경계로 단절된 서울 쪽 한강은 반복적으로 녹조로 뒤덮인다. 담수호라는 증거이다.
분단된 한반도처럼 한강의 물길도 단절의 아픔을 안고 있다. 이젠 신곡수중보를 철거해 왜곡된 물줄기를 한강으로 돌려줘야할 때다. 하중도의 흔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썰물 때 흔적을 드러낸다. 자연의 순리를 쉽사리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 김포시 문수산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 왼쪽은 염하강과 예성강, 오른쪽은 유도를 지나온 한강이다.
» 디엠지의 철색선. 한강 하구에는 또 다른 분단선이 있다.
신곡수중보는 한강의 분단선이다. 한강의 물길을 터야 평화가 온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 필자
인터뷰: 유영록 김포시장
“29년간 한강 막아 수질·생태계 망쳐
보 없애면 환경복원·남북관계 돌파구”
새 내각에 서울시와 공식 요구키로
“신곡보를 철거해야 한강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되살아납니다.”
한강 신곡수중보가 설치된 경기 김포시의 유영록 시장은 29일 직접 신곡보 철거 운동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 시장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신곡보 철거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인 뒤, 외교부 앞에 설치된 ‘광화문1번가 국민인수위원회’에 이를 공식 제안했다. 신곡보는 1988년 경기 김포시와 고양시 사이에 설치된 길이 1007m, 높이 2.4m의 수중보다.
신곡보 철거가 필요한 첫째 이유로 유 시장은 현재 한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신곡보가 29년 동안 한강을 막아 녹조가 생기고 다양한 물고기와 동식물들이 사라졌다. 물길도 왜곡돼 가동보가 설치된 김포 쪽에 침식(깎임)과 쇄굴(파임)이 나타난다. 또 과거 삼남의 물산이 모였던 한강의 뱃길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신곡보의 건설로 생태계의 보고인 한강 하구 기수역(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는 곳)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강 외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도 모두 하굿둑으로 인해 기수역이 사라졌다.
한강의 기수역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일 뿐 아니라, 남북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기수역인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67㎞는 한강 하구의 남북 중립 수역이다. 이 수역은 조선 시대에는 서해에서 한강으로 세곡 운반선이 다녔지만 6·25전쟁 이후로는 막혀 있었다. 이곳에선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의 민간 선박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자기 쪽 육지에 배도 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북의 배가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김포시는 10여년 전부터 신곡보 철거와 함께 중립 수역의 물길 복원, 한강가 철책 철거 등의 사업을 추진해왔다.
유 시장은 신곡보를 없애는 일이 한강을 살리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곡보로 강물의 흐름이 약해져 하구 쪽에 엄청난 모래가 쌓였다. 신곡보를 헐면 모래가 바다로 쓸려내려가 물길이 되살아날 것이다. 서해에서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감동적이지 않은가.”
신곡보 철거 반대의 마지막 이유인 농업용수 확보와 어민 설득도 큰 문제 없다고 그는 말했다. “신곡보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김포 쪽에서 농업용수를 퍼올려 썼고, 신곡보가 없어지면 물고기가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얼마든지 농민, 어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시장은 신곡보의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통일부, 국방부의 새 장관들이 발표되는 대로 서울시와 함께 신곡보 철거와 한강 하구 개방을 공식 요구할 계획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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