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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 정책 꺼낸 이유

 

“일단 조세정의 실현” 증세 공론화에 박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 참석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 참석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다.ⓒ제공 :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상위 1%도 채 안 되는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조세정의부터 실현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자감세 정책 등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해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조세저항을 줄이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보편적인 증세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증세 불가피론 대두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대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간 100대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려 178조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증세 카드를 무턱대고 꺼내 들다가는 만만치 않은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 내에 팽배하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에 도입한 부가가치세(VAT)는 당시 정치상황과 맞물리면서 조세저항에 직면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조세조항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 정책 기조를 임기 내내 유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일단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한정해 증세를 해내겠다는 방침이다. 본격적인 조세개혁의 칼을 빼 들기에 앞서 조세정의를 우선 실현하겠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증세 논의에 불을 당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것은 증세가 아니라, 조세정의 실현하는 정상화"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들에게는 증세가 전혀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조세의 수직적 형평성 제고라는 기본 원칙은 임기 내내 유지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러한 기조는 국정기획자문위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기에 앞서 제시한 '새 정부의 조세개혁 방향'과 다르지 않다. 국정기획위는 "조세개혁을 위해 대기업과 대주주, 고소득자, 자산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는 한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중산·서민층에 대한 세제지원은 지속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재정의 건정성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상위권인 반면, 지난 10년간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조세·재정 정책의 소득재분배 개선 효과는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이다. OECD는 지난 3월 구조개혁평가보고서를 통해 하위 20%인 1분위의 가처분소득 비중이 회원국 평균을 밑돈다고 지적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조세·사회이전시스템의 약한 재분배 효과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은 현재 초대기업에 3%, 초고소득자에 2%씩 세 부담을 늘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대표는 지난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 2천억원 초과 대기업에 대한 과표를 신설해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적용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현행 40%에서 42%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23일 민주당에 따르면 현재 과세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는 과세표준 2천억 원 이상 초대기업은 116개사로, 전체 신고대상 기업의 0.019% 수준이다. 또 과세표준 5억원 이상인 초고소득자는 4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0.08%에 불과하다. 이들에 대한 과세를 통해 연간 3조8천억원 이상의 세수 증대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세정의 실현" 증세 공론화에 박차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5년 동안 필요한 178조원을 조달하는 데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는 세수확충(77.6조원), 초과세수 증대(60.5조원), 비과세 정비 등(17.1조원), 세외수입 확대(5조원), 지출구조조정(60.2조원)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보편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조세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내세운 이번 방침이 결국은 본격적인 증세 논의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부자감세 등 불공평한 조세정책을 바로 잡는 것으로 조세정의가 실현된다면 반대로 조세저항은 보통 낮아지기 때문이다.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증세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높인다면, 이후 보편적 증세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증세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고소득자·고액상속·고액증여자들에 대한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등 단계적인 증세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의 실현 방향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증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이지만, 부자증세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경향이다.

지난 5월 23일 국회의장실이 한국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결과에 따르면, 새 정부의 공약 실천을 위한 증세에 대해 찬성은 45.2%, 반대는 51.3%로 반대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반면 새 정부 공약 실천을 위한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과 대기업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각각 85.5%, 82.3%가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국회의장실은 "국민 상당수는 부자증세를 통해 재원 마련과 소득재분배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한정해 증세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일단 여론은 호의적일 것으로 여권은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정권 초기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높은 만큼, 증세 공론화 작업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을 수 있다.

당·정·청이 한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직접 먼저 나서 '증세' 카드를 꺼내기보다는 여당 대표와 정부가 먼저 증세 논의에 불을 붙이면서 청와대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모양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2019년 이후 새 정부의 조세·재정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과 로드맵은 기획재정부 주관 하에 구성될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24일 오전 국회에서는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한 당정협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증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문 대통령은 오는 27~28일 일자리 창출 및 상생 협력을 주제로 기업인과의 대화를 갖는데, 이 자리에서 증세와 관련된 설명과 설득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증세 방침을 못 박으면서 향후 정치권에서 증세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각 인사와 추가경정예산,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산을 넘은 문재인 정부가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이번 '부자증세' 방침에 반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이번 대기업 및 부자증세가 한국 경제를 견인해 온 우량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적대감의 발로가 아니기를 바란다"며 "무리하고 졸속인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의 부담을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만 전가시킨다면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증세를 위해선 일단 국민의 동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증세없는 공약이행은 당연히 허구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증세를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 증세야말로 공론화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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