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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몰락하는 미국의 정치

트럼프 대통령과 몰락하는 미국의 정치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7/09/08 [01: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트럼프의 정신감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미 하원의원 조 프로그랜    © 정설교 화백

 

▲미국의 매카시 광풍은 미국의 정치를 벼랑끝으로 향하게 만들었지만

현재도 미국의 정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 정설교 화백

 

▲  베트남 전쟁과 존슨 대통령   ©정설교 화백

 

 

 

▲  극우 반공주의자 닉슨 

그는 마오쩌둥 중국공산주의와 손을 잡았다.

그의 반공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 정설교 화백


 

북한과 말 폭탄을 주고받는 북미대결에서 미국대통령 트럼프에 대하여 그의 측근들도 그의 정신상태를 걱정하며 시간이 소요되는 탄핵보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 25조에 의한 트럼프가 대통령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미국의 지도자는 왜 이렇게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곤경을 면하기 어려운 것일까?

 

미국의 정치 후진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이 벌어진 시기다미국무부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는 공화당의 매카시 의원에 의하여 대통령인 루스벨트트루먼아이젠하우어까지 의심을 받아 미국의 위신을 크게 추락했다. “위스콘신출신의 매카시는 진지한 정치활동가가 아니라 술꾼으로 더 유명한 인사였다고 에릭 프라이 뉴올리언 대학 교수는 말한다매카시는 1950년 초 한 지인이 그에게 국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침입하고 있다는 선거 캠페인을 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이에 그는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의 휠링에서 열린 공화당원들의 숙녀클럽에서 연설하면서 국무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한 것이다.

 

이후 매카시는 205명의 명단에서 단 한명의 공산주의자를 대지 못했지만 그가 이끈 청문회는 미국대중의 정치적 구경거리가 되어 전국을 강타하였고 미국에서 진보적이라는 민주당원과 자유주의 지식인에 대한 매카시의 광포한 공격과 음모이론은 당시의 분위기를 휩쓸었다. 1948년 민주당의 루스벨트의 참모였던 엘저 힐스가 1930년대의 소련의 간첩이었다고 고발당하였고 그는 미국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하지만 히스가 정말 간첩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어쨌든 이 사건으로 힐스가 유죄판결을 받자 대중들은 공산주의자가 미국정부에 잠입하여 미국은 내부로부터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

 

힐스의 사건으로 득을 본 사람은 켈리포니아의 주지사로 상원의원인 리처드 닉슨이다공산주의 사냥꾼으로 강력한 사냥꾼인 닉슨은 195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아이젠하우어의 선거참모가 되었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주된 사냥의 표적은 공산당에 많은 동정을 보내던 영화계였다. 1947년 영화계는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19명의 공산주의자가 마녀사냥에 간첩으로 몰렸다혐의자들은 공개적으로 치욕을 받았고 친구나 동료들을 고발하도록 강요하며 그들도 같은 과정으로 공산주의자로 몰렸다미국에서 공산주의자란 낙인은 사회비판적 시각을 갖거나 자유사상을 갖는 것으로 충분했다혐의를 입증할 자유는 FBI가 공급하였고 빨갱이를 만드는 것에는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되었다.

 

빨갱이 조작에는 의회까지 동원되었다매카시 의원이 그 책임자로 간첩영구조사 소위원회가 신설되어 거기에 소환된 사람은 소환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최고의 의심을 받았고 일자리를 잃었으며 미국사회에서 간첩이라는 붉은 딱지를 달았다.

 

미국의 영화계는 320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할리우드에서 축출되었다이에 미국의 영화계는 일할 사람이 없었고 정치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채용이 거부되었는데 그중에는 여 덜 살배기 소녀도 있었다.

 

매카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50년 의회선거에서 그를 반대한 민주당은 상하 양원에서 모두 참패하고 우익 공화당이 양원에서 압승을 거두었다트루먼 정부는 수천 사람들이 매카시 광포에 무너져도 그저 속수무책이었다중국의 본토에서는 마오쩌둥의 승리로 미국 내 중국전문가가 모조리 쫓겨났다매카시는 그뿐만 아니라 3만권에 달하는 불온서적의 명단을 만들고 미국의 도서관에 있는 반미서적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1953년 10월 매카시는 미국의 군대에서 공산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수개월동안 수십 명의 고위 장교를 위원회로 소환하였다그가 노린 사람은 국방부장관 로버트 스티븐슨이었다심문과정은 TV로 중계되었고 매카시의 거칠고 불공정한 심문방식이 국민들 눈에 비쳐졌다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인 닉슨도 매카시의 방법을 비판할 정도였다이에 백악관에 도움을 받아 상원에 매카시에 대항하는 전선이 형성되었고 1954년 12월 2일 매카시의 언동이 품위를 잃었다고 질책하였다매카시는 위원회 의장직을 잃고 그의 반공산주의 영향력은 상실하였으며 3년 뒤에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매카시는 사망했다.

 

매카시의 사망으로 매카시의 마녀사냥은 끝났지만 아이젠하우어 시절 미국에서는 정치를 비판하는 좌익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미국에서의 반공산주의는 미국의 이면헌법으로 비판적인 언행은 공공연하게 몰매를 맞았다매카시로 인하여 미국의 정치는 추락하기 시작하여 미국인들은 가족과 집과 기르는 가축만 생각하며 지금도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다매카시의 유산은 지금까지 끈질기게 남아있어 미국인의 정치의식은 매우 낮으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미국의 정치경제문화는 추락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정치와 지도자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고 트럼프와 같이 분별없는 대통령이 또다시 등장할 것이니 이는 존슨의 베트남전, 닉슨의 워터게이트, 레이건 이란 콘드라,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예방전쟁 같은 국제법과 자국의 헌법을 유린하는 대통령이 계속 탄생할 것이다. 한 나라의 발전은 그나라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으며 그런면에서 미국의 정치와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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