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8일(월요일, 16일차) : 호이안→훼

 

- 아침 8시. 호텔비를 정산했다. (9달러×3일=27달러) 우리를 실은 버스는 훼를 향해 달렸다. 버스는 슬리핑 버스였다. 나짱에서 온 듯했다. 중국애 2명을 제외하고는 베트남 사람 3명, 나머지 5~6명은 모두 서양 사람들이었다. 배낭 여행을 하는 할머니 두 분이 계셨다.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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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낭 해변을 지나는데 풍광이 좋았다. 무이네보다 훨씬 해변이 멋있고 길고 좋아 보였다. 비가 오는 가운데 파도는 거셌다. 슬리핑 버스의 스탭 아저씨 하나가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고 가르쳐 주셨다. 아저씨는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지만 센스가 넘쳤다. 하이번 언덕을 지나서 랑꼬 해변도 보았다. 아름다운 어촌 마을인 듯했다.


- 잠시 휴게소에 정차했다. 껌승(35,000VND)과 토마토 해물 스프(25,000VND)를 먹었다. 껌승에서 오징어 냄새가 났다.


- 훼에는 12:30pm 쯤 도착했다.


- 스포츠2호텔 앞에 내려줬는데 여자 직원들이 나와 호객을 했다. 여직원들이 계속 10달러를 부르길래, 우리는 7달러 방 아니면 안 간다면서 짐을 챙겼다. 여직원들이 지배인에게 베트남어로 무언가를 얘기했다. 지배인이 왔고 결국 7달러에 합의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서양 애는 10달러에 들어갔다. “절대 그 아이리쉬 애한테는 얘기하지 말아라”라고 지배인은 우리에게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당부했다. 호텔은 좋았다. 지금까지 중 가장 시설이 좋은 호텔이었다. 7달러 가격도 잘 합의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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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나와서 Le Loi 거리를 걸었다. 훼교육대학이 나왔다. 크고 웅장했다. 캠퍼스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수위가 나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건물은 그러나 낡아 보였다. 입구에는 물 천지였다. 건물 앞에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우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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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레 러이 거리를 걷다가 레바당 미술 재단(Le Ba Dang Art Foundation)이 나와 들어갔다. 레 바 당(Le Ba Dang, 1922~)은 베트남전에 종군하지는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1939년 프랑스로 건너가 툴루즈(Toulouse)에서 미대를 졸업해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가 벌어졌고, 그는 그 전투를 비롯해서 베트남전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Dien Bien Phu”, “Ho Chi Minh Trail” 등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서는 푸른색 조의 인상파 기법 같은 회화들. 2000년대 들어서는 상당히 역동적인 회화들. 전체적으로 그는 대가의 솜씨를 가졌다는 느낌을 줬다. 아니, 대가였다. 조각, 소조, 설치미술과 회화, 판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여기는 점심시간에 쉰다. (open time 07:30~11:30, 13:0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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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에 있는 보트 선착장을 지나 왼편에는 훼 병원이 보였고, 경찰서 건물 같은 걸 지나자 왼편으로 훼 대학이 나타났다. 훼의 지도는 좀 엉망이다.


- 그리고 꿕 혹. 수위는 “남자 five”라고 했다. 한국어로 ‘남자’라고 발음했고 영어로 ‘파이브’라고 발음했다. 그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본 것일까. 아무튼 “남자 five”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호치민 동상이 보여는데, 여행 안내서에는 백색이었으나 지금은 금을 입혔다. 꿕혹도 아름다운 건물과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차 있어 서늘했다. 건물은 온통 빨간색이었는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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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 박물관에 다다랐으나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 계속 가니 훼 역이 나왔다. 오래된 역사. 티켓 오피스에 갔는데 따로 배부하는 열차시각표는 없었다. 역 앞 길거리 카페에서 콜라와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30,000VND)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얘기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매력적인 오브제(object)가 될만한 것으로는 길거리 카페의 의자와 테이블인 것 같았다. 그는 테이블은 반(Ban), 의자는 게(Ghe)라고 말했다. 반은 1개에 50,000VND, 게는 20,000VND 가량 한다고 한다. 오토바이는 2,000만 동 가량. 우리 돈으로 110만 원 정도. 비싼 값이었다. 그는 시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바오꿕 사원에 대해 물어보니 역에서 가깝다며 길을 일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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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꿕 사원은 아주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베트남 절 치고는 좀 오래된 편이다. 울창한 숲 가운데 있어 이끼가 곳곳에 끼어 있다. 그래서인지 훨씬 고색창연해 보였다. 이곳은 어린 승려들을 교육시키는 곳이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학승들은 앞머리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아직 중이 되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듯했다. 중이라고는 하지만 까르르 거리는 모습이 어린 아이들처럼 천진했다. 금당 주변으로 부도탑들이 보였고 오른편 강당에서는 책걸상에 앉아 있는 학승들이 보였다.
 

- 돌아서 내려오는 길, 큰 스님이 계단을 올라오셨다. 합장하며 “씬 짜오” 했더니 맞인사를 해주시면서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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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꿕 사원에서 나와 레 러이 거리를 걷다가 숙소 근처에 이르러 퍼보를 먹었다. 15,000VND×2개=30,000VND.
 

- 다시 조개구이 집에서 베트남 소주 3병과 조개구이, 조개탕, 새우구이를 먹었다. 196,000VND이 나왔다. 거금이었다. 근데 주인 여자, 뭔가 오해한 듯했다. 지랄지랄한다. 다른 직원들은 좋았는데 젊은 애가 싸가지가 없다. 사장 부부 모두 재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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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은편 닭고기 샐러드 같은 것 먹고 맥주를 마셨다. (40,000VND)


- 길에서 산 물, 5,000VND.
 

- 숙소로 돌아올 때 이 지역 맥주 Festival 두 병. 8,000VND×2qud=16,000VND.


- 화장실(향강변 공원) 이용 1,000VND.


- 이날 우비를 잃어버렸다. 조개구이 집이 수상했다. 다음날 가보니 없다고 한다. 이게 다 조개구이집의 그 사장 부부 때문이다, 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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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1:37 2010/12/15 21:37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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