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4일(목요일, 12일차) : 달랏(달랏대학 친구들, 카페 퉁, 달랏공항)→다낭

 

- 밤새 비가 내렸다. 어제 약속한대로 오전 9시, 서점 앞에서 단, 항, 흐잉을 만났다. 가오는 아파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함께 카페 퉁으로 갔다. (커피 50,000VND+케잌과 빵 30,000VND)

 

- 단이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풍짱에서 버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나짱까지의 버스노선이 있다는 것이고 실제 지금 운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았다. 택시를 불러 타고 나와 단이 함께 터미널로 가려고 했는데, 풍짱 택시기사가 버스가 안 다닌다는 얘기를 했다. 단은 풍짱 택시기사의 말을 통역하면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1번 국도가 물에 잠겨 차가 다닐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베트남 에어라인으로 가서 다낭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항공사 사무실은 우체국 타워 부근에 있었다. 베트남 관공서, 그리고 정부와 긴밀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제 기관 - 방송사, 항공사, 대학교 등 - 은 모두 한 구역에 모여 있는 편이다. 그중 우체국은 우리 옛날 체신부처럼 우편 사업과 통신 사업을 함께하기 때문에 건물 꼭대기에는 높은 송수신탑이 있기 마련이었다.
 

- 달랏-다낭 노선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아직 메콩 에어(Mekong Air) 같은 저가 항공사가 달랏-다낭 구간에 취항하지는 않았지만 곧 취항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면 국내선 요금이 좀 저렴해지지 않을까. 달랏-다낭 노선은 이틀에 한 번씩 운행한다. 비행기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1,330,000VND×2인=2,660,000VND, 한국 원화로는 16만 원에 달하는 거금) 하지만 우리로서는 달랏을 일단 탈출해야 했다. 남부와 중부 사이에 비구름이 머물러 있고 태풍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1번 국도가 언제 복구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부지방으로 빨리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항공편 밖에 없었다. 비행기는 4:30pm 출발 예정이었다.


- 달랏대학 인근의 껌승집에 왔다. 맨구석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고 달랏대학 친구들이 가게로 들어가면서 그분과 인사를 짧게 나눴다. 항이 말하기를 달랏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라고 했다. 그래서 가서 인사를 나눴다. “관광을 왔는데 달랏대학 친구들과 우연히 알게 됐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가면서 우리 테이블 밥값 계산을 하고 갔다. 단에 따르면 그는 학교 앞 하숙촌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30대 초반 나이. 무릎을 붙이고 앉아 조용히 혼자 껌승을 먹던 그는 어떤 곡절로 이 먼 곳 달랏까지 오게 된 것일까? 어쩌면 코이카(KOICA)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달랏대에 강사로 가게 된 한국 국문학과 출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달랏대학 친구들은 누군가에게 신세 지는 걸 몹시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교수가 돈을 냈을 때도 그렇고 내가 돈을 낼 때도 그랬다. 난 나대로 달랏대학 친구들이 돈을 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5명이 밥을 먹으면 십몇 만 동이 나오는데 이 친구들 한 달 하숙비는 70만 동이라고 했다. 카페에도 비싸서 가끔 온다고 하고, 엄청난 두께의 한-베 사전과 노트-펜만 들고 공부하는 친구들. 이들은 오토바이도 없어 뚜벅이로 걸어다닌다. 달랏대학 친구들은 시내에서 우리를 만나도 한사코 “오거리”(달랏대학 앞이 길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교차로이다.)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아마도 달랏 시내보다 학교 앞이 익숙해서이거나, 달랏대학 앞이 더 싸기 때문일 거다. 우리네 대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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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껌승집에서 나오자 어디론가 데려간다고 했다. 학교 근처의 한 절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하얀색 석가불이 있었는데 부처의 머리 뒤에는 네온 광배가 있었다. 절 안에는 불상 배경에 화려한 장식이 있었다. 또 이곳 절에는 갤러리가 있었는데 돌 조각, 목조각이 화려했고, 베트남 서예 족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절집은 내게 별 큰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베트남 건축 자체가 그리 오래된 것들이 많지 않은 데다가 이들의 목조각 솜씨는 훌륭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채색이 많아 중국, 남방계답게 키치적이기 때문이었다. 또 시멘트를 사용한 것들이 많은데, 시멘트를 보는 관점이 우리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시멘트란 값싼, 오래되지 않은, 가치가 떨어지는 어떤 것임에 반해 이들은 시멘트에 대한 그런 선입견이 없어 보였다. 건물도 보통 벽돌로 집을 짓고, 시멘트로 장식적 요소를 추가해 외장을 마무리한 뒤 거기에 노랑, 파랑, 분홍, 초록 등 원색의 페인트를 칠한다. 안이든, 밖이든. 그래서 TV에서는 Japan Paint 등의 광고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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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랏 호아빈 호텔 객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Korea Wallpaper라 써붙인 벽지 가게가 으리으리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일부 계층 사람들만이 벽지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 아무튼 절은 그저 그랬지만 절에 갔던 그 시간까지 그저 그랬던 건 아니다. 절에서 바라본 달랏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멀리 달랏대학 높이 솟은 붉은 별이 매달린 탑이 보였으며, 항이 전전날 데려다 준 달랏대학 도서관이 보였다. 더구나 날이 개고 있었다. 6일 동안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파란 하늘이 언뜻 언뜻 보이는 달랏은 심지어 약간 덥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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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진짜 그 시간을 의미있게 간직하게 만든 건 달랏대학 친구들의 친절하고 선의 있는 마음씨였다. 친구들은 절집에서 베트남 서예 족자를 하나 사 왔다. 그리고 뒤이어 갔던 카페(다섯 명 커피 60,000VND)에서도 잠시 단과 흐잉이 나갔다 오더니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인형을 사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강렬한 만남.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모든 말이 평서문으로 끝나고, 어미 변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었지만 그 선한 마음씨만큼은 단박에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오거리에서 나와 함께 공항버스를 타러 Palace Hotel 근처로 왔다. 단이 아니었더라면 난 그곳도 제대로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공항버스는 2:30pm 출발이라 하더니 또 3:00pm 출발이라고 한다. 항은 “보고 싶습니다”라 했고 단은 “섭섭합니다”라 했다. 친구들을 한번씩 안아주고 싶었지만 민망할 것 같아 단만 한번 안았다. 단은 작고, 말랐고, 가냘펐다. 공항버스가 떠나는 동안 친구들은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떠날 때까지 이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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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서도 계속 달랏대학 친구들 생각을 했다.


-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오토바이가 거의 없었다. 잘 닦인 도로, 차도 거의 없었고, 다만, 멀리 펼쳐지는 고원지대 아름다운 마을들, 파란 하늘과 엄청난 규모의 구름들, 고원이지만 넓게 펼쳐진 평원과 하늘, 정말 아름다운 땅이었다.
 

- 달랏공항은 새로 지은 것이긴 하지만 게이트 2개 뿐인 작은 공항. 하루에 비행기가 많아야 5번 정도 출발하는 듯했다. 호치민 2번, 하노이 2번, 다낭 1번 정도? 메콩 항공사는 보이지 않았다. 출국장에 있다가 담배 피우러 왔다 갔다 했다.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비를 피해 모두 호치민으로 도망가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다낭으로 향했다. 축복 받은 시대에 축복 받은 국적과 화폐를 가진 사람들.


- 4:30pm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연착되었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출국장 TV에서는 싱가폴에서 열린 무슨 축구대회에서 한국-북한 경기가 열렸고 그걸 중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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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는 SAMCO라 적혀 있었는데 베트남 에어라인과 연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좌우 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작은 항공기였다. 이런 식의 좌석 배치. □□ □□ 생수와 물티슈 하나만 줄 뿐이었다. 스튜어디스는 자주색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 오른편에는 미국 여성 1명이 앉았는데, 정말 어찌나 뚱뚱한지. 그 좁은 시트에 어떻게 앉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그녀는 씩씩해보였다. 암, 그래야 한다. 내릴 때까지 영문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달랏은 캄캄했다. 1시간여 후, 다낭에 내릴 때 보니, 다낭은 큰 도시였다. 다낭은 베트남의 4개 광역시 중 하나다. 하노이, 호치민, 나짱, 다낭.


- 공항에서 짐 찾을 때 보니 외국 친구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남성, 여성 모두 그랬다. 힘들이 어찌나 좋은지 그런 큰 배낭을 앞뒤로 메고 성큼성큼 걸었다. 난 그보다 작은 배낭을 메고 뒤뚱뒤뚱 걸었다. 그러나 결국 여행은 저마다의 짐을 지고 걷는 것이 아니던가.
 

- 공항 로비에는 택시 기사들이 호객을 하느라 북새통이었다. 다낭 시내까지 10달러를 부른다. 세상에나. 다낭 공항은 시내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다. “2달러!”로 맞불을 놓았다. 안 타겠다는 얘기였다. 걸어가도 될 거리를 10달러를 부르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시내까지 우비를 쓰고 걸었다. 호텔은 잘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호텔도 값이 잘 맞지 않았다.
 

- 2시간여를 걸어 시 대각선 쪽에 숙소 하나를 얻었다. (220,000VND) 소년이 조금 깎아줬다. 소년은 귀여웠고, 잘 웃었다. 밥을 먹고 싶었지만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바바바 맥주(333)와 까라벤(caraven) 담배를 샀고 맥주를 마신 다음 그냥 잤다. (20,000VND+20,000VND=40,000VND)


- 달랏대학 친구들 생각이 계속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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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8:27 2010/12/15 18:27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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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니
    2011/01/25 15: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위에 친구들이 그때 말한 그 친구들이군...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친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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